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동물농장' 떠올리게 하는 민주당의 체포동의안 표결

2023-03-01 11:33
  • 글자크기 설정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객원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이 막을 내렸다. 예상대로 부결됐지만 표결 결과는 치명적이다. 사실상 가결이자, 이 대표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표결에서 드러난 민심을 헤아리는 대신 퇴행적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 진영에서 이탈한 37표는 민심을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강경파와 극성 지지층은 비명계 의원들을 집단 이지메하며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대표 불체포 특권에 대해서는 정당하다고 했던 이전 행태에 비춰볼 때 표결 행위를 문제 삼는 건 이율배반적이다.

민주당은 압도적 부결(175표)을 장담했지만 민심은 싸늘했다. 통상 무효표는 한두 표에 그치는데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는 무려 11표나 쏟아졌다.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때와도 비교된다. 당시는 무효표 없이 기권만 9표였다. 무효표는 실수가 아니라 의도를 갖고 행사한 결과로 해석된다. 차마 가결에는 가담하지 않지만 이 대표가 받고 있는 혐의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로써 21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 부결은 노 의원에 이어 두 번째다. 민주당은 ‘방탄 정당’ 프레임에 갇혔다.

어쩌다 이런 사태가 빚어졌을까. 얼마 전 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집단망상’으로 진단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강성 지도부끼리 확증편향을 키우는 바람에 이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반대 여론은 묵살한 채 방탄 국회를 열고 체포동의안 부결을 강행해 왔다. 다른 목소리는 해당 행위로 간주한 채 듣지 않았다. 결국 오판으로 이어졌다. 지도부는 부결이 옳다고 믿었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표결 이후에도 여전히 “배신자” “밀정”을 입에 올리는 걸 보면 아직도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체포동의안 표결까지 진행 과정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한다. ‘동물농장’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선동에 쉽게 무너지는지 풍자한 우화다. 동물들은 농장주를 몰아내고 혁명에 성공한다. 하지만 자유는 짧았고 이전보다 더한 상태로 돌아간다. 최진석은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에서 “모든 독재(독단)와 억압, 전체주의는 대중의 무지와 함께 시작된다”고 했다. 그는 대중이 자기 생각 없이 추종만 한다면 선동에 휩쓸린다고 덧붙였다. 소설 속에서 동물들은 선동에 휩쓸리다 지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선동가 돼지 나폴레옹은 위협과 현혹을 무기삼아 다른 동물을 지배한다. 여기에는 두 마리 돼지 스퀼러와 미니무스 공이 컸다. 둘은 어용 지식인이다. 또 자신이 이용당하는지도 모른 채 “나폴레옹 동무가 옳다고 하면 옳은 거야.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며 맹종하는 복서도 있다. 그러다 복서는 도살업자에게 팔려 독재자를 위한 위스키 한 상자로 돌아와 소비된다. 동물농장의 소설 속 배경은 소비에트 혁명 이후 스탈린 치하다. 혁명의 기치는 빛바래고 독재로 회귀한 퇴행적 상황을 풍자했지만 지금 민주당 상황과 대입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대표가 받는 혐의는 간단치 않다. 민주당은 정황만 있을 뿐 구체적 물증은 제시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최종 판단은 사법부 몫이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재직 시 개발업자에게 특혜를 몰아주고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성남FC를 후원(133억원)하는 대가로 기업들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혐의도 있다. 사적 이익은 챙기지 않았다 해도 배임과 제3자 뇌물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당하다면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응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불체포 특권을 앞세웠고 또 민주당은 당 전체가 로펌이 되어 검찰 수사를 가로막았다. 야당 탄압과 정치 보복이라는 주장에 민심이 호응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날 “법치의 탈을 쓴 정권 퇴행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결과는 37표 넘는 이탈에다 사실상 가결이었다. 대장동 수사는 문재인 정권에서 시작했다. 이 대표가 대선에서 패한 중요한 이유도 대장동 비리였다. 만일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가 후보로 선출됐어도 국민의힘에게 패했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지만 사법 리스크에 휩싸인 후보를 내세운 건 도박에 가까웠다. 검찰은 앞으로도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을 비롯해 구속영장을 재신청할 것이다. 또 불구속 기소도 피할 수 없다. 이 경우 이 대표와 민주당은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다. 빤한 시나리오를 예상하면서도 끌려다닌다면 어리석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1년 가까이 ‘이 대표 방탄’에 당력을 허비했다. 민주당에서 발신하는 어떤 메시지도 국민들 가슴에 닿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전 실패만 잘 복기해도 민주당 지도부가 오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국 사태 당시 민주당은 여론전에서 우위를 자신했지만 서울과 부산시장 재선거에서 완패했다. 서울과 부산 41개 자치구 가운데 한 곳도 이기지 못했다. 또 검찰개혁 기치를 내걸고 대선을 치렀지만 정권마저 내줬다. 지방선거 또한 참패였다. 얼마나 더 바닥을 쳐야 현실을 직시할 것인지 안타깝다.

당내 비(非) 이재명계는 최근 ‘이재명 사당화’를 우려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여기에는 “민심이 민주당을 떠났다. 개혁을 원하는 국민에게는 비전도 전략도 없는 무능한 당이 됐다”는 반성이 담겼다. 체포동의안 부결에 문제의식을 갖는 의원들과 이들에게서 그나마 희망을 본다. 표결 이후 강경파와 ‘개딸(개혁의 딸)’은 반대표를 행사한 의원을 색출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건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자중지란과 내홍을 바라는 국민의힘 의도대로 흘러간다. 민심에는 귀를 닫고 ‘재명의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지는 않은지 냉철하게 돌아볼 때 민주당에도 희망이 있다.

‘동물농장’을 다시 펼친다. 무죄를 주장하며 여론을 호도하는 이 대표, 방탄 국회를 열고 체포동의안 부결을 주도한 민주당 지도부, 이용당하는지도 모른 채 “이재명 대표는 언제나 옳다”고 추종하는 극성 지지층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폴레옹과 스퀼러, 미니무스, 복서가 겹쳐진다. 최진석은 “혁명의 깃발이 어떻게 완장이 되는지, 자유를 추구했던 혁명이 어떻게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지금 민주당 상황이 이렇지 않은지 돌아보고 경청할 만하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