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미국은 법으로 소수자를 지켜준다. 그렇게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대법원의 판결은 그 믿음을 흔들리게 했다. '로 대(對) 웨이드', 이 역사적인 판결을 뒤집어버린 일 때문이다. 아래 칼럼은 그 역사를 담은 이야기다. <편집자 주>
19세기 후반부터 흑인 시민권운동에 강력한 우군이 되어준 미국 수정헌법 14조는 20세기에 들어선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 향상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격렬한 사회적 대립이 있을 때마다 연방 대법원 판례를 통해 흑인을 넘어 아시아계 이민자 자녀 시민권 차별, 인종분리정책, 낙태와 동성결혼 금지가 폐지되어 왔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논쟁 대상인 ‘차별금지법’의 기능을 미국에선 수정헌법 14조가 담당하는 셈이다. 하지만 2022년, 낙태 금지를 헌법에 반하는 것으로 판결했던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번복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수정헌법 14조를 알아보자!
미국 헌법 수정 제14조(1868년 7월 28일 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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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미국에서 출생한 사람, 귀화한 사람, 미국의 행정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 및 그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 어떠한 주도 미국 시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탈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수 없다. 어떠한 주도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사람으로부터도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며, 그 관할권 내에 있는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도 법률에 의한 동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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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조항의 1절은 사실상 현대 미국 사회의 평등권 개념을 확립한 규정으로 통한다. 영미법 계열은 판례 중심주의를 택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안이 아니라면 선례에 구속되는 경향을 따른다. 즉 14조가 수정된 1868년에 어떤 배경과 판단이 이뤄졌는지가 법 개정 취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역사 연표를 검색해본다면 수정헌법 14조 의회 비준이 남북전쟁 직후, 즉 흑인 노예 해방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는데 노예 출신 흑인에게 혈통 등을 문제 삼는 관습을 혁파하기 위해 미국 시민의 정의를 ‘출생지주의’로 규정하는 게 이때부터 확립된다. 즉 우리에겐 ‘원정출산’이란 사회적 문제로만 인식되는 사안에 이런 역사적 기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왜 굳이 출생지주의, 흔히 ‘속지주의’를 취했냐 하면,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의 미국 시민으로서의 정통성을 노예제도 옹호론자들이 시비 걸자 아예 미국에서 태어난 누구나 시민권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속인주의’, 즉 원래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이 중 일방 이상이 국적을 갖고 있을 때만 권리를 보장한다. 이는 한국이 민족주의 정서가 강하기에 당연시된다. 하지만 이민자의 후예들이 중심이 되고 중요한 전환점마다 다양한 인종집단의 이민 역사가 겹치는 미국의 사회적 활력을 유지하는 데 이 속지주의는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왔다. 다 이유가 있어 탄생한 법이다.
미국은 법으로 소수자를 지켜준다. 그렇게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대법원의 판결은 그 믿음을 흔들리게 했다. '로 대(對) 웨이드', 이 역사적인 판결을 뒤집어버린 일 때문이다. 아래 칼럼은 그 역사를 담은 이야기다. <편집자 주>
19세기 후반부터 흑인 시민권운동에 강력한 우군이 되어준 미국 수정헌법 14조는 20세기에 들어선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 향상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격렬한 사회적 대립이 있을 때마다 연방 대법원 판례를 통해 흑인을 넘어 아시아계 이민자 자녀 시민권 차별, 인종분리정책, 낙태와 동성결혼 금지가 폐지되어 왔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논쟁 대상인 ‘차별금지법’의 기능을 미국에선 수정헌법 14조가 담당하는 셈이다. 하지만 2022년, 낙태 금지를 헌법에 반하는 것으로 판결했던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번복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수정헌법 14조를 알아보자!
