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한미동맹의 구호에 가린 미국의 '일방주의' …긴장의 끈 놓을 수 없다

2022-10-1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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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에 한국정부의 부실한 대응이 겹치면서 한국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명분으로 전례 없이 과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촉발되었지만 미국 제조업 부흥을 겸한 무차별적인 ‘미국우선주의’의 찬바람은 멈추지 않고 내년까지 지속할 것으로 공언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최대 앵글로색슨 우방인 영국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관철되어 영국의 감세 방침에 따른 금융위기 촉발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일단 방관하고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한국에 대해서는 호혜적이지 않게 적용되고 있어 적지 않은 우려를 낳는다. 이미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전기차 보조금 지급에서 한국산만 제외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을 어겼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한국의 수출주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국 시장을 개방해주던 미국이 이제는 한국민이 피땀으로 일궈놓은 핵심 제조업을 ‘가치동맹’의 이름으로 거의 통째로 이전해 갈 기세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물론 한미자유무역협정도 점차 사양길로 들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작금의 경기침체는 작년 하반기 인플레이션 전망에 대한 미국 연준의 낙관적인 입장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연준은 코로나 팬데믹의 종식에 따른 소비회복으로 인한 물가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은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을 가져왔고 중국의 경제봉쇄에 더해 미국에 의한 중국 견제가 노골화되면서 세계 공급망에 대혼란이 초래되었다. 금년 9월 들어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주요 선진국에서 8〜9%에 이르는 물가상승률은 연준에게 세 번 연달아 0.75%의 금리인상을 단행하는 빌미를 주었다. 인플레이션 억제만을 생각한다면 중국에 크게 의존하던 공급망을 주도적으로 재편하는 미국이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희토류를 포함하여 전기자동차 배터리와 반도체시장에서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너무 급박하게 실행에 옮기면서 중국의 코로나 봉쇄조치로 인해 가속화되던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부은 모양새가 되었다. 작금의 미국 대외정책방향은 세계화에서 미국 중심의 극단적 보호주의로 전환되었음이 금년에 통과된 ‘반도체지원법’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한국에게 미국 주도의 각종 ‘동맹’에 참여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하지만 미국이 바라보는 ‘가치동맹’은 한·미 간 이익의 균형보다 미국우선주의에 명백히 기울어져 있다. 한국은 지금처럼 미국의 ‘처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데 진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을 향한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는 분명하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희토류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이 필요한 만큼 미국기업이 미국 내에서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미국이 보여준 본심은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술은 미국 기술이 최첨단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필요하지만 전기자동차는 미국산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니 배제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는 한국 배터리 3사와 미국 자동차 3사가 미국 내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합의한 직후 미국 3사가 배터리 특허기술의 공유를 요구하고 나선 데에서 이미 읽혔다. 한국으로서는 독자 배터리를 기반으로 전기차 보급이 가장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에 조급해하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익균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배터리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국에게 다른 대안은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반도체산업에서도 미국 인텔, 마이크론 등이 첨단기술을 확보할 때까지 한국기술에 의존하되 지원금은 한국 기업의 중국 생산을 빌미로 가능한 한 미국기업에게 몰아주려는 속셈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미국의 최첨단 기술 욕심을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반도체 후공정에 대한 국가 차원의 육성책도 시급하다. 제조기술이 첨단화할수록 후공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대만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튼튼한 후공정에 있다는 평가도 있으므로 한국은 반도체산업 생태계의 내재화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미국 첨단제조업의 건설을 위한 한국의 협력을 둘러싼 협상에서 한국 정부의 입지를 강화하려면 야당이 앞장서 협상절차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인도태평양경제포럼(IPEF)’이나 ‘칩4동맹’이 협의기구이기는 하지만 협의결과가 구속력을 가지는 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국익과 관련될 것이므로 국회 동의 또는 국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과 관련해서 한편으로는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를 통해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책임자 문책을 강력히 촉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에게 일방적이고 차별적으로 손실을 가져다주는 이 ‘한국차별법’에 대응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대응입법을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대미협상력을 키우려면 국내경제의 체질강화도 중요하다. 경제위기의 위험요인을 하나라도 더 제거하는 차원에서 감세정책을 시급히 취소해야 한다. 재정건전성을 걱정하면서 감세한다는 것 자체도 모순이고 긴축적 통화정책과 팽창적 재정정책은 엇박자이기도 하다. 영국과는 외환보유고와 국가부채비율에서 사정이 다르다지만 영국 금융시장 불안의 핵심은 상충되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정부에 대한 시장불신에 있다. 외환보유고 감소, 환율 상승, 주가하락, 경상수지 적자 등 지표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그나마 우량한 지표인 국가부채비율마저 불안요인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주요 선진국들처럼 ‘횡재세’를 도입하여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감소를 보전함과 아울러 산업정책과 사회정책의 재원으로 활용하는 대안이 훨씬 미래지향적이다.

미국 입장에서 첨단제조업의 건설은 결국 한국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으로서는 경험해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상황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언제나 대비는 해야 한다. ‘한·미동맹’, ‘가치동맹’의 구호에 가려 ‘메이드 인 아메리카’는 물론 ‘메이드 바이 아메리칸’을 향한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민국의 국익이 훼손당하지 않도록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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