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계열 팹리스 사피온이 미국 반도체 기업의 AI 반도체 굴기에 맞서 자체 생태계 강화에 나선다.
류수정 사피온 대표는 16일 판교에서 열린 ISSCC 2023 프리뷰 행사에서 아주경제와 만나 현재 AI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미국 엔비디아에 대응할 방안으로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 △관계사 SK하이닉스와 메모리 기술 협력 등을 꼽았다.
SDK 개발을 위해 사피온은 전체 인력의 절반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채웠다. 남은 절반은 AI 반도체 설계 인력이다. AI 반도체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하드웨어 설계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도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다.
내년 공개를 통해 사피온은 엔비디아, AMD, 그래프코어 등 미국·영국의 주요 AI 반도체 팹리스처럼 자체 기술력으로 만든 상용 AI 반도체 SDK를 국내 최초로 보유하게 된다.
류 대표는 "AI 반도체 SDK 공개 후 지속해서 고객과 파트너 피드백을 받음으로써 성능을 강화해나갈 것"이라며 "SDK의 존재를 확실히 알리기 위해 별도의 브랜드명을 붙이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류 대표에 따르면 사피온과 SK하이닉스의 협업은 두 가지 형태로 진행한다. 첫째로 SK하이닉스의 차세대 메모리 기술을 가장 빠르게 전달받아 사피온 AI 반도체 성능 향상에 활용한다.
둘째로 SK하이닉스가 강력하게 연구·개발 중인 'CIM(컴퓨트 인 메모리)' 기술을 AI 반도체와 접목해 AI 모델 생성을 위한 기계학습 성능 향상을 공동 연구한다.
이를 두고 김동균 SK하이닉스 펠로우(부사장)는 "메모리 접근을 자주 하는(메모리 바운드) AI 모델은 메모리 속에 뉴럴 엔진을 넣는 것이 효과적이다. 10배 이상 학습·추론 성능 향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며 "(SK하이닉스는) 일반 AI 모델은 프로세서에서, 메모리 바운드 AI 모델은 CIM에서 처리하는 유연한 메모리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류 대표는 사피온 AI 반도체를 기업·정부 데이터센터에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과 연구자들이 구매할 수 있게 개별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학계의 AI 모델 개발자들이 사피온 AI 반도체를 적극 활용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사피온 AI 반도체의 유용성을 확인한 연구자들이 기업에 입사해서도 사피온의 제품을 찾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류 대표는 반도체 연구·개발에 강점이 있는 기술 중시형 최고경영자다. 2004년부터 줄곧 삼성전자 종합기술원과 서울대 등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AI 반도체(GPU), 메모리 연산 통합반도체(PIM)를 연구했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반도체 업계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ISSCC의 ML/AI 분과 커미티 멤버에 이름을 올렸다. ML/AI 분과에는 류 대표 외에도 임석환 삼성전자 전문위원(부사장)을 포함한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의 반도체 연구자 7명이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