미국 헌법 수정 제14조(1868년 7월 28일 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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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미국에서 출생한 사람, 귀화한 사람, 미국의 행정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 및 그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 어떠한 주도 미국 시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탈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수 없다. 어떠한 주도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사람으로부터도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며, 그 관할권 내에 있는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도 법률에 의한 동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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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조항의 1절은 사실상 현대 미국 사회의 평등권 개념을 확립한 규정으로 통한다. 영미법 계열은 판례 중심주의를 택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안이 아니라면 선례에 구속되는 경향을 따른다. 즉 14조가 수정된 1868년에 어떤 배경과 판단이 이뤄졌는지가 법 개정 취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역사 연표를 검색해본다면 수정헌법 14조 의회 비준이 남북전쟁 직후, 즉 흑인 노예 해방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는데 노예 출신 흑인에게 혈통 등을 문제 삼는 관습을 혁파하기 위해 미국 시민의 정의를 ‘출생지주의’로 규정하는 게 이때부터 확립된다. 즉 우리에겐 ‘원정출산’이란 사회적 문제로만 인식되는 사안에 이런 역사적 기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왜 굳이 출생지주의, 흔히 ‘속지주의’를 취했냐 하면,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의 미국 시민으로서의 정통성을 노예제도 옹호론자들이 시비 걸자 아예 미국에서 태어난 누구나 시민권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속인주의’, 즉 원래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이 중 일방 이상이 국적을 갖고 있을 때만 권리를 보장한다. 이는 한국이 민족주의 정서가 강하기에 당연시된다. 하지만 이민자의 후예들이 중심이 되고 중요한 전환점마다 다양한 인종집단의 이민 역사가 겹치는 미국의 사회적 활력을 유지하는 데 이 속지주의는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왔다. 다 이유가 있어 탄생한 법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50년 전으로 되돌리는 판결의 배경을 밝히다
1973년 1월 22일, 연방 대법원은 대법관 9명 중 찬성 7명, 반대 2명으로 판례번호 ‘410 U.S. 113’ 판결을 결정짓는다. 후대에 ‘로 대 웨이드’ 판결로 불리게 된 해당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로’는 원고로 실명이 아니다. 익명성을 위해 ‘아무개’처럼 미국에서 통용되는 이름 중 하나인 ‘제인 로’로 소송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웨이드’는 피고인 텍사스주 댈러스 지방 검사 헨리 웨이드에서 온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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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에 의거, 임산부는 낙태 여부를 결정할 사생활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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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결은 낙태 자체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결정하는 내용은 아니다. 시민권의 일부로서 낙태의 권리가 미국 헌법상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시민의 권리는 연방 헌법에 의해 보장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50개 주의 자체 법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게 무효가 되어 미국 전역에서 사실상 낙태가 허용되는 결과를 파생시킨다. 당연히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 판례에 대해 판결 직후부터 격하게 반발해 다양한 방식으로 반대를 조직화했다.
하지만 20년 후, 1992년 낙태권 보장에 대한 내용은 1992년 '가족 계획연맹 대 케이시' 판결에서 재확인되었다.
이제 사실상 반세가 흘렀기에 미국의 가임기 여성 중 1973년 이전 사회 분위기를 경험한 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2022년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에 계류된 '돕스 대 잭슨 여성보건기구' 판결이 결정되었다.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가 뒤흔들릴 정도로 파장을 불러온 판결이었다. 여성의 낙태를 포함한 신체 결정권을 인정한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반세기 만에 뒤집었기 때문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파문이 결코 가벼울 리 없다. 미국 전체가 찬성과 반대로 분열된 상태다.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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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낙태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로와 케이시 판결을 파기한다. 낙태 규제에 대한 권한은 국민과 그들의 선출된 대표들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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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과 1992년 판결의 연속성을 명시적으로 뒤집은 결정문이다. 연방 헌법에서 여성의 낙태권 허용 여부를 다루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이제 공은 각 주의 개별법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방 헌법 때문에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던 낙태 금지 주법들의 효력이 부활하게 된다. 26개 주에서 즉시 낙태가 금지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주로 공화당 주지사들이 집권한 남부와 중서부에선 온통 다 금지된 셈이다. 다른 주로 가서 수술받으려 해도 대륙횡단을 감행해야 하는 판이다.
1973년 1월 22일, 연방 대법원은 대법관 9명 중 찬성 7명, 반대 2명으로 판례번호 ‘410 U.S. 113’ 판결을 결정짓는다. 후대에 ‘로 대 웨이드’ 판결로 불리게 된 해당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로’는 원고로 실명이 아니다. 익명성을 위해 ‘아무개’처럼 미국에서 통용되는 이름 중 하나인 ‘제인 로’로 소송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웨이드’는 피고인 텍사스주 댈러스 지방 검사 헨리 웨이드에서 온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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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에 의거, 임산부는 낙태 여부를 결정할 사생활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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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결은 낙태 자체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결정하는 내용은 아니다. 시민권의 일부로서 낙태의 권리가 미국 헌법상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시민의 권리는 연방 헌법에 의해 보장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50개 주의 자체 법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게 무효가 되어 미국 전역에서 사실상 낙태가 허용되는 결과를 파생시킨다. 당연히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 판례에 대해 판결 직후부터 격하게 반발해 다양한 방식으로 반대를 조직화했다.
하지만 20년 후, 1992년 낙태권 보장에 대한 내용은 1992년 '가족 계획연맹 대 케이시' 판결에서 재확인되었다.
