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영화 장르를 꼽는다면 단연 '뮤지컬'일 거다. 극과 음악이 자연스레 녹아들기 힘들었던데다가 제작 수준 역시 처참했으니 영화 팬들에게도, 뮤지컬 팬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영화 '해운대' '국제시장'으로 '쌍천만 감독'이 된 윤제균 감독이 뮤지컬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호기심이 들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았던 '대중 영화'의 아이콘이 국내 영화 업계에서 마이너라고 불리는 뮤지컬 영화를 만든다니. 결과물이 궁금했던 터다. 뮤지컬 무대에서 느낄 수 있는 웅장함과 현장감, 영화적인 표현력과 감성을 모두 한 작품에 담아낼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를 안고 영화 '영웅'을 만났다.
윤제균 감독이 야심 차게 내놓은 영화 '영웅'은 지난 2009년 초연을 올린 뒤 9년째 무대에 올리는 국내 대표 창작뮤지컬이다. 단단한 만듦새와 중독성 강한 넘버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으로 국내 뮤지컬계 파도를 일으켰던 작품이다.
윤 감독의 손길이 닿은 '영웅'은 뮤지컬 팬들과 영화 팬들을 모두 만족하게 할만한 작품이다. 뮤지컬 '영웅'의 대표 얼굴인 배우 정성화와 함께 팬들이 우려하는 점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남녀노소 즐길만한 작품으로 완성했다. 윤 감독의 장기인 '대중성'이 빛을 발했다.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정성화 분)은 어머니 '조마리아'(나문희 분)와 가족들을 남겨둔 채 고향을 떠나온다. 동지들과 함께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으로 조국 독립의 결의를 다진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3년 이내에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맹세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은 안중근. 그는 오랜 동지 '우덕순'(조재윤 분), 명사수 '조도선'(배정남 분), 독립군 막내 '유동하'(이현우 분), 독립군을 보살피는 동지 '마진주'(박진주 분)와 함께 거사를 준비한다.
한편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해 적진 한복판에서 목숨을 걸고 정보를 수집하던 독립군의 정보원 '설희'(김고은 분)는 '이토 히로부미'가 곧 러시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찾는다는 일급 기밀을 다급히 전한다.
드디어 1909년 10월 26일, 이날만을 기다리던 안중근은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전쟁 포로가 아닌 살인의 죄목으로, 조선 아닌 일본 법정에 서게 된다.
영화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윤 감독은 '국제시장'이 아버지를 위한 영화였다면, '영웅'은 어머니를 위한 영화라고 전한 바. 인간 '안중근'과, 영웅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이야기를 담아낸다.
인상 깊은 건 한국 뮤지컬 영화의 문제점으로 불리던 점들을 완벽하게 보완해냈다는 점이다. "음악과 극이 어우러지지 않는다", "흐름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립싱크 장면이 어색하다" 등 관객들이 지적해왔던 부분들을 현장감으로 살려냈다. 윤 감독은 "노래가 연기의 연장선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고 사전녹음·현장 녹음·후시녹음 3단계를 거쳐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를 뽑아낼 수 있도록 했다. 스튜디오 녹음이 불가피한 분량을 제외한 전체의 70%가량이 현장에서 녹음된 라이브 버전이다. 또 솔로곡의 경우는 가급적 롱테이크로 촬영해 극과 음악이 더욱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동안 후시녹음·립싱크로 제작되었던 뮤지컬 영화와 차별점을 둔 부분이다.
윤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영웅'은 '뮤지컬', '영화'가 아닌 온전한 '뮤지컬 영화'로서 활약한다. 단단하게 이야기를 다지고 영화적 표현으로 상상력을 키우며 음악으로 관객들의 몰입력을 높인다. 영화 말미 배우 나문희가 부르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왜 그토록 윤제균 감독이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왜 현장 녹음을 고집했는지 알 수 있다. "노래가 연기의 연장선처럼 보이도록 노력했다"라는 윤제균 감독의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 대목이다.
