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반도체 국산화에 19조원 투자…범용부터 첨단까지 다 잡는다

2023-02-0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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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비즈니스 리뷰

EV 등 범용 반도체 '중요 물자'…생산 설비 투자 3분의1 정부 지원

반도체 장비업체들, 빅3 고객사 옆으로…대중국 수출 통제 걱정도

 



일본이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서 총 2조엔(약 19조원)을 쏟아붓는다.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범용 반도체부터 첨단 반도체까지 모든 반도체의 생산 기지를 자국에 유치하겠다는 포부다. 화끈한 보조금의 효과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를 유치한 규슈는 ‘실리콘 아일랜드’라는 잃어버린 옛 명성을 되찾을 것이란 기대감이 가득하다.
 
반면 일본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고민은 깊다. 미국 주도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금지에 일본도 동참해서다. 장비업체들은 TSMC, 삼성, 인텔 등 빅3 고객을 꽉 잡기 위해 미국, 대만, 한국에 거점을 신설하거나 확장하는 모습이다.
 
日,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2조엔 지원
일본 경제산업부는 지난 7일 범용 반도체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보조금 지원책을 결정했다. 일본에 투자한 국내외 기업은 모두 지원 대상이다. 생산 설비 투자에 드는 비용의 최대 3분의1을 일본 정부가 보조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10년 이상 계속해서 반도체를 생산해야 하며, 반도체 공급난이 발생하면 일본 내에 제품을 우선 공급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2022년도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확보한 1조3000억엔 가운데 3686억엔을 활용한다.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파워 반도체, 마이크로 컴퓨터, 아날로그 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설비투자에 대해서는 투자액의 최대 3분의1을 정부가 보조한다. 반도체 제조 장비와 반도체 원료의 보조율은 각각 최대 3분의1, 2분의1이다. 일본은 경제안전보장추진법에서 범용 반도체를 ‘특정 중요물자’로 지정한 바 있다.
 
인포머 인텔리전스의 미나미가와 아키라 수석 컨설팅 디렉터는 “탄소 중립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는 최첨단 반도체가 아니라 파워 반도체”라며 “파워 반도체는 에너지 산업의 핵심”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말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21 회계연도 추경 예산을 통해 자국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7740억엔을 확보한 바 있다. 당시 확보한 자금의 일부는 대만 TSMC의 규슈 구마모토현 유치에 활용됐다. TSMC는 구마모토현에 첫 일본 공장을 건설 중이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최첨단 2나노(㎚·10억분의1m) 반도체 생산을 목표로 내건 반도체 제조업체 라피더스에 연구비 등을 지원했다. 라피더스는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등 일본의 주요 기업 8곳이 첨단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작년 11월에 설립한 회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 이번 보조금 결정을 포함해 약 2조엔가량을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투입한다”며 “(보조금 지급이) 공급망 강화와 안정 조달로 이어졌는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높아졌는지 등의 검증이 필수”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의 투자 효과는 규슈에서 나타나고 있다. 규슈는 1980년대에 세계 반도체 생산의 10%를 차지하며 '실리콘 아일랜드'로 통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지만 지금은 그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러나 TSMC가 구마모토현에서 신공장 건설을 추진하자, 관련 투자가 잇따르는 등 기세를 되찾는 모습이다. 

소니그룹은 수천억엔을 들여 TSMC의 신공장 근처에 스마트폰 전용 이미지센서 공장을 정비한다. 2025년 가동이 목표다. 교세라는 나가사키현과 이사하야시에 약 15만㎡의 공장 용지 취득을 신청했다. 취득액은 20억엔 정도가 될 전망이다. 전자 부품 등의 생산을 검토하고 있으며 2026년 가동이 목표다. 직원은 1000명 규모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보급 확산에 수요가 급성장한 파워 반도체 분야에서도 설비 증강이 이뤄진다. 미쓰비시전기는 후쿠오카 시내의 ‘파워 디바이스 제작소’에서 전기차나 발전소 등에 사용하는 파워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 작년부터 설비를 반입하기 시작했다. 올해 상반기 가동이 목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TSMC 진출이 기폭제가 돼 실리콘 아일랜드가 부활에 성공할지는 일본의 경쟁력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고 전했다.
 
일본 반도체 장비 업체들, 빅3 고객사 옆으로 
일본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주요 고객사 인근에 연구 개발 거점을 신설하거나 확장하는 등 해외로 뻗어 나가는 모습이다. 미국, 대만, 한국 등 3국에 수백억엔을 투자하는 히타치 하이테크가 단적인 사례다.
 
히타치 하이테크는 작년 가을께 인텔 첨단 반도체 공장과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미 서부 오리건주에 최신 연구 개발 시설의 문을 열었다. 히타치 소속 엔지니어 약 300명이 고객사의 요구를 청취하고 그에 맞춰 새 장치를 개발하거나 기술을 개량한다.
 
히타치는 미국 외에도 대만과 한국에도 거점을 확장 혹은 신설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가 있는 대만에는 연내 개발 거점을 확장하고, 삼성전자 등이 있는 한국에는 거점을 신설한다. 최대 고객인 반도체 빅3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고쿠사이 일렉트릭은 수십억엔을 들여 클린룸을 증설하는 등 한국 평택으로 거점을 확장하고 있다. 평택 거점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에는 삼성과 SK하이닉스 공장이 있다. 고쿠사이는 개발 등을 위해 한국과 일본 양국을 오가는 번거로움이 상당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해 입국 규제와 격리 조치 등 어려움이 많았다. “더 가까이 개발 거점을 마련해 달라”는 한국 기업들의 요청도 있었다.
 
빅3 고객과 긴밀히 제휴해 기술을 교환하려는 목적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변화의 배경에는 반도체 기술의 난이도 상승이 있다”며 “제조 공정의 고도화가 요구되며 고객에게 밀착할 수 없는 장치 제조업체는 경쟁에서 밀려난다”고 전했다.
 
일본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도쿄일렉트론도 TSMC가 진출한 구마모토현 외에 야마나시현, 미야기현 등 3개 현에 개발동을 신설한다.
 
이에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개발 부담은 커지고 있다. 일본 제조 장비 주요 5개사의 2022년(2023년 3월기) 연구개발비 합계는 약 3000억엔으로 10년 전 대비 2.3배에 달한다.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와 경쟁하는 도쿄일렉트론은 향후 5년간 총 1조엔 이상의 연구 개발비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는 이전 5년 간 연구 개발비 대비 70%나 많은 금액이다.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빅3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거는 데는 국제 정세 영향도 크다. 일본 정부는 올해 1월 미국 주도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금지 조치에 동참하기로 했다. 중국은 첨단 반도체 개발에 있어서 후발 주자이기 때문에 일본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중국 본토에 거점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그러나 중국 시장이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일본 반도체제조장치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일본 반도체 장비업체의 해외 매출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3%에 달한다. 이들 기업들은 앞으로도 비첨단 장비는 중국에 수출할 방침이다. 업계 전체에서 규제 대상인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매출 비중은 12%에 그친다. 이를 감안할 때 정부 규제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으나, 수출 규제가 길어지면 타격이 커질 수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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