이제 사실상 반세가 흘렀기에 미국의 가임기 여성 중 1973년 이전 사회 분위기를 경험한 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2022년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에 계류된 '돕스 대 잭슨 여성보건기구' 판결이 결정되었다.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가 뒤흔들릴 정도로 파장을 불러온 판결이었다. 여성의 낙태를 포함한 신체 결정권을 인정한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반세기 만에 뒤집었기 때문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파문이 결코 가벼울 리 없다. 미국 전체가 찬성과 반대로 분열된 상태다.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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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낙태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로와 케이시 판결을 파기한다. 낙태 규제에 대한 권한은 국민과 그들의 선출된 대표들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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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과 1992년 판결의 연속성을 명시적으로 뒤집은 결정문이다. 연방 헌법에서 여성의 낙태권 허용 여부를 다루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이제 공은 각 주의 개별법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방 헌법 때문에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던 낙태 금지 주법들의 효력이 부활하게 된다. 26개 주에서 즉시 낙태가 금지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주로 공화당 주지사들이 집권한 남부와 중서부에선 온통 다 금지된 셈이다. 다른 주로 가서 수술받으려 해도 대륙횡단을 감행해야 하는 판이다.
◆‘다수’가 아닌 특정집단의 여론 장악 묘사
작금의 상황은 2018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새삼 조명받게 만들고 있다. 현재 시점으로 본다면 본 작품은 일종의 예언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 안에는 1973년 이후 낙태 금지론 진영이 펼친 로 대 웨이드 판결 폐지를 위한 결사적인 움직임이 시대 흐름과 함께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또한 그 첨예한 상황을 놓고 양측이 격돌해온 수많은 사례와 함께 주요 전환점이 된 판례들의 판결 전후 과정, 그리고 찬반 양 진영의 전술과 논리들이 치열하게 충돌하며 교차한다. 기본 담고 있는 정보량도 방대한 데다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도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관람이다.
시작은 1973년으로 가는 길이다. 1960년대 여성운동의 목소리와 함께 기존의 낙태 금지 상황에서도 음성적으로는 방대하게 이뤄지던 낙태 시술의 폐해가 여러 경로로 표출된다. 당시만 해도 미국 사회는 양대 정당 간 이견은 첨예할지언정 그 특유의 자유주의적 정서로는 공통분모가 꽤 있던 시절이다. 1960년대에 캘리포니아 주지사이던 로널드 레이건(1980년대 신보수주의를 이끌던 대통령, 그 레이건이다!)이 전향적인 낙태 접근권을 승인했던 것처럼 현재와는 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1973년 판결이 이어진다.
해당 판결은 단지 낙태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 내 판례 전반에 개인의 기본권 존중 보장을 결정지은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낙태는 당연한 시민·여성 개인과 의료진과의 사항이 되어왔다. 이 판결의 파급력은 이후 미국 사회에 거대한 영향력을 드리운다.
영화는 이제 낙태 금지론 입장을 가진 이들을 조명한다. 이들의 기원이 인종차별주의 진영과 복음주의 기독교 및 보수 가톨릭 입김이 짙은 단체들이란 점을 제작진은 꼼꼼한 자료 수집과 정리를 통해 제시한다. 지극히 윤리적 의제로 간주되는 낙태권 관련 쟁점의 출발이 인종차별과 재산권 문제라는 점은 당혹스러운 동시에 맥이 탁 풀리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작은 이렇게 묘사된다. 청교도와 가톨릭 미션스쿨들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백인 학생들로 채워져 있었다. 법 제도는 인종차별을 금지했지만, 해당 사립학교들은 굳이 유색인종을 입학시키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러자 연방정부는 이들 학교가 흑인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고 사실상 백인만의 학교로 남는다면 정부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지만 당장 재원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 이들의 분노는 (영화 <하녀>에서 전도연이 내뱉던 명대사처럼, “줬다 뺏는 건 나쁜 거잖아요?”처럼) 폭발하게 된다. 그리고 보조금 거부에 대한 지극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안 그래도 해당 판결에 거부감이 가득하던 보수 종교계는 결집하기 시작한다. 근래 국내 퀴어 페스티벌 때마다 온몸으로 행진을 가로막는 개신교계 시위대의 원형이 화면 가득 등장한다. 다만 총기 문제로 몸살을 앓는 미국답게 이들은 실제 낙태 시술 의사를 테러하는 일도 수시로 저지른다. 생명권을 강조하는 이들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상황이다.
