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전산망 '먹통'에 법조계 분통…'차세대 전자소송'에 쏠린 눈

2023-03-0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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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전산망 시스템 오류로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이와 같은 오류 안내 메시지가 떴다.[사진=법원 홈페이지 캡쳐]


"법원 전자소송시스템은 공공을 위한 서비스인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좀 더 신경 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달만 두 차례 법원 전자소송시스템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재판 관련 서류를 볼 수가 없어 재판 일정이 미뤄지는 등 업무가 마비되자 판사와 변호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형사기록 전자화도 앞두고 있는 마당에 전자소송시스템 '먹통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내년부터 도입하는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이 재발 방지책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초유의 법원 전산망 먹통 사태..재판 연기 잇달아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 전산망이 지난달 28일 오후 8시부터 이달 2일 오후 11시까지, 4일 오전부터 5일 오후 9시까지 두 차례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법원행정처는 이달부터 개원한 수원회생법원과 부산회생법원에 관련 데이터 약 7억건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민사소송은 관련 서류를 대부분 전자 형태로 제출하고 있다. 그런데 전산망 전체가 마비되면서 민사 재판부에서는 당일 전산망에 접속해 기록을 볼 수가 없어 재판을 연기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일부 법정에서는 판사가 손으로 일일이 메모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한 부장판사는 "IT강국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전산망 오류로 재판을 못하는 일이 벌어져 황당했다"며 "오랜 기간 법원에서 근무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서초동의 A변호사는 "나도 상대방 답변서를 확인하고 의뢰인과도 면담을 추가로 해야 해서 마음이 급한데, 소송 당사자들은 오죽하겠냐"며 "당사자들에게 소송은 굉장히 큰일인데 이런 식으로 하루 이상 전산망이 멈춰버리면 국민들에게도 큰 피해가 되지 않겠냐"고 토로했다.

2021년 10월 '형사사법절차에서의 전자문서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공포되면서 내년부터는 형사소송 재판 전자화도 시행된다. 전자소송은 2010년 4월 특허사건을 시작으로 민사·가사·행정, 회생·파산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2015년에는 시·군 법원 사건에까지 전자소송이 도입됐다. 현재 형사재판을 제외한 모든 재판 분야에 전자소송이 도입됐다. 

전자소송은 재판부 구성원이 각자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필요할 때마다 기록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재판 효율성을 끌어 올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과거처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기록과 서류들을 사건 관계자들이 적잖은 비용을 들여 한 장 한 장 복사하고, 판사나 변호사들이 수북이 쌓아 놓은 자료 가운데 원하는 부분을 찾느라 한참을 뒤적거릴 필요가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먹통 사태를 겪으면서 법조계에서는 "형사재판이 전자화되면 데이터가 더 쌓일 텐데 또 전산망이 멈추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진다. 

이에 대법원이 야심 차게 준비 중인 '차세대 전자소송시스템'에 법조계 눈길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은 노후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2020년부터 약 3000억원을 들여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 개발 완료가 목표다. 

B변호사는 "형사재판에서, 특히 구속된 피고인에게는 재판이 빨리 진행되는 것이 중요한데 내년에 형사재판이 전자화된 상태에서 또 데이터 관련 작업 중에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 재판이 연기되면 피고인에게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내년에 개발되는 2세대 전자소송시스템은 노후화된 현재 전산망 문제들을 해결하고 국민의 사법 접근권을 향상하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법, 항소장 '사후 제출' 허용 검토 구제 방안···'송달 간주' 날짜도 정정
한편 대법원은 이날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전자소송 항소장이나 상고장을 제때 내지 못한 당사자들을 위해 전국 일선 재판부에 '사후 제출' 허용을 적극 검토하라고 안내했다.

전산시스템 중단 기간에 만료일이 도래해 항소장·상고장 등을 제출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면 개별 재판부에 소송행위 추완(추후 보완)을 검토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전산 제출이 안 돼 종이 문서를 법원에 직접 낸 당사자에게는 일정 기간 안에 전자문건을 다시 제출하라고 명령하고, 전자문건이 새로 들어오면 원래대로 인지액 감액 혜택을 줘야 한다는 점도 일선 법원에 알렸다.

현행 재판 절차에 따르면 소송 당사자가 관련 전자문서가 전산에 등재됐다는 사실을 통지받고도 일주일 동안 확인하지 않으면 법원은 해당 당사자에게 문서가 송달됐다고 간주한다.

법원행정처는 전산시스템 중단으로 송달 간주 효력 발생 시점이 모호해질 수 있는 점을 고려해 일률적으로 효력 발생일을 고치는 데이터 정정을 시행하고 안내문을 게시할 예정이다.

개인회생 절차를 밟는 사람들에 대한 구제 계획도 제시했다. 채무자가 전산시스템 중단으로 변제금 임치나 송금을 못했을 때에는 회생위원이 수동이체 방식으로 채권자에게 송금하기로 했다. 법원에서 별도 요청이 있으면 법원행정처가 이체 처리를 지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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