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및 지방대학소멸 막고 부활의 길
지자체들과 정부부처가 함께 ‘대한민국지역인재양성평의회’ 구성
“대학이 중앙정부가 만든 전략에 따라가는 게 아니라,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 신산업 발전의 ‘허브(hub)’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교육 정책 및 예산 변경에 따른 교육부 개편은 대학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인 ‘고등교육정책실’ 폐지와 더불어 대학 관리·감독과 관련된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교육전문가들은 “지역인재 양성을 위해 시행중인 대학·지자체·지역산업·혁신기관협력지원사업(RIS)이나 기초지자체·전문대학이 협력해 지역 수요에 따른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HiVE)사업 등과 잘 맞물려 추진될 경우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국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권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김진표 국회의장이 나섰다. 대학 예산·규제 권한을 지자체에 정식으로 이양할 경우 고등교육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회법에 따라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조치했다.
이 같은 지방대학의 위기에 대한 타개책으로 이주호 장관은 교육 예산을 과감하게 지자체에 이양하겠다는 방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바람직한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처럼 교육부가 돈을 통해 지지체 줄 세우기를 할 가능성 때문이다. 정부의 갑질이 지자체로 이전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다.
그럼 대학교육 정책 및 예산을 지자체에 이전해 성공한 어떤 나라 모델이 있는가?
대표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독일을 들 수 있다. 독일은 ‘4무’(無)의 나라로, 즉 사교육비, 입시지옥, 대학등록금, 학교폭력이 없는 그야말로 학생 천국이다. 정파를 초월해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학생이 단 한 명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국가 이성을 확립했다. 이를 가능하도록 만든 것은 탁월한 정치리더십과 시스템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먼저 독일은 온전한 자치와 분권이 이뤄지는 연방국가로 교육정책 및 예산권한이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자체에 있다. 이를 기본법(헌법) 91조에 명시하고 있다. 또한 대학교육의 미션과 목표로 “대학의 학문·연구·강의를 통해 나라 미래발전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사회진보와 경제발전, 번영과 혁신능력, 글로벌 도전에 응전하기 위함”이라고 관련법에 규정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공동으로 ‘교육평의회’(Bildungsrat)를 구성해 교육 정책 방향과 예산을 결정했다. 부처가 시대에 따라 이름이 변해왔는데, 이후 ‘인재양성계획·연구진흥을 위한 연방-주위원회’(Bund-Länder-Kommission für Bildungsplanung und Forschungsförderung)를 거쳐 다시 ‘연합학문콘퍼런스’(Gemeinsame Wissenschaftskonferenz : GWK)로 변경했다. 이는 연방정부의 부보다는 아래인 청 급으로 차관급의 청장을 두고 있다. 본부는 과거 수도였던 본(Bonn)에 있다.
GWK 이사회는 각 주정부 교육담당대표와 연방정부 재정부, 경제부, 과학기술부 대표 등이 참여한다. 연방정부 부처가 참여하게 된 것은 예산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독일은 우리처럼 연방정부 차원에서 교육부가 없다. 과거 나치 히틀러의 중앙집권적 강제주입식교육의 폐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연방정부 차원의 교육부가 없다.
독일은 연방국가 원칙에 부합하기 위해 지역에 맞는 인재를 주정부가 스스로 양성하도록 권한과 예산을 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합의해 발표한 대표적인 인재양성의 정책으로는 대학과 중소기업 성장 협력, 주와 연방정부와의 혁신적인 클러스터 전략 협약, 학문 영역에서 남녀평등 방안 합의, 중장기 질병연구 진행 등이다.
독일의 인재양성 및 연구진흥청인 GWK의 연 예산은 150억 유로(약 20조2500억원)이다. 이를 지자체를 통해 각 대학과 연구기관에 배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각 지자체는 우선적으로 산·학·연 혁신클러스터 발전을 위한 정책과 예산을 우선적으로 배정하고 있다. 예로 ‘루르 지역’으로 잘 알려진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NRW)의 경우 바이오, 에너지 등 16개 혁신 클러스터 분야를 정해 기업, 대학, 연구소가 컨소시엄을 형성해 플랫폼 및 랩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독일에는 4대 국가연구소가 있다. 대표적으로 뮌헨에 본부를 두고 전국 지자체에 연구소를 두고 응용기술을 연구하는 프라운호퍼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32번 노벨과학상을 배출한 막스플랑크, 방사능 가속기 거대 국가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헬름홀츠,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는 라이프니츠 연구소 등이다. 4만명이 연구하는 라이프니츠연구소를 포함해 전국 각 지자체에 골고루 특화된 연구소를 두고 지역경제발전에 걸맞은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본부가 수도 베를린에 있지 않고, 뮌헨 등에 있고, 산하 각 개별연구소들은 지역에 맞게 배치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헌법 상 연방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독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다. 하지만 독일처럼 지역 인재양성을 주정부가 중심이 되고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시스템이 대한민국에서도 구축할 수 있다. 새로운 ‘산·학·연·지’ 모델이다. 산업계, 학계, 연구계, 지자체가 공동으로 참여해 지역인재개발에 나서는 방안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각 광역단체장이 소속된 대한민국 시도시장지사협의회(이철우 회장)와 교육부, 재경부, 과기부, 산업부 대표 등이 참여하는 ‘대한민국지역인재양성평의회’ 출범이다. 독일처럼 행정 및 집행력을 갖춘 청 급으로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출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역인재양성이라는 100년 대계를 위한 영호남, 정파·여야가 따로 존재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향후 5년이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다. 지방소멸을 막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인재양성 패러다임 구축 기회를 맞고 있다. 경상북도 이철우 도지사는 “지역대학을 지자체에 맡기고 시도·기업·대학이 공동연구를 통해 지역에 필요한 인재를 지역대학에서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에서 태어나면 지역에서 배우고 일하고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살인적인 집값에 과밀도 인구의 서울로 가지 않고 고향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시작은 독일처럼 인재양성 권한과 예산을 과감하게 지자체에 넘기는 일이다. 이를 통해 지자체들은 더 나은 인재 양성을 위한 경쟁으로 나라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김택환 교수 주요 이력
▷독일 본(Bonn)대학 언론학 박사 ▷미국 조지타운대 방문학자 ▷중앙일보 기자/국회 자문교수 역임 ▷광주세계웹콘텐츠페스티벌 조직위원장 ▷현 경기대 산학협력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