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일본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자

2023-03-0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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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객원 논설위원]

 


정부가 강제 징용 해법을 발표한 뒤 여론이 들끓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이재명 대표는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자 오점”이라고 비판한데 이어 “국가 자존심을 짓밟고 피해자 상처를 두 번 헤집는 계묘 늑약과 진배없다”고 했다. 급기야 민주당은 국회 본관 앞에서 시국선언 집회까지 열었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 불완전한 건 사실이다. 좀 더 긴 호흡을 갖고 피해자 상처를 보듬고 국가 자존심도 챙기면서 실질적인 배상까지 끌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우리 욕심대로 안 되는 게 한일관계이고, 외교라는 현실 또한 외면할 수 없다. 한일 문제는 서로 자존심만 앞세우면 끝이 안 보이는 경주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자민당이 지배해 왔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은 2009년 중의원 총선거에서 승리해 54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했으나 3년 단명에 그쳤다. 이후 일본은 한층 극우화됐다. 자민당 정부는 한국에 대해 “할 만큼 했다. 한국은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대 강 국면만 고수한다면 관계 개선은 요원하다.

때로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柔能制剛)’다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이 보여준 행보가 그랬다. 동일본 대지진은 튀르키예 대지진과 함께 인류애를 확인케 했다. 한국 정부는 현지에 구조대를 급파했고, 위안부 할머니들도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년째 시위를 벌여온 할머니들은 조속한 복구를 기원하며 성금을 기탁했다. 일본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뼛속 깊은 원한을 내려놓고 타인의 불행에 공감한 할머니들은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승자인지 돌아보게 했다.

강제 징용은 해묵은 현안이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강제 동원은 비인도적 범죄다. 게다가 합당한 근로대가마저 지급하지 않았으니 불법이다. 전범 기업은 이제라도 진솔한 사과와 함께 배상 책임이 있다. 그동안 일본 정부와 기업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개인 청구권을 상실됐다”며 발뺌해 왔다. 당시 개별 배상을 명확히 하지 못한 우리 책임도 크다. 그렇지만 개별 배상은 보편적 상식이며, 우리 대법원도 2018년 10월 이 같은 취지로 판결했다.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군수품과 노동력 수요가 급증하자 식민지 청년을 강제 동원했다. 그들은 1938년 ‘국가총동원법’과 1939년 ‘조선인 노무자 내지(內地·일본) 이주에 관한 건’을 통해 조선인 8만5,000명 연행을 일본 기업에게 허가했다. 1938년부터 1945년 패전 때까지 7년여 동안 조선인 700만 명이 끌려갔다. 이 기간 중 사망한 조선인 노무자는 10만~2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일본 측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총 406개 기업에서 조선인을 동원해 2,400여개 작업장에 투입했다. 미쓰비시와 미쓰이, 스미토모는 조선인 노무자 희생을 밑천 삼아 성장한 전범 기업이다. 강제 징용 흔적은 후쿠오카 미이케 탄광과 나가사키 하시마 섬을 비롯해 일본 전역에 널려 있다.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일하던 조선인들은 원폭 투하 때 80% 이상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면 사과는 당연하고 미지급 임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돌려주는 게 정의에 부합한다. 강제 징용 자체를 부인하고 배상 책임을 외면한다면 몰염치하다.

일본 행태는 독일과 비교된다. 독일 기업 역시 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지 국민과 유대인을 강제 동원했다. 그렇지만 지멘스와 폴크스바겐, 다임러벤츠는 전쟁이 끝난 뒤 보상에 적극 참여했다. 독일 정치권도 법으로 뒷받침했다. 독일 하원은 2000년 7월 정부와 기업이 절반씩 부담해 100억 마르크(약 50억 유로, 약 7조원) 기금을 조성해 나치 시절 동원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보상하는 법을 제정했다. 보상을 집행한 재단은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였다. 재단에는 6,500여 기업이 참여해 2007년까지 167만 명에게 43억7,000만 유로를 지급했다. 독일과 일본은 전범 국가라는 점은 같지만 추후 행보에서는 이렇게 달랐다.

우선은 이런 바람이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책임을 인정하고 후속 절차를 이행하는 것이다. 한때 G2국가로서 국격에 걸맞은 행보는 당연하다. 다음은 일본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위안부 할머니가 보여준 품격은 좋은 사례다. 앞서 조선은 임진정유 7년 동안 왜군에 의해 국토를 유린당했음에도 통 큰 행보를 보였다. 국교 재개를 희망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요청을 수용해 조선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 동안 12차례 통신사를 파견했다. 고통을 원한으로 되돌려주는 대신 문화와 선진 지식으로 일본을 품었다.

물론 지금 한일관계를 그때와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그들이 옹졸함을 버리지 않는다면 염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 방식은 이런 연장선상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양식 있는 언론과 학자, 정치인들도 화답할 것으로 확신한다. “강제 징용은 일본 정부와 기업이 공모한 것”이라며 평생을 강제 징용 연구에 매달려온 모리야 요시히코 전 교수,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단체, 오무타(大牟田) 시, 징용 관련 기업이 참여해 ‘징용희생자 위령비’를 건립하고 매년 추모제를 지내는 오무타 사례, 그리고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까지 많은 이들이 있다.

2015년 서대문독립공원을 방문해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는 “피해자가 그만 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며 일본의 무한 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에도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향해 “무한책임 자세로 입장을 내놓는다면 한일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며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우리가 먼저 손 내밀어 부끄러움을 가르치자. 미국이 윤석열 대통령을 국빈 초청한 것도 연쇄반응 결과다. 책임 있는 야당이라면 선동과 자극에 앞서 긴 호흡에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 아무리 윤석열 정부가 미워도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메시지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죽창가’와 ‘삼전도 굴욕’ 만으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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