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박상수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법률사무소 선율)은 아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일반 소비자의 권리 보호와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집단소송제 도입은 필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상수 변호사는 법조 경력만 10년을 넘어가는 변호사다. 대기업의 사내 변호사, 참여연대 활동,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다채로운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그가 '사명'으로까지 언급한 것이 바로 '집단소송제' 도입이다.
국내 첫 집단분쟁 배상 결정 이끌어
박 변호사가 집단소송제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게 된 데에는 본인 경험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박 변호사는 법조 이력 속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로 'LG 건조기 사건'을 꼽는다. 2019년 해당 의류 건조기 자동세척 기능에 문제가 생겨 소비자들이 악취와 피부 질환 등 피해를 호소한 사건이다.그는 "소비자원에 집단분쟁 조정 신청을 하면 신청한 소비자 외에 다른 소비자들에게도 배상할 수 있도록 결정을 할 수 있다. 제도 도입은 2000년대 중반에 이루어졌지만 당시까지 실제 제도가 적용된 사례는 아직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박 변호사는 피해 소비자 280명과 함께 집단분쟁 조정 신청에 들어갔고, 이와 함께 해당 건조기를 구입한 모든 소비자에 대한 배상도 요청했다. 조정 신청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당시 소비자원은 국내에서 최초로 집단분쟁 조정 결정을 내리면서 신청 피해자뿐만 아니라 제품을 구입한 모든 소비자에게도 1인당 10만원씩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소비자원 조정 결과에 따라 기업이 부담해야 할 금액만 1400억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소비자원의 조정 결과가 실제 실현되는 일은 없었다. 법률상 규정된 '조정'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LG전자는 무상 AS와 리콜 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소비자원의 조정 권고는 거부했다.
"피해자도 소비자 소송 외면···집단소송제 도입해야 기업 구태 막을 수 있어"
박 변호사는 이런 이유로 조정 형태의 집단분쟁 구제 제도는 효용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그는 "집단분쟁 조정신청 제도는 집단소송제의 타협안으로 도입한 것이라 불완전한 것"이라면서 "민사소송으로 소비자의 집단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공동 소송이 필수인데 경험자들은 변호사는 물론이고 피해자도 더 이상 소송을 진행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민사소송에서 물적 손해를 입증하기 위한 감정은 그 비용이 상당히 비싸다. 또 소송의 기판력이 소송 참가자에게만 미치기 때문에 새로운 피해자 구제를 위한 절차도 상당히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은 2004년 1월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을 통해 증권 분야에만 부분 도입됐다. 2020년에는 대법원에서 증권 관련 집단소송의 첫 승소 판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 분야에서는 집단적 피해가 발생해도 효율적인 구제가 불가능하다.
박 변호사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만 크고 작은 소비자 피해 사건이 반복되는 것은 결국 ‘그래도 된다’는 인식 때문"이라면서 "미국은 집단소송 제도가 잘 구축돼 있어 소비자 보호가 탄탄하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서도 집단소송 제도는 반드시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정상화 위한 연대 나설 것"
박 변호사는 내년 2월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임기 후에는 검수완박법 개정 등 형사사법 분야 정상화에 일조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박 변호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배임과 사기 등 서민 경제 범죄 피해자들이 형사적으로 그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는 일들이 굉장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서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형사사법 분야의 정상화를 위한 시민단체를 조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개정에서 더 나아가 관련 분야에 대한 진정한 개혁을 위해 법령과 제도를 같이 연구하고 연대하는 조직을 꾸릴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