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칼럼] 한글의 '경제적 가치' 얼마일까

2022-10-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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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수석연구위원] 



과연 얼마일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실 때, 이것이 만들어지면 후손들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혜택이 있을까, 그것은 과연 얼마의 이득이 있을까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전 세계에서 한국 문화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으며 한글 자체도 세계에서 환영받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외국인들이 입은 셔츠에 담긴 한글이나, 세계적으로 열광하는 K-드라마를 보면서 한글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높아진다든지 하는 현상을 보면 한글 자체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궁금해졌다. 한글의 경제적 가치가 얼마일까. 글과 말은 소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소통이 어려운 글과 말은 존재 가치가 별로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도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이유가 ‘말이 문자와 달라 백성들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잘 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고자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훈민정음 서문).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방송이나 신문에서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답답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막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그 자막의 내용이 무엇인지 묻는 자녀의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해서 민망했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이런 경험이 많다. 나름대로 전문가로 인정받아서 참석한 회의에서 오가는 말들이 거의 영어로 된 단어, 그 단어 끝에 살짝 덧붙여진 조사들로 구성된 말들로 이루어진 회의에서 나 홀로 소외된 경험이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난 후 나를 바라보는 위안의 시선을 견디는 것은 오롯이 나만의 몫이었다.

자칭 타칭 전문가인 나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오갔던 회의에서 느꼈던 소외감이 1년에 한두 번 경험하는 드문 일은 아닐 것이다. 요즘 뉴스나 방송, 길거리의 간판과 현수막을 볼 때 도대체 저 말이 무엇이지라고 궁금했던 경험은 꽤 많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그렇고, 그럭저럭 대충 넘어가자니 어떤 경우에는 그 단어를 모르면 뭔가 피해를 볼 것 같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말이 서로 통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불편한 일이 발생하는데, 문제는 그런 불편한 점이 개인들 간의 사적인 대화가 아닌 공적인 분야에서 언어가 너무 어려울 때 발생한다. 이 경우, 공적인 정보가 국민에게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그냥 단순히 소외되었다는 기분이 불편하다라는 점을 넘어선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앞서면서, 공공 부문에 대해 관심도가 떨어지게 되고 정보 습득의 양극화가 발생하면서 그에 대한 대응력도 차별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는 이러한 효과, 즉 공공부문에서의 언어가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우려면 어떤 점이 좋을까라는 주제에 대해 연구했다. 쉬운 우리말을 쓰자고 아무리 목소리 높여 주장해 보아도 그 목소리가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격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평을 감안해 공공언어 개선의 경제적 효과를 추정해 보았다.

공공언어는 사적인 대화 수준을 넘어서는 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나라 말로 되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아 국민 입장에서는 불이익을 당할 우려도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선 시즌에 각 당의 대선 후보들 간 방송토론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정책은 각 후보의 부동산 정책이었을 것이다. 각 정당의 정책 근간에 자리잡은 철학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정책의 방향성도 다르고, 이를 대선 후보들이 어떻게 소화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집값은 어떻게 안정시키도록 유도할 것인지, 대출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듣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큰 그림에서의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DTI나 LTV와 같은 전문적인 용어에 대해 상대방의 이해도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데만 시간을 할애하느라 정작 국민은 대선 후보들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들을 기회가 없었다. 각종 화려한 언변과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국민들을 현혹하는 과정에서 정작 제일 중요한 정책의 방향이나 정책 담당자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면, 이게 과연 세종대왕께서 의도한 원활한 소통을 위한 한글 창제 의도와 얼마나 부합하는지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이런 문제점에 착안하여 공공언어 개선의 경제적 가치를 추정해 보았다. 그렇게 추정한 가치는 한글의 경제적 가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겠지만, 나름대로 추정할 수 있는 연구 방법론인 ‘가상가치평가법(Contingent Valuation Method)’과 취득 가능한 데이터인 설문조사(1100명의 국민에 대한 설문조사)를 활용하여 연구를 수행하였다. 불편함과 불완전한 소통을 방지하는 측면에서 공공언어가 개선된다면 당신은 1년에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겠는가라는 의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 공공언어 개선의 경제적 효과, 즉 쉬운 공공언어의 공익적 효과는 3375억원으로 추정되었다. 이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펼쳐서 계산하면, 우리 국민 한 사람은 공공언어 개선을 위해 1년에 7800원 정도는 지불할 의향이 있다라는 결론으로 재해석된다.

3375억원. 이 금액이 많은가 적은가에 대해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가 연간 6조원이라는 연구결과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서울시 미세먼지 관리 정책의 경제적 효과가 연간 5500억원이라는 연구결과와는 비슷할 수도 있겠다. 올해 1천회를 맞이한 로또의 최고 당첨금액이 407억원이라는데, 이것에 비해서는 분명히 큰 금액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체 금액이 아닌 1인당 1년에 7800원을 지불할 의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는가. 쉬운 언어의 가치가 저 정도 수준 밖에는 되지 않는가라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겠다. 커피 한 잔 금액.

말과 언어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국어를 비롯해 공적인 부문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만 사용된다면, 일반 국민들이 체감하는 정보의 정확성은 떨어질 것이다. 어떤 국민들은 이해하기 더 어려워서 정보 이해 측면에서의 양극화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높다.

한글날을 앞둔 시점에서 쉬운 우리말, 특히 공공부문에서 쉬운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자는 취지의 주장을 해 본다. 물론 이런 방향의 노력이 예전보다는 더 많이 진행되고 있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한국어 진흥기반 조성 및 확산” 사업에 대해 2019년 약 317억원에서 2020년 약 645억원, 2021년 약 892억원의 예산이 지원되는 등 점차 지원예산이 증가하는 점이 이런 노력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결국에는 쉬운 공공언어 확산 정책 역시 정책의 입안자나 보도자료 작성자 중심과 같은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그러한 내용을 받아들이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정확한 정보 제공, 심리적 스트레스 해소 및 정보 습득의 평준화 등 더욱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홍준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농경제학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농경제학 박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 ▷고용노동부 고령화정책TF ▷한국장학재단 리스크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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