'올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로 불리는 튀르키예 대선이 한번 더 치러진다. 득표율 1위를 달리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해 결선 투표가 이뤄진다. 향후 대선 투표 결과에 따라 튀르키예의 외교 노선이 결정될 전망이어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튀르키예 국영방송 TRT에 따르면 현재까지 99%가 개표된 가운데 에르도안 대통령이 49.4%, 6개 야당 단일 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가 44.9%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시난 오간 승리당 대표가 5.3% 득표율을 나타냈다. 미개봉된 표를 고려해도 순위는 바뀌지 않는다.
득표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최종 득표율이 50% 미만이면 오는 28일 2차 결선 투표가 시행된다. 양 후보도 결선 투표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는 아직 1차 결선 투표 결과를 모른다"고 하면서도 "결선 투표로 가야 한다면, 이 역시 환영하는 바"라고 밝혔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도 "우리는 2차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총리에 당선된 뒤 경제성장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집권 초기 10년 동안 튀르키예의 국내총생산(GDP)는 3배 이상 증가했고 수백만명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공항, 병원, 고속도로 등 기초 인프라도 대거 확충했다. 이후 2014년 튀르키예 대통령에 다시 선출됐다. 하지만 3년 뒤 2017년 국회 해산권 및 헌법재판관 임명권 등 대통령의 권력을 비대하게 늘리면서 민심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지난 2월 대지진에 대한 대처 미흡, 43.68%에 이르는 살인적인 물가상승률로 에르도안 대통령을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됐다.
전 세계적 관심
세계가 이번 대선을 주목하는 것은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서 튀르키예 외교 노선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친러시아,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친서방 인물로 여겨진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표면적으로 중립을 이유로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았다. 때로는 중재자를 자처하며 우크라이나 곡물 운송 등 러시아의 교역 통로가 됐다. 그 대가로 튀르키예는 러시아산 원유를 저렴한 가격에 대거 사들일 수 있었다. 반면 클로츠다로을루 대표는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으로서 입장 변화 여부도 주목받는 부분이다. 튀르키예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줄곧 반대해왔다. 나토 가입은 기존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결정되는데, 튀르키예의 반대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보수 이슬람 신자들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웨덴에서 극우 정당이 코란 사본을 불태우며 시위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미국 등 서방도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CNN은 "에르도안의 운명은 자국 민주주의뿐 아니라 미국의 외교정책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튀르키예는 나토 동맹국이지만 미국의 노력을 종종 좌절시켰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서구 국가들은 튀르키예 국내 정치에 개입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이 패배하면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 지도자 모두 기뻐할 것이다"고 전했다.
한편, 국영 아나돌루 통신은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이 49.38%를 확보한 반면 녹색당 등 야당 연합은 35.16%를 차지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