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드 총수의 절대권력 ⑤] 총수 경영 공백, 진짜 '리스크'일까

2023-04-2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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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금전 피해 입혀도 명분은 경영 정상화⋯"공포마케팅이 낳은 해괴함"

대기업 상당수가 재벌기업⋯"무조건적인 반대보다 현실적인 대책 마련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본지는 ‘레드카드 총수의 절대권력’이라는 주제로 횡령·배임·탈세 등 기업에 금전 피해를 입히고도 경영 일선에 다시 오른 총수, 이 가운데서도 비교적 최근 발생한 그룹을 선정해 그간의 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그리고 각계의 전문가에게 이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그룹에 일명 '오너리스크'를 안긴 총수의 경영 복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대상 그룹은 최근 회장이 구속기소되며 연일 도마에 오르내리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법도 무용지물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금호석유화학과 삼양식품, 총수가 그룹 최대 폭탄으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쓴 신풍제약과 남양유업이다.
 
이들 총수 일가는 회장, 부회장, 사장 등 그룹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고 세습경영으로 이어졌다. 또 이들은 최상단에 있는 지배회사의 지분 과반을 보유해 그룹을 장악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 총수 공백 우려, 실제와 다른 ‘공포마케팅’⋯집유보다 실형이 오히려 주가 부양
 
회사에 금전 피해를 입힘과 동시에 이미지 또한 실추시켜 오너리스크를 유발한 총수 일가가 경영에 복귀하는 데 대한 시각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는 국가에서는 횡령·배임 등 범죄를 저지른 총수가 경영에 복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주주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가는 국가에서는 그들이 돌아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국내에선 전과가 있는 총수가 경영에 복귀하는 걸 논하기 이전에 우선은 최소한 현행법을 지키는지 봐야 한다”며 “법이란 처벌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유인책의 역할도 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법이라도 지켜야 변화가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와 비슷한 견해를 보인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범죄를 저질러서 얻는 득보다 이후에 지불하는 비용이 현저히 적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CEO 혹은 총수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벌을 강하게 하는 게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모멘텀이 된다는 시그널이 시장으로 가는 것이 정착됐지만, 우리나라는 대중을 상대로 일종의 ‘공포마케팅’을 고착화시켜왔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총수가 감옥에 가면 기업과 경제가 무너진다는 공포마케팅이 옛날부터 이어져 왔으나 실제로 주가 분석을 해보면 오히려 반대의 경향이 나타난다”며 “해외에도 이런 사례가 다양하고 연구 결과를 봐도 그렇지만, 국내에서도 최근 남양유업 사례를 보면 총수 부재로 회사에 리스크가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총수에 대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라는 판결이 내려진 경우 주가의 반응은 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대상은 지난 2000~2018년에 실형을 선고받은 총수의 영향력하에 있는 141개 회사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178개 회사다.
 
연구소는 실형선고를 받은 기업의 수익률은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이 없는 반면, 집행유예를 받은 기업은 유의미하게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총수가 실형선고를 받은 계열사의 평균 주식수익률은 –0.6~-0.01%였으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 그 계열사의 평균 주식수익률은 –3.0~-1.4%였다.
 
창업주의 경우에는 달리 볼 여지가 있으나, 그 이후 세대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근본적인 지향의 차원에서도 굳이 전과자가 대주주라는 이유로 최고경영자로 복귀하는 것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오세형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 부장은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법인체가 되고, 상법상 주식회사 등의 방식으로 기업이 되는 순간 창업주라도 별개 법인격이 부여된다”며 “회사와의 관계에서 회사의 돈을 함부로 사용하면 배임·횡령의 범죄가 구성되는 것은 현재의 회사법이나 형법의 원리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 무조건적인 옥죄기, 현실적이지 못해⋯이사회·공시제도 선진화 필요

일각에서는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강한 재벌그룹이 상당수인 국내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옥죄기만 할 게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특히 총수 일가 경영진의 전과 중에는 경영권 방어·상속 자본 마련 등을 위해 누가 보기에도 불가피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원식 건국대 명예교수·조지아주립대 객원교수는 “우리나라는 기업 관련 규제가 비현실적인 경우가 매우 많은데 상속과 경영권 보장, 주주권 강화 등이 개선되지 않는 한 총수의 배임·횡령 사례는 계속 나올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편법을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국내 이사회 제도를 손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국내기업 이사회는 총수 일가, 경영진 등 특정인에 유리한 인원으로 구성돼 있어 애초에 제구실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처럼 규제를 강화한다면 이사회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차라리 그들(총수)이 원하는 걸 내주고 이사회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며 “미국의 경우 이사회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증권거래위원회 규제가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이사회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꾸는 것처럼 공시제도를 해외와 마찬가지로 강화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의 거버넌스를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전과가 있다고 무조건 임원자격을 금지하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미국 등 OECD 주요국처럼 임원의 전과에 대해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연구위원은 “임원의 전과 이력은 굉장히 중요한 투자 정보”라면서 “특히 상장 기업의 경우 주요 투자 정보로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시장 친화적으로 바꾸고, 해당 기업 투자에 대한 최종 판단은 투자자에게 맡기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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