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이태원 참사'와 정권퇴진론

2022-11-0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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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축제를 즐기려는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윤 대통령은 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다음 날 오전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다. 진상과 책임의 소재가 파악되기도 전에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남 부원장은 일단 글을 내리기는 했지만 끝내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바이든 미국 대통령 차량 행렬을 윤 대통령의 출퇴근 행렬이라고 올린 누리꾼의 사진을 공유하는 등 생각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에 주말마다 계속 참여해온 김용민 민주당 의원도 “윤 대통령이 본인 스스로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가장 현명한 것은 자진 사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당 차원이 아닌 개인들의 입장이라고 하지만, 이미 민주당내 강경파 정치인들은 윤 대통령 퇴진 집회에 함께 하며 정권퇴진 요구에 몸을 싣는 모습이다.
사실 ‘반윤석열’ 진영에서는 정권퇴진 얘기가 새삼스럽지 않다. 김민웅, 우희종, 안진걸 상임대표 등이 이끄는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이미 지난 여름 무렵부터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주말마다 열어왔다. 3월 9일에 치러진 대선 결과를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고 사실상 불복해왔던 친민주당 계열의 단체이다. 여러 달 전부터 ‘윤석열 퇴진’을 목표로 잡고 촛불집회를 계속해온 사람들이었기에 참사가 있자마자 정권의 책임이라고 곧바로 결론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5일 열린 추모집회에서도 김민웅 상임대표는 “국민을 지켜내지 못하는 정권, 국민의 삶에 관심이 없는 정권. 서울 한복판이다. 정부는 없다"면서 정권의 책임을 부각시켰다. 이에 집회 참가자들은 ‘윤석열을 끌어내리자’, ‘퇴진이 추모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촛불집회의 규모를 더 확산시켜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들의 목표임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추모집회 다음 날에 ‘촛불행동’이 낸 논평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과 그 일당들의 시간은 이제 종말을 고해가고 있습니다. 더욱 크고 강한 기세로 이들을 내쫓아버립시다.”

물론 정권이 물러나야 할 정도의 잘못을 했다면 시민들은 퇴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거기에 금기의 영역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문제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당장 정권을 내놓고 물러가야 할 성격의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물론 제대로 대처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는데 상황을 방치하다가 참변에 이르게 만든 경찰과 지자체 등의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고 발생 네 시간 전부터 경찰에 잇따라 걸려온 신고 전화들에 적절하게 대처만 했더라도 참사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고 경찰을 질타한 윤 대통령의 말도 그런 것이었을 게다.

그러나 참사가 일어났을 무렵 용산경찰서장은 차에, 서울경찰청장은 집에, 경찰청장은 지방에 있었다. 경찰청장이 사고 사실을 다음 날에야 인지했다고 하니 이런 경찰이 어디 또 있겠는가. 엄정한 조사와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이런 경찰에 대한 지휘 책임이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엉뚱한 말을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으니 그 또한 책임의 대열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다가 논란을 빚은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선출직이라는 점에서 거취 문제를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날 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관계당국들의 미흡하고 부적절한 대응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며, 윤 대통령은 그에 대한 책임을 가장 무겁게 물어야 한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극을 마주한 유가족과,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고 있는 국민들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는 사과의 말이 의례적인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하지만 관계당국들의 무능과 잘못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정권퇴진 요구로 비약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정권의 퇴진이란 다름아닌 대통령의 퇴진을 의미한다. 탄핵 절차든 자진 사퇴든, 헌법이 보장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대통령이 물러나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런데 대통령의 퇴진이란 단지 정부 부처나 기관의 잘못이 있었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고, 대통령 본인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거나 국정운영에서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적어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로 윤 대통령이 범한 중대한 과실은 없는 편이었다. 참사 소식을 보고받은 이후 윤 대통령의 지시는 상당히 신속하고 강력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이 밝힌 바에 따르면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오후 10시 15분에 사고가 발생하고 46분 후인 오후 11시 1분에 사고 발생 사실을 보고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 뒤 사고 내용과 사상자 발생 가능성 등을 보고 받고 현장 대응 상황을 점검한 뒤 오후 11시 21분에 윤 대통령이 첫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실은 과거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초동 대응에 실패하며 정권적 차원의 위기에 직면했던 교훈을 의식하여 매우 긴장하고 대응 조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윤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가 국가 애도기간이 끝난 11월 7일에야 있어서 야당에서는 뒤늦은 사과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경찰에게만 책임을 물으려는듯한 윤 대통령의 판단이 적절한 것인지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애도 기간 동안 매일 분향소를 찾아가 조문을 하고 국민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표하는 등, 대통령으로서 이번 참사를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의 범위와 강도는 정치적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적어도 참사 이후 윤 대통령의 대응에 있어서 직접 책임을 물어야 할 중대한 과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도 곧바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내용에 상관없이 이미 예정된 정치적 결론이기 쉽다. 이런 참사는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되고 그러기 위해서도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가야할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질서있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진영의 이해에 따른 극단적인 정치적 주장으로는 이런 참사의 재발을 방지할 수 없음을 지난 경험들은 말해주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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