작금의 상황은 2018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새삼 조명받게 만들고 있다. 현재 시점으로 본다면 본 작품은 일종의 예언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 안에는 1973년 이후 낙태 금지론 진영이 펼친 로 대 웨이드 판결 폐지를 위한 결사적인 움직임이 시대 흐름과 함께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또한 그 첨예한 상황을 놓고 양측이 격돌해온 수많은 사례와 함께 주요 전환점이 된 판례들의 판결 전후 과정, 그리고 찬반 양 진영의 전술과 논리들이 치열하게 충돌하며 교차한다. 기본 담고 있는 정보량도 방대한 데다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도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관람이다.
시작은 1973년으로 가는 길이다. 1960년대 여성운동의 목소리와 함께 기존의 낙태 금지 상황에서도 음성적으로는 방대하게 이뤄지던 낙태 시술의 폐해가 여러 경로로 표출된다. 당시만 해도 미국 사회는 양대 정당 간 이견은 첨예할지언정 그 특유의 자유주의적 정서로는 공통분모가 꽤 있던 시절이다. 1960년대에 캘리포니아 주지사이던 로널드 레이건(1980년대 신보수주의를 이끌던 대통령, 그 레이건이다!)이 전향적인 낙태 접근권을 승인했던 것처럼 현재와는 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1973년 판결이 이어진다.
해당 판결은 단지 낙태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 내 판례 전반에 개인의 기본권 존중 보장을 결정지은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낙태는 당연한 시민·여성 개인과 의료진과의 사항이 되어왔다. 이 판결의 파급력은 이후 미국 사회에 거대한 영향력을 드리운다.
영화는 이제 낙태 금지론 입장을 가진 이들을 조명한다. 이들의 기원이 인종차별주의 진영과 복음주의 기독교 및 보수 가톨릭 입김이 짙은 단체들이란 점을 제작진은 꼼꼼한 자료 수집과 정리를 통해 제시한다. 지극히 윤리적 의제로 간주되는 낙태권 관련 쟁점의 출발이 인종차별과 재산권 문제라는 점은 당혹스러운 동시에 맥이 탁 풀리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작은 이렇게 묘사된다. 청교도와 가톨릭 미션스쿨들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백인 학생들로 채워져 있었다. 법 제도는 인종차별을 금지했지만, 해당 사립학교들은 굳이 유색인종을 입학시키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러자 연방정부는 이들 학교가 흑인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고 사실상 백인만의 학교로 남는다면 정부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지만 당장 재원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 이들의 분노는 (영화 <하녀>에서 전도연이 내뱉던 명대사처럼, “줬다 뺏는 건 나쁜 거잖아요?”처럼) 폭발하게 된다. 그리고 보조금 거부에 대한 지극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안 그래도 해당 판결에 거부감이 가득하던 보수 종교계는 결집하기 시작한다. 근래 국내 퀴어 페스티벌 때마다 온몸으로 행진을 가로막는 개신교계 시위대의 원형이 화면 가득 등장한다. 다만 총기 문제로 몸살을 앓는 미국답게 이들은 실제 낙태 시술 의사를 테러하는 일도 수시로 저지른다. 생명권을 강조하는 이들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상황이다.
◆법과 제도가 사회통합이 아니라 특정집단의 도구로 변할 때
하지만 기존의 대항 사회운동으로 여론을 장악해 판결을 바꾸려던 이들의 시도는 거듭 좌절을 겪는다. 연방 대법원의 절묘한 균형감각 덕분에 이들은 보수와 진보가 황금비율을 이룬 결정을 뒤집지 못한다. 고지가 눈앞인데 결정적인 단계를 못 넘는 것이다. 한번 사회적 변화에 조응해 결정된 판례를 뒤집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대법원의 전통이 보수와 진보를 초월해 작동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자 낙태 반대운동은 새로운 방법론을 취하게 된다. 연방대법관은 임기 중 대통령이 지명해 의회 승인을 거치게 된다. 종신제이기 때문에 고령으로 은퇴하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쉽게 바뀌지 않는 조건상 행정부가 어느 정당에 기울어지지 않는 한 지명권도 비례를 이루게 마련이다. 늘 연방 대법관의 구성비는 4:5 혹은 5:4를 넘어서지 않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 판결에선 보수건 진보건 대법원장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우선해 왔다. 판례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 절묘한 암묵적 룰이었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를 넘어 토론과 합의 대신 극단주의 이념 집단화된 근본주의 세력은 그런 룰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정치적 의도와 물질적 이해관계를 위해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개입하기 유리한 공화당을 접수하는 데 이른다. 그리고 당내 경선 과정에서 결집력이 강한 자신들의 세력이 당락을 좌우하게 만들어 정치인들에게 거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영화 속에서 레이건이, 부시가, 트럼프가 원래 정치적 견해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전후 과정은 이런 압력단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그런 집요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잘 버텨왔다고도 볼 수 있을 만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수호를 위해 (많은 걸 희생하는 것은 물론 생명의 위협까지 감내하는) 활동가들의 노력이 영화 내내 장렬하게 펼쳐진다. 