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무책임한 '친일팔이' 이제는 멈춰야

2022-10-1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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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김대중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주도적으로 한일 관계를 이끌었다. 그는 1998년 10월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공동선언은 1965년 한-일 정상화 이후 두 나라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킨 획기적 선언으로 평가받는다. 한-일 정상은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열어가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공동선언에 따라 우리 정부는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했다. 당시 일부에서는 왜색 문화 잠식을 우려했지만 기우였다. 결과적으로 25년여가 흐른 지금 왜색은커녕 오히려 한류가 압도하고 있다. 일본 열도 곳곳에서 K팝과 한국 영화, 드라마를 만나는 건 흔한 일이 됐다. 김대중 정부의 혜안과 결단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서울시립대학을 방문한 일본 학생들을 통해서도 한류를 실감했다. 20여명에 달하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K팝과 한국 영화, 드라마, 한국 음식을 소재로 자기소개를 마쳤다. 학생들이 K콘텐츠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는 걸 보면서 내심 놀랐다. 말로만 듣던 K콘텐츠 파워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K콘텐츠에서 비롯된 한류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배우기로 이어지면서 선순환을 낳고 있다. 한국이 일본을 앞선 건 대중문화뿐만 아니다. 반도체와 가전, IT, 행정 정보화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최근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도 ‘국뽕’을 넘어 우리가 일본을 앞질렀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하는 장면이 적지 않았다.
신칸센이나 지하철 검표 시스템은 단적이다. 일본에서 신칸센이나 지하철 탑승권은 종이 티켓이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에 사라진 유물이다. 또 개찰구에 티켓을 넣는 건 물론이고 신칸센에서는 대면 검표도 한다. 우리 KTX는 개찰구가 사라진지 오래고 검표도 없다. 단지 승무원이 개인 단말기를 이용해 좌석 유무를 확인할 뿐이다. 이뿐만 아니다. 우리는 전국 어디에서든 주민등록 등본과 초본을 뗀다. 공인 인증서만 있으면 개인 PC로 집에서도 가능하다. 주소지에서만 발급받는 일본인들에겐 꿈같은 일이다. <일본관찰 30년>을 쓴 염종순 박사와 같은 이는 한국의 앞선 행정 정보화를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 유학생이 일본에서 은행계좌를 개설하려면 한 달여 소요된다. 한국은 1시간이면 충분하니 정보화 격차를 실감할 수 있다.

지난주 일본 여행 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일본 3대 목조 다리가운데 하나인 이와쿠니(岩國) 긴타이교(錦帶橋)에 갔을 때다. 검표원은 케이블카 양쪽 두 곳에서 플라스틱 바구니에 종이 티켓을 담았다. 수거한 티켓을 일일이 세어 정산하는 모습은 정보화 시대 한국과 일본의 현주소다. 또 일본을 제친 경제 지표도 있다. 1인당 구매력지수는 대표적이다. OECD와 IMF에 따르면 구매력지수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에서 한국은 2017년 이후 5년째 일본을 앞질렀다. 구매력지수 기준 국민소득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실질적 소득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다. 한국 국민이 더 잘산다는 뜻이다. 2020년 한국 4만4,292 달러, 일본 4만1,637 달러로 우리가 2,655 달러나 높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발 ‘친일 국방’ 발언은 뜨악하다. 이 대표는 “한미일 훈련은 극단적 친일”(7일) “욱일기가 한반도에 걸릴 수도”(10일) “좌시할 수 없는 안보 자해”(11일)라며 친일 프레임을 내세웠다. 국제적 경제와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심한 인식수준이다. 이 대표가 친일 프레임을 꺼내든 노림수는 따로 있다. 지지층을 결집하고 ‘사법 리스크’를 덮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민주당은 지난 정부에서도 ‘죽창가’를 앞세워 친일 논쟁에서 재미를 본바 있다. 이번 발언 또한 연장선상에 있음은 불문가지다. ‘친일 국방’ 프레임은 사실관계부터 왜곡됐다. 한미일 동해 연합군사훈련은 2016년부터 시작됐고 문재인 정부 때도 했다. 더구나 2017년 7월 한미일 정상은 역대 최고 수준 안보군사협력강화를 약속한데 이어 3국 이지스 함은 동해상에서 공개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연일 미사일을 쏴대며 우리 국민을 위협하는 북한을 나무라기는커녕 친일 프레임을 꺼내들었으니 엉뚱하다.

한국과 일본은 2018년 한 해 동안 1,000만 명이 양국을 오갔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700만 명, 일본에서 한국으로 300만 명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 논리대로라면 일본을 다녀온 700만 국민은 죄다 친일파다. 하지만 한국 관광객이 두 배 이상 많다는 건 경제력과 자신감의 결과지 친일과는 무관하다. 우리 청년들은 식민 지배를 경험한 세대와 달리 주눅 들지 않고 일본을 여행한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에 비해 기질 또한 역동적이다. 한데 이 대표와 민주당 의식수준은 식민지배 시대에 머물러 있다. 과잉 민족주의에 기대어 걸핏하면 친일 타령을 들먹이는 것도 패배자, 피해자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습관적 친일 타령은 국민을 우습게 알고 정치를 너무 쉽게 하려는 안일함이다.

11일부터 일본 비자가 전면 개방됐다.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도 급증할 전망이다. 앞서 언급했듯 K콘텐츠와 1인당 구매력지수, 행정 정보화 등에서 한국은 일본을 앞섰다. 민주화와 의식수준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일본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신문기자>는 좋은 예다. 일본 언론조차 자국 현실에서 권력 핵심 비리를 들추는 영화가 제작됐다는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정권에 맞서는 여기자 배역을 일본에서 못 찾고 한국 배우 신은경을 섭외했을까 싶다. 반면 한국 민주주의는 최고 수준이다. 언론은 당연하고 문화예술인과 일반인까지 누구든 최고 권력자와 정부를 비판한다. 또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고 끌어내렸다. 일본에 꿀릴 이유가 하등 없다. 그런데도 친일 프레임으로 국민 정서를 자극하고 있으니 저급하다.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친일 팔이는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 나아가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가르는 정치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뿐이다. 광복 이후 77년여가 흘렀다. 국민을 친일 프레임에 가둔 채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일본 식민지배와 피해자 코스프레를 벗어던져야 한다. 정치는 청년세대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할 책임이 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정세균 전 총리는 북협 위협에 따른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은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이래야 한다. 25년 전 김대중 민주당 정부는 당당하게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었다. 바람직한 한일관계가 어떠해야할지는 자명하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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