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선동가와 함께 춤추는 더불어민주당

2022-10-2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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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민주주의 기반이 아무리 튼튼해도 극단주의 선동가는 어느 사회나 등장하기 마련이다. 잠재적 대중 선동가는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며, 때로 그들은 대중의 감성을 건드린다.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실험은 이러한 인물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와 정당이나서서 이러한 인물이 당내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지지를 거부하느냐다.”「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이 대목에서 최근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선동 정치에 능하다는 평을 받는 이 대표 부상과 그를 일방적으로 감싸는 더불어민주당을 보노라면 이보다 더 적확한 분석이 있을까 싶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오랜 전통을 지닌 민주주의조차 극단적 선동가에 의해 맥없이 무너질 수 있음을 간파했다. 이들은 <뉴욕 타임스>에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민주주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썼다. 글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책은 극단적 포퓰리스트들은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는지, 또 이들은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실감나게 제시한다.

두 교수는 많은 나라에서 유사한 패턴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졌음에 주목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정당이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포기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에 직면한다는 통찰이다. 이들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에서는 선동가들이 중앙 무대에 오르지 못하도록 제어한다. 즉, 극단주의자나 선동가가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을 때 기성 정치인은 합심해 그들을 고립시키고 무력화한다. 이 과정에서 정당은 사회적 거름망으로써 기능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정당을 ‘민주주의 문지기(gatekeeper)’로 정의했다. 미국 정치 상황을 분석한 책이지만 우리 정치에도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민주당은 정당으로서 제 기능을 다하고 있을까. 이재명이라는 포퓰리스트가 한국 정치 전면에 나설 때까지 민주당은 사실상 책임을 방기했다 해도 과언 아니다. 대선 경선부터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당대표 선거, 그리고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구속에 이를 때까지 당내 경고음은 꺼졌다. 그동안 당 안팎에서 줄기차게 사법 리스크를 우려했지만 무시됐다. 당대표 경선 당시 박용진 의원은 “이재명 개인 리스크가 민주당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다”며 신중한 판단을 주문했지만 귓등으로 흘렸다. 설훈 의원은 민주당사 압수수색과 관련해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 이 대표를 만나 이런 사태가 올 가능성이 있기에 대표에 출마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며 비슷한 심경을 토로했다.

만일 검찰이 적시한 피의 사실대로 혐의가 확정될 경우 민주당은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김 부원장을 긴급 체포하고, 법원이 영장 청구 내용을 인정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정황을 미뤄볼 때 범죄 혐의는 간단치 않다. 이와 관련한 민주당 대응은 집단 최면에 빠진 듯 황당하다. 압수 수색 방해, 검찰청 항의 방문, 국감장에서 수사 검사 압박 등 일반 정서와 거리가 있다. 또 정치 수사, 야당 탄압 프레임을 내걸었지만 민망하다. 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고 조작하고 있다”, 또 박성준 대변인은 “불법 정치 자금은 없다. 정치 수사를 중단하라”고 했지만 공감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이 대표에 대한 수사가 야당 탄압이나 정치 보복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갤럽 여론조사(9월 16~17일)에서 50.7%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해 이 같은 정서를 뒷받침한다. 국민 두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은 야당 탄압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은 거대 의석(169석)을 앞세워 국회를 운영해 왔다. 박진 외교부장관 해임 건의안 처리에 이어 노란봉투법과 양곡관리법, 감사원법 개정안까지 거침없다. 또 모든 상임위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비록 야당이지만 사실상 여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들이 야당 탄압이라는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 이유다. 또 정치 수사, 왜곡‧조작 주장 또한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아직도 정권 차원에서 특정한 사건을 조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한국 민주주의를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다. 나아가 현 대법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법관들로 구성돼 있다. 여권에서 ‘촛불 선동’이라고 조롱하는 이유를 헤아려야 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진술을 종합하면 검찰 수사는 당연한 수순이다. 유동규는 대장동 사업자인 남욱 변호사가 만든 8억4,700만원을 김용 부원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또 정진상 당대표 비서실 정무조정실장에게도 5,000만원을 줬고 이들과는 100차례 이상 술자리를 같이했기에 이 대표가 모를 리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적으로 단 1원, 사탕 한 개 받은 적 없다”는 이 대표 발언에 대해서도 유씨는 “재미있게 들었다. 검찰에서 모두 진술하겠다”며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물론 이 대표는 “한 푼도 받지 않았으며 검찰 주장은 허구”라며 부인하고 있다. 한쪽 진술은 구체적인데 상대는 아니라고 하니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검찰 수사는 불가피하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회유 프레임’ 또한 전형적인 논점 흐리기로 보인다. 설령 회유에 의한 진술이라 해도 팩트라면 범죄다.

민주당이 처한 위기는 그동안 사회적 거름망 역할을 포기하고 위험 징후를 애써 외면한 결과다. 이제야 실체를 드러낸 ‘회색 코뿔소(gray rhino)’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꼴이다. 이 대표의 턱없는 욕망과 선동, 민주당의 묵인과 동조, 강성 지지층의 맹목적 지지가 어울려 현 사태를 초래했다는 중론을 새겨야 한다. 이 대표는 검찰 수사에 응함으로써 진실을 규명할 책임이 있다. 야당 탄압 프레임에 기대어 수사를 지연시킴으로써 상황을 반전할 생각이라면 착각이다. 민주당 또한 선동 프레임을 멈추고, 그동안 게을리 한 게이트키퍼 역할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그것만이 당을 살리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당원들에 대한 예의다. ‘이재명 리스크’를 키운 과오는 지금까지 만으로도 충분하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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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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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선동가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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