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당국이 정책적 협의‧조정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을 앞세워 연금 개혁 전면에 나선다.
상반기 중 국민연금을 포함한 주요 사회보험에 대한 재정추계를 통합 발표하는 등 향후 연금 개혁 과정에서 교통정리 작업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국민연금 재정추계는 보건복지부가 맡고 있다. 기재부는 3대 공적연금(사학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과 4대 사회보험(건강보험·노인장기요양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재정추계를 실시한 뒤 국민연금까지 포함한 통합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출산율과 경제성장률, 금리 등 재정추계를 위한 전제 조건과 적용 시점을 일치시켜 8대 보험 재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개혁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게 이번 통합 작업의 목적이다.
그간 각 연금은 여러 기관에서 다른 모델을 활용해 추계해 온 탓에 정확한 비교가 어려웠다. 앞으로는 인구구조 변화와 성장률 전망 등 거시 전제 조건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지난해 9월 내놓은 '한국 연금제도 검토보고서'에서 "공적연금 제도 간 기준을 일원화해 직역 간 불평등을 해소하고 행정 비용을 절감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기재부는 지난해 11월 경제구조개혁국 산하에 연금보건경제과를 신설해 운영 중이다. 기금 개혁 업무를 총괄하고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에서 구체적인 안건을 논의하는 등 재정당국 차원에서 연금 개혁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는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정책적 협의‧조정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목적도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재부의 이 같은 움직임을 주무 부처인 복지부의 연금 및 건강보험 업무에 관여하며 연금 개혁 과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기존 경제구조개혁국 내 복지경제과와 달리 신설된 연금보건경제과는 복지부와 업무 충돌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연금 개혁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연금 주무 부처는 복지부고 개혁 작업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기재부는 재정당국으로서 연금 개혁 전반을 파악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연금 개혁은 여야와 진영을 떠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갈수록 앞당겨지고 있고 건강보험 역시 2040년이면 누적 적자가 678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올해 4대 공적연금 의무지출은 △국민연금 36조2287억원 △공무원연금 22조6980억원 △사학연금 4조9185억원 △군인연금 3조8463억원 등 총 67조6915억원이다.
이는 2024년 73조3057억원, 2025년 80조2840억원, 2026년 85조8200억원 등으로 계속 늘어나게 된다. 실효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 재정이 파탄에 이를 수 있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 내에서는 직역연금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 수준을 넘어 공적연금 전체를 하나의 틀로 통합하는 방식으로 전면적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이미연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관은 "공적연금 재정적자에 대한 해결을 미룰수록 국민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 형평성 등을 고려해 모수개혁과 함께 다른 방향의 개혁안까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