그런 활약이 무척이나 돋보이지만, 워낙 반대 세력의 물불 안 가리는 노력이 시선을 사로잡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확 들어오는 건 강력한 정치세력이 된 낙태 반대론자들 진영에 빌붙기 위해 예전의 소신을 뒤집는 공화당 정권의 문제와 함께, (마치 만화영화 속 지구정복을 노리는 어둠의 비밀결사 마냥) 그들 진영이 기나긴 공성전에도 지치지 않고 제대로 된 단단한 작전 하에 임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기나긴 공성전을 통해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 실제 여론조사로는 반대가 훨씬 많았는데도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를 관철하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보수 성향인 대법원장이 어떻게든 이번 판례의 파괴적 효과를 완화하려 내부적으로 시도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임명된 대법관들은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해당 판례의 영향력 확산을 공언하고 있다. 보수진영이 덕목으로 삼아온 점진적 개혁이 근본주의 극우 흐름에 잠식되고 만 것이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이번 판례에 양식 있는 이들이 염려하는 핵심적 이유다.
[작품 정보]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 Reversing Roe
2018|미국|다큐멘터리
98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 릭키 스턴, 앤 선드버그
기획 에바 롱고리아
제공 넷플릭스
하지만 기존의 대항 사회운동으로 여론을 장악해 판결을 바꾸려던 이들의 시도는 거듭 좌절을 겪는다. 연방 대법원의 절묘한 균형감각 덕분에 이들은 보수와 진보가 황금비율을 이룬 결정을 뒤집지 못한다. 고지가 눈앞인데 결정적인 단계를 못 넘는 것이다. 한번 사회적 변화에 조응해 결정된 판례를 뒤집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대법원의 전통이 보수와 진보를 초월해 작동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자 낙태 반대운동은 새로운 방법론을 취하게 된다. 연방대법관은 임기 중 대통령이 지명해 의회 승인을 거치게 된다. 종신제이기 때문에 고령으로 은퇴하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쉽게 바뀌지 않는 조건상 행정부가 어느 정당에 기울어지지 않는 한 지명권도 비례를 이루게 마련이다. 늘 연방 대법관의 구성비는 4:5 혹은 5:4를 넘어서지 않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 판결에선 보수건 진보건 대법원장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우선해 왔다. 판례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 절묘한 암묵적 룰이었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를 넘어 토론과 합의 대신 극단주의 이념 집단화된 근본주의 세력은 그런 룰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정치적 의도와 물질적 이해관계를 위해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개입하기 유리한 공화당을 접수하는 데 이른다. 그리고 당내 경선 과정에서 결집력이 강한 자신들의 세력이 당락을 좌우하게 만들어 정치인들에게 거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영화 속에서 레이건이, 부시가, 트럼프가 원래 정치적 견해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전후 과정은 이런 압력단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그런 집요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잘 버텨왔다고도 볼 수 있을 만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수호를 위해 (많은 걸 희생하는 것은 물론 생명의 위협까지 감내하는) 활동가들의 노력이 영화 내내 장렬하게 펼쳐진다. 그런 활약이 무척이나 돋보이지만, 워낙 반대 세력의 물불 안 가리는 노력이 시선을 사로잡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확 들어오는 건 강력한 정치세력이 된 낙태 반대론자들 진영에 빌붙기 위해 예전의 소신을 뒤집는 공화당 정권의 문제와 함께, (마치 만화영화 속 지구정복을 노리는 어둠의 비밀결사 마냥) 그들 진영이 기나긴 공성전에도 지치지 않고 제대로 된 단단한 작전 하에 임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기나긴 공성전을 통해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 실제 여론조사로는 반대가 훨씬 많았는데도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를 관철하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보수 성향인 대법원장이 어떻게든 이번 판례의 파괴적 효과를 완화하려 내부적으로 시도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임명된 대법관들은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해당 판례의 영향력 확산을 공언하고 있다. 보수진영이 덕목으로 삼아온 점진적 개혁이 근본주의 극우 흐름에 잠식되고 만 것이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이번 판례에 양식 있는 이들이 염려하는 핵심적 이유다.
[작품 정보]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 Reversing Roe
2018|미국|다큐멘터리
98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 릭키 스턴, 앤 선드버그
기획 에바 롱고리아
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