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가 국내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를 키우기 위해 삼성전자와 손을 맞잡았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 세계 2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과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차원에서 팹리스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중기부는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팹리스 챌린지 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는 국내 반도체 산업을 선도할 혁신적인 팹리스를 발굴‧선발해 민관 협력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행사는 윤석열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약속을 이행하는 첫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계는 지난 5월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대회’를 통해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공정과 상생을 통해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영 장관 “원팀 돼야”··· 최시영 사장 “동반성장 계기”
이 장관은 팹리스 5개사 대표들에게 직접 시상 패널을 전달하며 “대한민국 미래 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기업들을 알아보고, 지원해줄 기회를 갖게 된 점이 중기부 장관으로서 감격스럽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 팹리스 챌린지 대회는 지난 5월 대기업 총수들과 중소‧벤처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상생협력을 선언한 뒤 나온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이자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인 반도체 분야에서 이런 행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상생은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함께 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국경 안에 있는 기업들이 원팀을 이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국경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사장은 “최근 세계 각국은 반도체를 국가 핵심 기간산업으로 선정 및 육성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반도체 시장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지만 국내는 경쟁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지원 하에 팹리스와 파운드리 등의 유기적인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대회는 민관이 힘을 합쳐 국내 우수 팹리스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육성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며 “삼성전자는 능력이 있지만 제반 여건이 충분치 않아 어려움을 겪는 중소 팹리스와 협력을 강화해 이들의 성장에 기여하겠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런 대회가 개최돼 동반성장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반도체 강국, 팹리스는 빈국··· 중기부·삼성전자 해결 나서
중기부와 삼성전자는 이번에 선발된 팹리스 5개사를 함께 지원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를 통해 5~130나노 12개 공정에 25회 MPW(웨이퍼 한 장에 다수의 프로젝트 칩 설계물을 올려 시제품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제품 개발 방식) 서비스를 제공한다. 선정된 팹리스는 다음 달부터 1년간 원하는 기간에 원하는 공정을 선택해 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중기부는 기업당 1억원 이내의 바우처 형태로 소요비용을 지원한다. 선정 팹리스는 디자인하우스, 파운드리, 후공정 등 사용 분야를 자율 선택해 과제를 수행한다.
중기부와 삼성전자가 손잡고 팹리스 육성에 나선 것은 파운드리 공급난으로 인해 중소 팹리스가 MPW 공정을 이용하거나 신제품 검증 기회를 얻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팹리스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안정적인 판로 확보가 어려워 사업의 위험 부담이 큰 편이다.
이로 인해 글로벌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미미하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미국의 점유율은 68%로 1위를 차지했다. 대만(21%)과 중국(9%)이 뒤를 이었고 한국의 점유율은 고작 1%에 그쳤다.
이번 협력은 시스템반도체 산업 분야의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이기도 하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점유하고 있는 강국이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3%에 불과하다.
대기업이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담하는 메모리반도체와는 달리, 시스템반도체는 주로 중소기업이 영위하는 팹리스가 파운드리에 생산을 위탁하는 구조다. 구체적으로 IP기업(설계자산)⟶팹리스(설계)⟶파운드리(생산)⟶후공정(패키징‧테스트) 등으로 생산공정이 분업화돼 있다.
팹리스의 설계 능력이 파운드리와 후공정 등 전체 생태계의 경쟁력 향상을 견인하기 때문에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팹리스 중심의 연계 지원 방안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딥엑스의 김녹원 대표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파운드리부터 로직 설계, 메모리, 센서, 아날로그, 소자 등 각 분야가 서로 긴밀히 협력해야 기술 우위를 유지할 수 있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술이 안정화되기 전인 현시점에 글로벌 팹리스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이 출연해야 한다”며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인 삼성전자가 국내에 존재하고, 정부가 시스템반도체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파격적인 지원을 펼치는 점은 굉장한 호재”라고 부연했다.
중기부, 팹리스 현장 지원 강화··· “미국·대만과 격차 극복”
그동안 중기부는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발전을 위해 팹리스 현장의 3대 애로인 △자금 △인력 △상생 측면에서 다양한 지원 정책을 추진해 왔다. 창업기업의 자금 지원을 위해 초기사업화 자금과 연구개발(R&D), 융자‧보증을 패키지를 지원하고, 막대한 초기 자금이 필요한 팹리스의 특성을 고려해 운전자금 지원한도를 기존 5억원에서 10억원까지 2배 확대했다.
지난해에는 국립마이스터고(구미전자공고)에 반도체 설계 특화과정을 신설해 20명의 학생이 국내 팹리스에 취업했다. 올해도 주요 대학 2곳에 시스템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할 계획이다.
상생협력을 위해서는 올해 초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 △키파운드리 등 국내 파운드리 4개사와 한국팹리스연합 임원진들이 만나는 ‘팹리스-파운드리 상생협의회’를 분기별로 개최하고 있다.
중기부는 앞으로도 실질적인 협력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이 장관은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분야 선두국가지만 시스템반도체 분야에는 관심도가 떨어져 있었다”면서 “미국이나 대만에 비해 늦은 감이 있지만 (성장) 속도의 차이는 분명하다. 국내 기업들은 기술력으로 보면 패스트팔로(빠른 추격자)가 아닌 퍼스트무버(선도자)”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전략적으로 지원한다면 기존에 벌어진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며 “글로벌 최전선에서 경쟁하고 있는 기업들과 협업을 통해 어디에 정책 지원을 집중해야 할지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