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주경제는 칸 국제영화제를 휩쓸고 국내 박스오피스를 역주행 중인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 감독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언제나처럼 관객들을 홀리고 붕괴시키는 그와 작품에 대한 이모저모를 나눌 수 있었다.
"제 영화 치고 평균적인 반응이 높은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아주 좋아하거나, 아주 싫어했기 때문에 평균을 내면 초라한 점수였던 것 같은데요. 처음으로 고르게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만 이야기한다면 (전작에 비해) 폭력과 노출이 많지 않아요. 그 점이 다른 점이겠죠. ('헤어질 결심'을) 만드는 과정에서 폭력과 노출 등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고 '감정 표현이 노골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손짓, 눈빛에 의미를 담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요소를 지워야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전작이 의도적으로 폭력성, 선정성을 담아냈다면 '헤어질 결심'은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폭력과 선정을 지우고 인물들의 섬세한 언어를 통해 감각을 깨우는 작품인 만큼 박 감독의 전작보다 관람 등급이 낮아졌다.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아 더 많은 관객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제 작품을 중·고등학생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영화를 보기도 전에 먼저 겁먹고 끔찍하거나, 선정적인 장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관람하지 않았던 분들도 마음 편히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도 기대하고 있는 바가 있고요."
"안개란 시야를 방해하기도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멋진 풍광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양면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모두 정훈희 님의 '안개' 가사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안개'가 가장 잘 활용된 장면은 '해준'과 '서래'가 호미산에서 만나는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또 유일하게 키스신이 있는 장면이죠."
'서래'는 호미산을 찾아오는 '해준'에게 "여긴 안개가 없다"고 일러준다. 맑게 갠 호미산에서 만난 두 사람은 또렷한 정신으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박 감독은 "정신이 번쩍 드는 추위가 느껴지도록 연출했다"고 부연했다.
"반대로 '해준'이 호미산을 내려가 '아내'를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다시 안개가 자욱해지죠. '아내'에게 '여긴 눈이 안 왔어?' 하고 묻는 얼굴이 몽롱하고 잠이 덜 깬 듯 보였어요. 그렇게 연기해달라고 요청했고요. '해준'은 '서래'와 있을 때 오히려 현실에 있는 것처럼 또렷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양면적인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헤어질 결심을 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성공할 수는 없죠. '결심'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결심에만 그칠 수 있으니까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서래'의 최후도 무척 독창적이다. 그는 '해준'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에게 '미결 사건'으로 남고 싶어서였다.
"단순히 죽는다기보다는 사라진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었어요. 그래야 '해준'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을 테니까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제. 저주라면 저주고, 희망이라면 희망이겠죠? 그런 상태에서 영화를 끝내고 싶었어요. 소멸하는 세상에서 소모되는 퇴장이요."
박 감독은 30년 전 구상한 단편영화의 조각을 꺼내 '서래'의 최후를 완성했다.
"30년 전쯤 구상하던 단편 영화 내용이었어요.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는 방법에 관해 고민했죠. 구덩이에 빠져 죽으면 동시에 흙이 덮이고 편편해지도록 기계 장치를 만들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야기를 구상했었거든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요. 그게 제 머리에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전 강박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예민함과 거리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저와 달리 예민하고 히스테릭한 사람들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그런 성격의 인물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더욱 그렇죠. 관객이 볼 때도 예민한 사람의 행동이 더 흥미롭지 않겠어요? 인간이 어떤 속성을 가진 존재인지 표현할 때 훨씬 효과가 좋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시청각적으로 자극 요소를 대치하고 활용하면서 관객의 감각을 깨우고 지성의 활동을 유발하게 하잖아요? 그런 이유로 제가 영화를 만들 때 시청각 요소와 등장인물의 예민함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