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상영작은 '극장 상영'을 전제 조건으로 해야 한다."
지난 2017년 칸 국제영화제는 넷플릭스가 투자·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경쟁 부문에 초청했다. 하지만 프랑스극장협회는 위와 같은 이유로 '옥자'의 경쟁 부문 초청을 반발했다. 칸 국제영화제는 이듬해부터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영화를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 '시네마'는 '극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였다.
영화계 변곡점이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은 거대 자본으로 유명 감독·작가·배우·제작진을 불러들여 퀄리티 높은 작품들을 내놓았고 관객들은 자연히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채널을 찾게 되었다. '신작 가뭄'으로 몸살을 앓는 극장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이에 국내외 영화제들도 영화계 흐름과 변화를 받아들이려 했다. 심지어 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경계하던 프랑스와 칸 국제영화제마저 홀드백을 단축하고 틱톡과 협업하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것"…아시아 최초 '온스크린' 부문 신설한 부산국제영화제
특히 국내 영화제는 뉴 미디어와 화합을 이루고 다양성 확보에 성공했다. 지난해 10월 개최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는 '온 스크린' 부문을 통해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작품들을 대거 소개했다.
온 스크린 부문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서 방영될 화제의 드라마 시리즈를 상영하는 부문으로 전 세계에서 '온 스크린'과 유사한 성격의 부문은 베니스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등 소수에 불과하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신설됐다.
당시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과제 중 하나는 사회문화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영화제가 되겠다는 것"이라면서 "이런 과제를 반영하는 것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부문 '온 스크린'과 특별전"이라고 설명했다.
허 집행위원장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여타 플랫폼에서 사용한 시리즈물을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식 상영작으로 초청해서 관객과 만나게 할 것"이라며 "이 세션은 영화와 비 영화, 영화와 드라마, 드라마와 시리즈물 경계가 무너지는 현실을 영화제가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서 신설됐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시도는 영화산업의 현주소를 기민하게 반영하고 영화 매체의 확장된 흐름과 가치를 포용하기 위함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온스크린' 부문 신설로 전통적인 극장 개봉작뿐 아니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리즈물까지 포괄하며 관객들에게 더 다양하고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온스크린' 섹션에서 소개된 작품은 연상호 감독의 '지옥', 김진민 감독의 '마이 네임', 아누차 분야와타나(태국)&조쉬 킴(미국) 감독의 '포비든' 등 3편이었다.
지난해 '온스크린' 섹션 신설 후 영화계에는 어떤 바람이 불었을까? 부산국제영화제 정한석 프로그래머는 "'온스크린' 섹션을 신설하려고 했을 때 '전통적 영화제에 적합한 방식인가'에 대한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에 걱정이 컸다. 성과라고 부를 만한 건 지난해 넷플릭스 '지옥', '마이네임'을 공개하고 관객들의 반응은 물론 작품들의 프로모션 효과가 굉장히 컸다. 산업 내부 플레이어의 관심을 얻은 게 초점 중 하나였는데 만족스러울 만큼 호응을 끌어냈다. 영화제의 역할 중 하나는 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관객과 좋은 방식으로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온스크린' 섹션을 통해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작품들이 새로운 진로를 찾게 되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장 처음 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흐름과 변화를 읽고 '온스크린' 부문을 신설한 부산국제영화제인만큼 올해의 방향성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 프로그래머는 "아직 작품 선정이 마감되지 않았다"면서도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온스크린' 부문이 어떤 기조를 가지고 나아갈 것인지 귀띔했다.
정 프로그래머는 "지난해는 '온스크린' 섹션이 처음으로 신설된 만큼 '엄선'이라는 기준이 있었다. 작품 수에 연연하지 않고 엄선된 작품을 소개할 것이며 다음 해부터 (작품 수를) 확장해나가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바람대로 올해는 지난해보다 작품 수가 조금 늘었다. '엄선'을 전제로 한 '확장'이 올해의 방향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징어 게임' 품은 부천국제영화제…영화·드라마·시리즈 경계 허물다
지난 7일 개막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에서는 '시리즈 영화상' 부문을 전 세계 최초로 제정·시상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었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문화와 기술의 결합으로 다양한 형태의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탄생하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시대에는 '오징어 게임'처럼 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서 스트리밍 되는 시리즈는 물론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형태의 영상들도 영화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시리즈 영화상' 제정·시상 이유를 밝혔다.
이어 "2시간 남짓 상영하는 영상물을 영화라고 정의해온 것은 산업의 관점에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편의 하나였다. 이제 시대변화에 발맞춰 한국 영화, K-콘텐츠가 세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야 할 때다. 7·8편이 나온 '해리 포터'나 '스타워즈'는 영화인데 '오징어 게임'은 왜 영화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BIFAN '시리즈 영화상' 제정은 영화상을 신설했다는 의미를 넘어서 영화의 새로운 정의에 대한 대한민국 부천의 특별한 제언"이라고 설명했다.
'오징어 게임' 제작자 싸이런픽쳐스 김지연 대표도 "오늘부터 '오징어 게임'은 영화"라며 남다른 소감을 전했다. 그는 "'오징어 게임'이 한국 어느 영화제와 잘 어울리는지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떠올랐다. 역시나 발 빠르게 저희를 찾아주시고 이렇게 인정까지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특히 BIFAN은 올해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소개하고 뉴 미디어와의 화합을 보여주었다. '시리즈 영화상' 외에도 '코리안 판타스틱: 시리즈 킬러' 부문을 신설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영화·드라마·시리즈 등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정의를 새로 해야 한다는 요구에 따른 질문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