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당내 의견이 맞서고 있다. 당을 위한 고언부터 지지층 결집을 노린 선동까지 뒤섞여 있다. 이상민 의원과 박영선 전 장관, 김해영 전 의원,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은 소수지만 소신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유시민으로 대표되는 선동가들은 음모론을 전개하며 민주당 지도부 논리를 옹호하고 있다. 누가 당을 위하는지는 여론 지표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눈에 뜨이게 하락한 반면 국민의힘은 상승 추세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여당을 향한 민주당과 이 대표의 비판이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금 민주당 상황은 자진해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 프레임을 앞세워 검찰 수사를 비판하고 있지만 여론은 호응하지 않고 있다. 여론은 성남시장 재직시절 불거진 범죄 혐의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과 연결하는 것이 온당한지로 모아진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에 관계없이 깊은 수렁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부결된다면 ‘이재명 방탄’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대로 가결된다면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조국 수호를 외치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완패했던 조국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도 민주당은 검찰을 악으로 몰았지만 선거에서 나타난 표심은 달랐다.
김해영 전 의원은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며 이 대표 처신을 문제 삼았다. 사법 리스크를 예상하면서도 보궐선거에 이은 당대표 출마를 문제 삼은 것이다. 또 김 전 의원은 “지금 민주당은 집단적 망상에 빠져 있다. 정신 차려야 한다”고 했는데 밑바닥 민심을 반영한 발언이다. 지금 민주당은 강성 지지층을 태운 채 표류하는 난파선 신세다. 에코챔버 안에서 민주당은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다. 민심을 헤아리는 촉수가 무디어진 결과 정권을 내주었고 지지율 또한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외 인사들의 쓴 소리는 외면하고 선동과 음모론에 혹한 결과 당은 만신창이로 전락했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진보진영에서 손꼽는 선동가다. 그는 검찰이 자신의 계좌를 들여다봤다고 공언했다가 공개 사과한 전력이 있는 상상과 음모론에 익숙한 인물이다. 유 전 이사장은 최근 진보진영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불체포 특권에 관한 헛소리’라는 칼럼에서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이 이 대표를 왜 이토록 집요하게 노리는가, 윤 대통령이 시켰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근거 대신 유 전 이사장은 ‘감정설’과 ‘전략설’ 두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전형적인 음모론인데, 홍준표 대구시장은 “특유의 상상력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 유시민 칼럼은 급속히 유포됐다. 그것으로 지지층 결집 효과는 얻었을지 모르지만 합리적 판단을 흐리게 했다는 점에서 악수를 두었다. 이 대표가 받는 범죄 혐의는 간단치 않다. 뇌물과 배임, 부패방지법 위반, 범죄수익 은닉,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등이다. 제기된 범죄 혐의에 대해 검찰은 수사할 의무가 있다. 만일 이 대표 주장대로 부당한 수사였다면 사법절차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소명할 기회도 있다. 국민이라면 누구도 이러한 사법절차를 피할 수 없다. 한데 이 대표는 국회 최다 의석을 보유한 제1야당 대표 지위를 이용해 사법절차를 무력화하고 있다.
법치주의를 망가뜨리는 억지가 계속된다면 제1야당은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메시지는 무력화되고 야당으로서 정부 견제도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김 전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있는 한 정부와 여당에 대한 민주당의 어떤 메시지도 설득력 없다”고 했는데 민주당 상황을 적확하게 꼬집은 말이다. 공천에 목을 맨 의원과 대표직을 이용해 사법처리를 저지하려는 이 대표의 욕심이 맞물려 민주당은 야당으로서 선명성을 잃었다. 지금 민주당에게 필요한 건 밑바닥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사법 시스템을 존중하는 모습이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로마군이 예상했던 진격 루트를 버리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제국을 쳐 승리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카르타고 군을 만난 로마군단은 우왕좌왕하다 패했다. 오스만트루크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배경 또한 발상전환이었다. 오스만 군대는 금각만을 우회해 배와 대포를 산으로 이동해 당시 최고 요새였던 콘스탄티노플 3중 성벽을 허물었다. 한니발과 오스만트루크 승리는 의외성에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패배가 빤한 막다른 골목에서 나와야 한다. 집단망상과 확증편향에서 벗어나 상식을 회복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로버트 딜렌슈나이더가 쓴 ‘결정의 원칙’에는 역사를 바꾼 위대한 결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에 원폭 투하를 결정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종지부를 찍은 해리 트루먼부터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한 율리우스 카이사르,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까지 다양한 사례를 담고 있다. 이들이 내린 결정은 하나같이 개인과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저자는 위대한 결정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며, 그럴 때 승리한다는 사실을 넌지시 일깨운다. 이 대표를 트루먼이나 카이사르, 알리와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