뮤지컬과 영화의 특성을 살리고 어우러지게 만든 점도 눈길을 끈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점은 마치 무대 전환처럼 연출해 생동감을 더했고,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로케이션 촬영·대규모 세트 제작으로 113년의 세월을 거스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스크린에 완벽히 재현해냈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은 과감하게 지우고 각색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팬들의 우려 중 하나는 이토 히로부미의 미화 혹은 역사 왜곡이었다. 뮤지컬 초연 당시 이토 히로부미를 영웅처럼 묘사하거나 미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설희'가 그를 인류애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를 처단하지 못하는 설정에 "이해하지 못하겠다"라는 반응이 쏟아지기도 했다. 윤 감독은 이같은 오해의 소지들을 차단하고 캐릭터 설정과 개연성을 강화했다.
극 중 '안중근'을 짝사랑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돕는 '링링' 역할도 각색됐다. '링링'은 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꾸고 '마진주'라는 이름으로 활약한다. 해당 캐릭터도 어린 여성이 고향에 처자식이 있는 '안중근'을 사랑한다는 설정으로 지적받았던 바 있다. 영화에서는 '마진주'와 독립군 막내 '유동하'를 엮어 드라마틱한 효과를 끌어낸다. 청춘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그 시절 비극을 더욱 가깝게 느껴지게끔 만든다. 이 역시도 옳은 선택이었다.
윤제균 감독이 구성한 '영웅'을 풍성하게 채워 넣은 건 배우들의 몫이었다. '안중근' 역을 연기한 배우 정성화는 극의 중심으로 파편화된 이야기들이 밀집될 수 있도록 한다. 뮤지컬을 통해 오랜 시간 '안중근'을 연기해왔던 만큼 캐릭터에 관한 완벽한 이해와 풍부한 표현력이 일품이다. 뛰어난 연기력과 노래 실력은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설희' 역을 맡은 김고은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과 빼어난 노래 실력은 '설희'라는 인물을 보다 생동감 있게 만든다. 정성화에게 밀리지 않는 실력으로 이야기의 한 축을 단단하게 이끌어간다. '조마리아' 역의 나문희는 "'영웅'은 어머니의 영화"라는 윤 감독의 말을 실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짧지만 강렬하게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21일 개봉. 관람등급은 12세 이상이며 상영시간은 120분이다.
한국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영화 장르를 꼽는다면 단연 '뮤지컬'일 거다. 극과 음악이 자연스레 녹아들기 힘들었던데다가 제작 수준 역시 처참했으니 영화 팬들에게도, 뮤지컬 팬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영화 '해운대' '국제시장'으로 '쌍천만 감독'이 된 윤제균 감독이 뮤지컬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호기심이 들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았던 '대중 영화'의 아이콘이 국내 영화 업계에서 마이너라고 불리는 뮤지컬 영화를 만든다니. 결과물이 궁금했던 터다. 뮤지컬 무대에서 느낄 수 있는 웅장함과 현장감, 영화적인 표현력과 감성을 모두 한 작품에 담아낼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를 안고 영화 '영웅'을 만났다.
윤제균 감독이 야심 차게 내놓은 영화 '영웅'은 지난 2009년 초연을 올린 뒤 9년째 무대에 올리는 국내 대표 창작뮤지컬이다. 단단한 만듦새와 중독성 강한 넘버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으로 국내 뮤지컬계 파도를 일으켰던 작품이다.
윤 감독의 손길이 닿은 '영웅'은 뮤지컬 팬들과 영화 팬들을 모두 만족하게 할만한 작품이다. 뮤지컬 '영웅'의 대표 얼굴인 배우 정성화와 함께 팬들이 우려하는 점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남녀노소 즐길만한 작품으로 완성했다. 윤 감독의 장기인 '대중성'이 빛을 발했다.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정성화 분)은 어머니 '조마리아'(나문희 분)와 가족들을 남겨둔 채 고향을 떠나온다. 동지들과 함께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으로 조국 독립의 결의를 다진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3년 이내에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맹세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은 안중근. 그는 오랜 동지 '우덕순'(조재윤 분), 명사수 '조도선'(배정남 분), 독립군 막내 '유동하'(이현우 분), 독립군을 보살피는 동지 '마진주'(박진주 분)와 함께 거사를 준비한다.
한편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해 적진 한복판에서 목숨을 걸고 정보를 수집하던 독립군의 정보원 '설희'(김고은 분)는 '이토 히로부미'가 곧 러시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찾는다는 일급 기밀을 다급히 전한다.
