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尹 정부의 '평행이론'...반전카드도 비슷할까

2022-07-0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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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과·전임 정부 때리기로 지지율 반등 모색

기업 프렌들리·대북 원칙 유사...'여소야대'는 변수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을 둘러싼 '성 상납 및 증거 인멸 교사 의혹' 등의 공격 주체가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라며 최근 여권 내 상황을 이명박(MB) 정부 초반에 빗대어 설명했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KBS 라디오 '최영일의 시사본부'에 출연해 "18대 국회가 구성되고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이었던) 이재오 고문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정두언 전 의원이 맞붙어 싸우면서 정권이 망했다"며 "지금 여기서 이재오·이상득·정두언 역할이 누구냐 하면 이름을 댈 수 있을 정도로 분화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각각의 정권 내에서 이분들 행보나 마지막이 어땠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될 것 같다"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듣진 않았지만, 간접적인 어떤 당 운영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이분들(윤핵관) 좀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MB 정부는 어떻게 망했나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정권교체를 했다. 두 사람의 득표 차는 531만표(22.5%포인트)에 달했다. 

이명박(MB)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은 이른바 친이(친 이명박)계였다. MB의 친형으로 '만사형통'(모든 일은 형을 통하면 풀린다), '상왕' 등으로 불렸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MB와 6‧3 항쟁(한‧일 회담 반대 학생운동) 동지이자 'MB의 영원한 좌장'인 이재오 고문, MB의 서울시장·대선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책사' 정두언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대선 승리 후 상왕계의 영향력이 MB의 묵인 하에 압도적으로 커졌고, 이 고문과 정 전 의원의 세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집요한 견제를 받았다. 두 사람은 이 전 부의장의 18대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파동'을 주도하기도 했지만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진 못했다. 

대선 승리 후 불과 4개월 만에 열린 18대 총선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은 153석을 차지하며 단독 과반에 성공했다. 그러나 당초 기대했던 200석 압승에는 실패했다.

친이계의 친박(박근혜)계 '공천 학살' 등으로 보수진영이 분열되고 무소속 바람이 분 것이 주 원인이었다. 친박 연대(14석), 친박 무소속 연대(12석), 한나라당계 무소속(4석)에 자유선진당(18석)까지 합치면 보수진영은 개헌 저지선인 200석을 훌쩍 넘겼지만, MB 정부는 그것을 묶어 내지 못했다.

총선 이후 낙선한 이 고문은 미국으로 떠났고, 정 전 의원은 주류에서 밀려났다. 이 고문은 당내 운동권‧민주화 세력, 정 전 의원은 당내 개혁‧소장파의 대표 격이었다. 이는 MB를 정치적 위기에서 지켜줄 핵심 세력이 줄어든 것을 의미한다.

반면 '광우병 촛불시위'를 계기로 MB 정부의 의료‧수도 등 공기업 민영화와 한반도 대운하 사업 추진을 우려하던 시민사회는 급속도로 뭉쳤다. 50%대로 시작한 MB의 지지율은 20%대로 반토막났다.

MB 정부는 초반 '명박산성'으로 대표되는 강경기조로 대응하다 여론이 계속 악화되자 대국민 사과로 민심을 추스렸다. 이후 공기업 선진화‧규제완화‧감세 정책 등 경제 이슈를 내세워 국면 전환에 나섰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상대적으로 잘 극복하면서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지우기에 나서며 여론전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국가정보원과 국방부를 동원한 여론 조작, 국무총리실과 국정원의 불법 사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각종 무리수가 있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비극도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尹 정부와 MB 정부의 '유사점‧차이점'

윤석열 정부에 대해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MB 정부 시즌2'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권 핵심 인사들 가운데 MB 정부 출신이 많고, 경제와 외교 정책 등도 판박이 수준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MB 정부는 경제 정책으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고 소득세·법인세·종부세 인하, 각종 기업규제 완화, 공기업 매각 및 합병 등을 추진했다. 윤 정부 역시 '민간주도 성장'을 내세우며 양도세·법인세·종부세 완화를 공언하고 기업 규제 완화를 강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5일 국무회의에서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고 지출 구조조정을 하는 등 공공기관부터 허리띠를 졸라맬 것"이라고 공언했다.

외교 정책 역시 두 정부 모두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한‧미‧일 협력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윤 대통령은 역대 가장 빠른 한‧미 정상회담을 했고, 역대 한국 대통령 최초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MB 정부 이상으로 미국과 서방 중심 외교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원칙 있는 남북관계'를 내세우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는 '힘에 의한 외교'로 응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정부의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모두 MB 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브레인으로 꼽혔다.

다만 두 정부의 정치적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MB는 압도적인 대선 승리를 거두고 총선에서도 과반 승리를 거뒀다. 반면 윤 대통령은 0.73%포인트 차로 간신히 승리했고, 국회 역시 여소야대 상황으로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선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가 불가피하다.

이러한 정국을 윤 대통령은 정면돌파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최근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데드크로스(지지율 역전 현상)까지 있다'는 취지의 질문에 "저는 선거 때도 선거운동을 하면서 지지율은 별로 유념치 않았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고, 제가 하는 일은 국민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된다는 그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또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제가 직접 민생 현안을 챙기겠다"며 "앞으로 제가 민생 현장에 나가 국민의 어려움을 듣고, 매주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주재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부실인사 논란'에는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라며 날을 세웠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민생경제 살리기 성과와 전임 정부 때리기로 지금의 지지율 하락세 반전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지금 국회의 주도권, 입법권이 야당에 있는 것은 변수다. 민주당은 정치보복수사대책위원회(정치보복대책위)를 출범시키고 총력 대응을 예고했다.
 

이 전 대통령이 지난해 2월 10일 서울동부구치소 수감 도중 기저질환 치료를 위해 50여일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퇴원하는 모습. 검찰은 지난 6월 28일 경기 안양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3개월 형집행정지를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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