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사태를 시작으로 가상화폐를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규제 당국이 무법지대인 가상화폐 시장의 고삐를 바짝 좨야 한다는 ‘정부 역할론’이 부상하는 모습이다.
15일(현지시간) 마켓워치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미 상원 은행위원회가 금융감독당국 수장들을 모아 연 공청회에서는 가상화폐 규제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마이클 바 연준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은 가상화폐 시장의 투명성과 데이터 부족 등 비은행 부문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가상화폐 등 비은행 부문은) 우리가 규제하는 금융시스템에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클 쉬 미국 통화감독청(OCC) 청장 대행은 “재산권이 불분명한 시장은 모래 위에 세워진 시장”이라며 가상화폐 시장을 비판했다.
미국 규제 당국은 FTX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미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뉴욕 남부연방지검 비롯해 FTX 본사가 있는 바하마 당국도 FTX의 위법 행위 가능성을 조사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바하마 당국이 샘 뱅크먼 프리드 FTX 창업자를 미국으로 송환하는 안에 대해서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샘 뱅크먼은 전날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사업을 너무 빨리 확장했으며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FTX 파산으로 개인 투자자들을 포함한 채권자 100만명 이상이 돈을 떼일 위기에 처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정부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고 NBC뉴스는 전했다. FTX에서 최소 10억 달러(약1조3200억원)에 달하는 고객 펀드가 증발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속속 드러나며 규제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다.
사이버안전 전문가인 조세핀 울프 터프대 교수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보험에 가입된 은행 계좌가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돈은 정부에 의해 보장된다'는 것을 뜻한다”며 “그러나 가상화폐는 이러한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당신이 이것(가상화폐)을 살 수 있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가치를 잃을 수 있는 매우 불확실한 것에 투자하는 것이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거기에는 어떤 보호도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수년 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FTX 등 가상화폐 거래소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슈퍼볼 광고 등 화려한 마케팅을 통해 개인 투자자들을 유치했다.
그러나 본사가 바하마에 위치하기 때문에 샘 뱅크먼은 미국 규제 당국에 회계장부를 공개할 필요가 없었다. FTX의 고위 임원들은 홍콩에 있던 본사를 바하마로 옮겨 바하마의 한 공유 주택에서 사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 인해 미국 규제 당국이 FTX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사법 관할권을 입증해야 한다.
NBC는 최근 부상하는 핵심 문제는 가상화폐를 유가증권으로 간주해서 규제해야 하는지 여부라고 짚었다. 지난 5월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 폭락 사태 이후 정치권에서는 스테이블 코인 산업에 대한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상원의원인 신시아 루미스(공화당)와 키어스틴 질리브랜드(민주당)은 가상화폐 산업에 대한 명확한 규제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책임 있는 금융 혁신법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가 FTX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가상화폐 산업에 대한 당국의 규제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상원 농업위원회가 FTX의 의견을 반영해 가상화폐를 디지털 상품으로 분류하고, CFTC가 감독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에 대해 SEC는 최근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해당 법안의 일부는 실패한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추진됐다"라며 "왜 그런지 의아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 가볍게 접근했기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규제가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가상화폐 거래 플랫폼인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CEO는 “FTX.com은 SEC가 규제하지 않는 역외 거래소였다”며 “문제는 SEC가 여기 미국에서 규제 명확성을 만들지 못해 많은 미국 투자자(및 거래 활동의 95%)가 해외로 나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기업들로 인해 미국에 있는 기업을 처벌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원인 애론 클라인은 회계 부정을 저질렀던 MF글로벌, 엔론 사태, MCI월드컴 등을 거론하며 규제가 답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더 많은 규제가 있었다면 그들은 이것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가정이다”며 "그러나 나는 그 가정에 정말로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