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금융가에 퍼진 레고랜드發 정치인 포비아

2022-10-29 13:43
  • 글자크기 설정
“김진태 한 명 때문에 채권시장이 아사리판(阿闍梨判) 됐다.” 

그동안 만나본 여의도 금융가의 MZ세대 취재원들은 진보니 보수니 하는 진영 논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의도 금융맨’의 입을 빌려 표현하면 ‘그놈이 그놈’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아예 정치와 담을 쌓지도 못한다. ‘관치금융’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정부 정책 방향을 팔로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경색되자 지방 정치인까지 신경 써야 하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강원도발(發)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방아쇠를 당겼다. 증권사, 카드, 캐피털, 은행 등 업권 불문하고 유동성 위기가 퍼지자 정부가 50조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수혈하기로 했지만, 갈 길은 요원하다. 이미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금융 거래의 본질은 신뢰다. ‘돈을 빌려주면 갚는다’라는 믿음 없이 거래는 이뤄질 수 없다. 단기금융시장에 자금 공급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신용도 우량등급(AA급)인 기업들의 회사채도 팔리지 않는다. 채권 수요는 점점 줄어드는데 금리는 더 빠르게 올라간다.

현재의 시장 상황은 실무를 맡는 2030 금융맨들한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시장이 경색되면서 제2의 저축은행 사태 우려가 금융가에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저축은행들이 무분별하게 부동산PF 대출에 뛰어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고, 결국 부실화로 줄도산하게 됐다. 

여의도 증권가는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하고 있다. 위기경영에 돌입해 마른 수건을 짜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힘들면 회사는 사람을 자르게 된다. 구조조정 계획이 통보되면 회사 분위기가 술렁일 수밖에 없다. 회사가 휘청거리는데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힐 리 없다. 하루하루 살기 벅차다 보면 정치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염증도 느끼게 된다.

김 지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레고랜드 공사는 전임 최문순 강원도지사 시절 자금 조달을 위해 강원도가 이를 지급보증했기 때문이다. 시시비비를 따져볼 필요도 있으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의 이름 석자가 더 각인됐다. 이유는 명확하다. 시장의 논리가 아닌, 정치의 논리로 밀어붙인 게 돌이킬 수 없는 악수(惡手)가 됐다. 계약은 계약이다. 강원도의 보증을 믿고 투자한 사람들이 들고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김진태 지사는 결국 꼬리를 내렸고, 그의 판단 미스가 도 단위에서 끝나지 않고 전국구로 영향을 미쳤다. 

검사 김진태, 정치인 김진태 등 김 지사를 수식할 말은 많다. 하지만 금융권 사람들한테 김진태는 스트레스라는 공식으로 성립됐다. 그러니 당분간 투자금융(IB)맨들에게 ‘김진태 강원도지사’라는 낱말은 가급적 자제할 것을 당부한다. “아, 그 양반 때문에 야근만 늘었어!”라는 푸념이나 신세 한탄을 듣기 싫다면 말이다.





 

[송하준 수습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