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자식 잃은 부모의 울음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지금 들리는 찢어지는 울음 소리가 바로 그겁니다. 부모를 잃은 자식들하곤 비교가 안 돼요."
31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한 조문객이 한 말이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빈소 전광판은 다른 호실들과는 조금 달랐다. 바로 상주가 '부(父)', '모(母)'다. 일반적인 장례식에서 상주는 아들과 딸, 손주 등이다. 그러나 이번 참사 피해자들의 경우 상주는 어머니와 아버지, 둘뿐이었다. 부모들의 구슬픈 곡소리가 식장 내부를 가득 메웠다.
다른 장례식장 상황도 비슷했다. 이날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도 빈소가 마련됐다. 28살의 젊고 훤칠한 청년이 영정 사진 속에서 환히 웃고 있었다. 고인의 빈소를 찾은 건 대부분 무거운 표정의 20대 청년들이었다. 정오 무렵 빈소를 찾은 한 친구는 식탁에 앉아 한참을 흐느꼈다.
지난 29일 발생한 이른바 '이태원 참사'로 154명이 사망한 가운데 31일 오후 2시 기준 사망자 전원은 신원 확인을 마치고 가족들의 품에서 장례를 치르게 됐다. 이날 본지는 순천향대서울병원·세브란스병원·보라매병원·고대안암병원·명지병원 등 서울 시내 병원 4곳과 경기도 소재 병원 1곳을 찾아 참사 피해자들의 장례식 현장을 살폈다.
사고 발생 지점과 가장 가까운 병원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엔 총 3명의 빈소가 마련됐다. 상복을 입은 유족들은 피로에 지쳐있었다. 얼굴은 부어있었고 분향실에 앉은 채 허공만을 바라보기도 했다.
고인의 친척들은 건조한 표정이었으나, 빈소에 들어서자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를 들은 이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희생자 유족들은 이들의 죽음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소수의 유족과 지인들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조문은 매우 엄숙하고 고요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갑작스러운 참사 피해로 인한 분통과 탄식만이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고인 A씨와 B씨의 분향실 앞에는 이들의 출신 고등학교와 근무하는 기업에서 보낸 근조기와 조화가 놓였다. 취재를 원하지 않는 유족들 뜻에 따라 장례식장 내부의 취재는 전면 통제됐다.
이날 오전 10시께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도 고(故) 이지한씨를 비롯해 3명의 빈소가 마련됐다. 이씨는 지난 2017년 '프로듀스101' 시즌2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바 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 위치한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엔 총 4곳의 피해자 빈소가 마련됐다. 이 중 세 곳은 31일 입관을 마친 후 1일 발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앞선 두 곳의 병원보다 빠른 30일 빈소를 마련했다.
익명을 요구한 상주 A씨는 "어제(30일) 병원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바로 장례식을 진행했다"며 "어제까진 아이를 찾는 데 급급해 너무 정신이 없었다. 오늘이 돼서야 조문객들을 제대로 맞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9일 오후 10시 30분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부근에서 핼러윈을 앞두고 한꺼번에 인파가 몰리면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54명이 사망하고 33명이 중상, 116명이 경상을 입었다. 사망자 가운데는 중학생 1명과 고등학생 5명 등 10대 청소년도 6명 포함됐다.
서울경찰청은 용산경찰서에 사건을 총괄하는 수사본부를 꾸리고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대검찰청은 사고대책본부와 비상대책반을 구성해 이번 사고를 대응 중이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날 부처 내 '이태원사고수습본부'를 구성, 부상자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의료·심리 지원과 장례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사고수습본부는 조규홍 복지부 장관(중대본 제2차장)을 본부장으로,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을 부본부장으로 해 총 6개팀으로 꾸려졌다. 1일 2회 이상 부상자 등의 상황과 조치사항을 확인할 예정이다.
중상자의 경우 복지부 직원을 일대일로 매칭해 집중 관리한다. 경상자는 병원별로 복지부 직원을 파견해 지원한다. 또 장례식장에 직원을 파견해 지자체와 유가족간 협의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유가족, 부상자 및 동행자, 목격자 등을 위해 국가트라우마센터 내 심리지원단을 설치한다. 목격자나 일반시민 등 이번 사고로 인해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국민은 위기상담전화를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