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인사이드] 한국타이어 45억 세금소송 패소...'재산 해외은닉'의 덫

2022-07-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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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래·조현식 부자 "단순 투자행위"...재판부 "재산은닉"

"재산 해외은닉, 적극적인 기망행위"...뿔나는 과세 당국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회장이 지난해 4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성년후견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타이어그룹 총수 일가가 재산을 스위스 등 해외에 은닉하고 금융 소득을 미신고했다며 부과된 40억원대 세금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해외 은닉은 재산 축소 신고의 고의성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에 단순 신고 누락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1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과 장남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이 역삼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두 사람은 1990년 조 명예회장이 스위스의 한 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20여년간 스위스와 룩셈부르크에 개인 또는 부자 공동명의로 총 5개의 계좌를 개설하고 자금을 관리했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세무조사 끝에 이들 부자가 2008~2016년 동안 해외 계좌에서 발생한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을 종합소득세 신고에 누락했다고 판단해 2019년 종합소득세와 가산세를 부과했다.

과세 당국은 조 명예회장에게 19억8000여만원, 조 고문에게 26억1000여만원 등 모두 45억9000여만원을 부과했다. 이는 조 명예회장 부자가 냈어야 할 종합소득세에 '부당과소신고' 가산세 40%를 더한 금액이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납세 의무자가 납부해야 할 세액을 부정하게 축소 신고한 경우 납부해야 할 세액의 40%에 해당하는 가산세를 내야 한다. 이것이 부당과소신고 가산세다. 단순 신고 누락의 경우에는 10%의 '일반과소신고' 가산세가 부과된다.

조 명예회장 등은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으나 기각되자 2021년 1월 "부당과소신고 가산세가 아닌 일반과소신고 가산세를 부과해야 한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단순 투자행위"라는 조양래·조현식 부자...재판부 "고의로 재산은닉"
조 명예회장 부자는 해외금융계좌를 개설해 수익을 낸 투자행위일 뿐, 적극적인 재산 은닉 등 부정행위를 한 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조 명예회장 측은 "해외금융계좌를 개설해 자산을 예치하고 수익을 낸 투자행위는 합법적이고, 금융소득을 얻는 과정에서 세법상 신고를 누락했을 뿐 금융소득을 은닉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를 한 바 없다"며 "부정행위를 했다고 보고 부당과소신고 가산세를 적용한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고의로 재산 은닉 또는 소득 은폐를 했다고 판단했다. 해외에 첫 계좌가 개설된 이래 4개의 계좌를 추가 개설하고 20년 넘게 재산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이 금융소득을 단순히 축소 신고한 것이 아니라 고의로 '재산 은닉 또는 소득 은폐'를 함으로써 조세 부과와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부정행위를 했다"며 "이 사건 계좌들은 1990년 처음 스위스 은행에 원고 조양래 명의로 첫 계좌가 개설된 이래 2016년 3월까지 4개의 해외은행에 4개의 금융계좌를 추가 개설해 운용하고 20년 넘게 신고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스위스나 룩셈부르크 현지와 관련성이 발견되지 않고, 조세 회피 목적을 제외하고는 거액의 현금을 주고받기 위해 국내가 아닌 해외 은행을 이용해야 할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도 말했다.
 
"재산 해외은닉, 적극적인 기망행위"...뿔나는 과세 당국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해외은닉은 적극적인 기망행위가 명백하기 때문에 단순한 실수나 착오에 인한 재산 축소 신고로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채애리 변호사(법무법인 온조)는 "일부러 속이려고 이게 부당과소신고"라며 "해외에 계좌를 개설하는 등 적극적인 기망 행위를 한 경우 소송에 얽히는 걸 싫어하는 과세 당국이 확실히 부당신고라고 판단하고 승소의 자신까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여의도구의 한 세무사는 "해외에 재산이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으면 재산을 옮길 수가 없다. 쉽게 말해 부당과소신고 '빼박'인 것"이라며 "버진아일랜드나 바하마, 버뮤다 등 조세도피처에 재산을 옮길 수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해 최근엔 국제 공조를 통해 해당 국가의 금융계좌를 조회할 수 있는 조세조약 등을 많이 맺어놓은 상태"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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