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로스쿨] ②'암기 전문가' 양성소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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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사실상의 변호사 입시 학원 변질됐다는 목소리

법조인 양성 무색…학생들 종일 암기만

변호사 배지 [사진=연합뉴스]

[아주로앤피] "(변호사)시험을 잘 보려면 실력을 쌓아야 한다? 아주 위험한 착각이에요. 연구하며 내 지식을 넓힐 생각, 내 실력을 쌓을 생각을 하고 있으면 절대 안 됩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벼농사가 ‘상위 1% 변호사의 합격 비법’이란 콘텐츠에서 한 말이다. 변호사시험 점수는 실력과 무관하며, 기출문제 분석과 암기 기술이 핵심이라는 취지다. 

복면을 쓰고 동영상에 출연하는 그는 자신을 ‘한 대형 로펌의 현직 변호사’라고 소개한 바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르면 로스쿨은 △국민의 다양한 기대 부흥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춘 법조인 양성 △법조인의 풍부한 교양을 위해 설립됐다. 

기존 사법고시가 천편일률적인 법조인을 양성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한 반성적 차원에서다.

그러나 로스쿨 관계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변호사 양성이라는 로스쿨 도입목적이 사실상 없어졌다. 고시학원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월 오전 광주 전남대학교 진리관에 마련된 변호사시험 고사장 입구에서 발열 체크 등을 진행햐고 있다. 법무부는 코로나19 확진자도 이날부터 진행되는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게 방침을 변경했다. [사진=연합뉴스]

◆법조인 양성은커녕 3년 내내 ‘달달’ 암기만
해를 거듭할수록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되는 가운데 좁은 합격문을 뚫기 위해 로스쿨 교육현장 관계자 모두가 고시생활을 자처하고 있는 형국이다.

학생들은 로스쿨 강의 대부분을 변호사시험 합격에 초점을 맞춰 수강 신청을 하는가 하면, 로스쿨 측 역시 학기마다 진행하는 중간·기말 시험을 변호사시험 기출 문제를 변형해 출제하고 있다. 

방학이면 로스쿨 차원에서 유명 강사를 초빙해 특강을 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변호사시험을 대비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교수에게만 수강신청이 몰리는가 하면 학점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수강신청을 한 후 해당 강의시간에 들어가 몰래 변호사시험 준비를 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로스쿨 재학생은 학교 강의시간에 “수백만원씩 들여가며 인터넷 강의로 공부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로스쿨 재학생들은 한 학기 평균 10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 외에도 1년에 800만원에 이르는 돈을 학원비, 과외비 등 사교육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로스쿨에는 로스쿨 과정 3년 동안 매일 같이 변호사시험만 준비하는 학생으로 넘쳐난다. 

대부분 로스쿨 재학생들이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나와 강의와 스터디, 특별 강의, 인터넷 강의까지 챙기다 보면 자정은 금세 넘긴다”고 입을 모은다.

또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닌 다른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정하고 있다. 변호사시험에서 쉽게 점수를 얻기 위해서다.

지난 제11회 변호사시험에서 학생들이 7개 선택과목 중 가장 많이 응시하는 과목은 국제거래법으로 드러났다. 다른 선택과목보다 법조문과 판례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지난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 당시 수험생 1665명 중 노동법을 선택한 수험생은 516명(30.99%)으로 가장 많았다. 

이에 대해 서울 소재 로스쿨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87.25%였지만 제11회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53.55%였다. 둘 중 한 명은 떨어지는 시험이다 보니 합격확률이 높은 과목만 선택한다”며 “나의 적성·관심사 등은 다 무시하고 오로지 시험만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 변호사 양성이라는 로스쿨의 목표와 달리 변호사시험 기계만 살아남는 구조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제10회 변호사시험 국가배상청구소송 대리인단 및 응시생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국가배상 소송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변호사시험 방식부터 개선해야
지난 2018년 서울대 로스쿨 교수들은 ‘로스쿨 10년의 성과와 개선 방향’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는 연구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들이 변시 문제를 풀고자 암기하는 판례 수는 1만 개를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명순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변시는 수많은 판례 암기를 요구한다. 물론 법 원리와 연계된 핵심 판례는 암기해야 한다. 그런데 변시는 말단 실무적 판례 암기까지 요구한다. 정답 시비를 피하고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구석에 숨은 판례들이 시험장에 들어오게 된다. 대학에서 이에 맞춘 수업을 할 수는 없다. 많은 학생이 정규수업과 별도로 변시를 준비한다. 이는 로스쿨 제도에 대한 일반인의 불신을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로스쿨 교육을 정상화하려면 현행 변호사시험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2008년 김선수 대법관이 출간한 ‘사법개혁 리포트’를 통해 사법시험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김 대법관은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사법개혁비서관으로 재직했다.

△대학 법학 교육과 법률가 양성이 단절돼 법학 교육이 표류하고 법과대학이 고시 학원화된다. △파행화된 대학 법학 교육이 경쟁력 있는 전문 법조인 부족을 초래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법률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다. △사법시험이 법률가 자격시험이 아니라 판·검사 채용시험 성격으로 운영된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장기간 사법시험에 빠져 폐해가 발생한다. △사법시험이 법학뿐 아니라 다른 분야 대학교육 파행까지 초래한다. △법학 외 인문 교양 및 전공지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선발된 법조인의 응용력·창의성이 부족하다. △사시 1차는 객관식 시험으로 미리 정해진 정원에 맞춰 합격자를 선발하는 데 치중해 지엽적인 암기식 문제에 집중돼 있다.

로스쿨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여전히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 바람직한 법조인 양성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로스쿨 제도 개선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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