드디어 1909년 10월 26일, 이날만을 기다리던 안중근은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전쟁 포로가 아닌 살인의 죄목으로, 조선 아닌 일본 법정에 서게 된다.
영화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윤 감독은 '국제시장'이 아버지를 위한 영화였다면, '영웅'은 어머니를 위한 영화라고 전한 바. 인간 '안중근'과, 영웅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이야기를 담아낸다.
인상 깊은 건 한국 뮤지컬 영화의 문제점으로 불리던 점들을 완벽하게 보완해냈다는 점이다. "음악과 극이 어우러지지 않는다", "흐름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립싱크 장면이 어색하다" 등 관객들이 지적해왔던 부분들을 현장감으로 살려냈다. 윤 감독은 "노래가 연기의 연장선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고 사전녹음·현장 녹음·후시녹음 3단계를 거쳐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를 뽑아낼 수 있도록 했다. 스튜디오 녹음이 불가피한 분량을 제외한 전체의 70%가량이 현장에서 녹음된 라이브 버전이다. 또 솔로곡의 경우는 가급적 롱테이크로 촬영해 극과 음악이 더욱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동안 후시녹음·립싱크로 제작되었던 뮤지컬 영화와 차별점을 둔 부분이다.
윤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영웅'은 '뮤지컬', '영화'가 아닌 온전한 '뮤지컬 영화'로서 활약한다. 단단하게 이야기를 다지고 영화적 표현으로 상상력을 키우며 음악으로 관객들의 몰입력을 높인다. 영화 말미 배우 나문희가 부르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왜 그토록 윤제균 감독이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왜 현장 녹음을 고집했는지 알 수 있다. "노래가 연기의 연장선처럼 보이도록 노력했다"라는 윤제균 감독의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 대목이다.
뮤지컬과 영화의 특성을 살리고 어우러지게 만든 점도 눈길을 끈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점은 마치 무대 전환처럼 연출해 생동감을 더했고,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로케이션 촬영·대규모 세트 제작으로 113년의 세월을 거스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스크린에 완벽히 재현해냈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은 과감하게 지우고 각색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팬들의 우려 중 하나는 이토 히로부미의 미화 혹은 역사 왜곡이었다. 뮤지컬 초연 당시 이토 히로부미를 영웅처럼 묘사하거나 미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설희'가 그를 인류애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를 처단하지 못하는 설정에 "이해하지 못하겠다"라는 반응이 쏟아지기도 했다. 윤 감독은 이같은 오해의 소지들을 차단하고 캐릭터 설정과 개연성을 강화했다.
극 중 '안중근'을 짝사랑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돕는 '링링' 역할도 각색됐다. '링링'은 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꾸고 '마진주'라는 이름으로 활약한다. 해당 캐릭터도 어린 여성이 고향에 처자식이 있는 '안중근'을 사랑한다는 설정으로 지적받았던 바 있다. 영화에서는 '마진주'와 독립군 막내 '유동하'를 엮어 드라마틱한 효과를 끌어낸다. 청춘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그 시절 비극을 더욱 가깝게 느껴지게끔 만든다. 이 역시도 옳은 선택이었다.
윤제균 감독이 구성한 '영웅'을 풍성하게 채워 넣은 건 배우들의 몫이었다. '안중근' 역을 연기한 배우 정성화는 극의 중심으로 파편화된 이야기들이 밀집될 수 있도록 한다. 뮤지컬을 통해 오랜 시간 '안중근'을 연기해왔던 만큼 캐릭터에 관한 완벽한 이해와 풍부한 표현력이 일품이다. 뛰어난 연기력과 노래 실력은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설희' 역을 맡은 김고은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과 빼어난 노래 실력은 '설희'라는 인물을 보다 생동감 있게 만든다. 정성화에게 밀리지 않는 실력으로 이야기의 한 축을 단단하게 이끌어간다. '조마리아' 역의 나문희는 "'영웅'은 어머니의 영화"라는 윤 감독의 말을 실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짧지만 강렬하게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21일 개봉. 관람등급은 12세 이상이며 상영시간은 12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