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불멸의 금리' 5% 법정이율..."탄력적 변동" vs "법적 안정성"

2022-07-2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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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이율 낮아 돈 갚으면 손해...저금리 땐 "폭리" 비판도

"탄력적으로 변동해야" vs "법적 안정성 중요" 의견 교차

獨·美·日 변동이율제 일부적용..."변화하는 경제상황 반영"

[사진=아주경제 DB,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빅 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기준금리가 2.25%까지 치솟는 등 고금리 시대를 맞아 '법정이율'을 탄력적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법조계는 상대적으로 법정이율이 낮아지면서 개인 채무를 변제하기보다 금융권 대출부터 갚거나 고금리 상품에 가입하는 등 고의적으로 변제를 늦추는 현상이 만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개인이 개인에게 빌려준 돈에 대해 받을 수 있는 이율 상한선은 민법상 연 5%(상법 연 6%)다. 민사 법정이율은 별도로 이자율이 정해지지 않은 모든 민사상 채권·채무에 적용되는 기준 이율이다. 법정이율은 1958년 민법이 제정된 뒤 6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 법정이율 낮아 원금 대신 이자 변제가 이득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채무자가 빌린 돈(원금)을 갚기보다는 투자를 하거나 대출 이자를 먼저 갚는 게 이득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법정이자율이 시장금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뜻하지 않게 발생한 새로운 풍속도다. 
대형 시중은행들이 연리 3%대 예금 상품이나 연리 6%대 적금 상품을 제공하면서 KB국민·신한·우리·농협·하나 등 5대 시중은행 예·적금에 매일 2조원에 가까운 돈이 몰리고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듯 5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변동형과 고정형 상단 모두 6%를 훌쩍 넘었다. 이런 속도면 올해 말쯤엔 대출금리 상단이 8%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비해 민사 법정이율은 연 5%로 64년째 고정돼 있다. 우리 민법 제379조는 '법정이율'을 규정하고 '이자 있는 채권의 이율은 다른 법률의 규정이나 당사자의 약정이 없으면 연 5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빌린 돈을 갚기보다 투자나 대출 이자를 갚는 것이 채무자에게 더 나은 선택이 되는 셈이다.
 
◆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저금리 땐 "폭리"
기준금리가 1%를 겨우 웃도는 저금리가 지속될 때엔 법정이율이 상대적으론 높아지면서 '폭리'라는 비판이 거셌다. 심지어 기준금리가 제로(0)에 가까운 0.5%까지 낮아진 2020년 전후로는 '법정이자율 5%→3% 인하' 민법 개정안이 두 차례(2017년 민병두 의원·2021년 김진표 의원) 발의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기준금리가 제로에 가까운 0.5%까지 낮아진 상황에서 법정이자율이 지나치게 높아 소송 당사자들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채권자가 변제 청구를 일부러 뒤늦게 해 법정이율 혜택을 보는 상황 등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서초동 A변호사는 "그동안 계속 저금리 시대였는데 법정이율이 5%면 상대적으로 상당히 높았다"며 "당시도 지금도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는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탄력적 변동" vs "법적 안정성 중요"
법조계에서는 법정이자율을 경제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고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증권 전문 B변호사는 "채무 변제를 이행하지 않고 이자가 쌓이는 대로 놔둘 수 있다. 그러면 법정이율이 제도적으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 된다"며 "예금 이자나 적금 이자가 더 높으면 소용이 없다. 채무자로서는 돈을 안 주고 버티는 게 더 유리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소송으로 이어지면 소송촉진법상 연 12% 이자가 발생하게 된다.

형사법 전문 C변호사는 "법정이율보다 시중금리가 더 높아지면 대출이라도 받아서 돈을 갚기보다 버티기로 일관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다만 법정이자는 개정이 어려운 측면이 있고 법 개정 전후로 적용하기도 복잡해서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반대한다"고 말했다.

법정이율을 바꾸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기본법인 민법과 상법을 개정해야 해 이율 변경이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법률에 법정이율을 고정시키지 말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도산 전문 D변호사는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부분은 조금 회의적이다. 법적 안정성이라는 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며 "예를 들어 몇 년에 한 번 등 결국 대안은 정해진 기간을 두고 바뀔 수 있다는 부분을 명문화하는 방향이겠다"고 조언했다.
 
◆ 獨·美·日 변동이율제 일부 적용···"변화하는 경제 상황 반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독일은 법정이율을 4%로 규정하고 6개월마다 기준이율에 따라 변경하고 있다. 미국은 26개 주가 변동이율제를 채택하고 있다. 김익태 미국 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미국 민사는 주마다 다르지만 절반은 고정금리, 절반은 변동금리"라며 "그때그때 경제 상황과 금리를 반영해 법정이율을 정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일본도 한국처럼 민법 연 5%(상법 6%)였지만 2020년 4월 민법과 상법이 개정되면서 연 3%로 통일됐다. 다만 법정이율은 3년을 1기로 하고 매 기수마다 변동하는 변동제다. 이탁규 일본 변호사(일본법인 J&T 파트너스)는 "일본에서는 시장금리가 낮은 수준인 경제 정세에서는 연 5%라는 법정이율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있어서 법정이율을 인하하는 방향으로 재검토가 이뤄져 개정법에서는 연 3%로 인하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향후 경제 정세 변동 등에 연동해 적절한 수준을 확보하기 위해 법정이율 변동제를 채택했다"며 "무엇보다 법정이율이 큰 폭으로 변동하면 실무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완만하게 변동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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