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정상회의가 지난 6월 30일 폐막되었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들도 파트너로서 참여하면서 나토의 관심 영역이 유럽과 북미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토 정상회의는 향후 10년의 기본적인 지침이 되는 “전략개념”을 12년 만에 새롭게 채택하고 중국을 “체제상의 도전” 요인으로 명기하였다.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협력하면서 국제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러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인도태평양지역과 파트너로서의 협력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군사외교적 영향력 확대, 그리고 이 두 거대 강대국의 전략적 접근과 협력관계의 심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유럽과 미국에서 매우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럽은 중국과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려 애써 왔다.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럽의 태도는 금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유럽에 있어서 동아시아는 멀리 떨어진 “극동”지역에 불과하였다. 이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그들의 안보에는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군사외교적 안보보다 경제적 이익을 더욱 중시하였고 미국의 대중 견제전략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중국을 체제상의 도전요인으로 지목하였고 인도태평양지역의 주요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한다는 새로운 전략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서방국가의 각종 제재와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 간의 거리가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러시아의 남진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과 일본 간의 동맹이 형성된 사례가 있다. 20세기 초, 러시아 남진에 불만을 품은 영국은 일본과 동맹을 맺고 러시아를 견제하였는데 그 결과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러일전쟁이었다. 영국의 견제로 인하여 멀고 먼 항로를 돌고 돌아 겨우 아시아에 도착한 러시아의 발틱 함대는 이미 지쳐있었고 일본의 해군에 대패하고 말았다.
과연 한국은 요동치는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 즉 한국형 인도태평양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첫째 과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이다. 미국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나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같은 기존 통상협정의 틀을 벗어던지고 완전히 새로운 협상의 판을 짜면서 미국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IPEF를 제시하였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14개 국가가 참가할 예정이며 협상의제는 무역, 공급망, 청정에너지/탈탄소/인프라, 그리고 조세 및 반부패의 4개 분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강력하게 주도하는 이 판에 참여하기로 하였고 또 참여하는 것이 당연히 요구된다. 문제는 새로운 협상의 판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인태지역에서의 새로운 경제질서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급망과 관련한 사항은 우리 경제와 기업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 기업은 이미 중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서 중국과의 공급망이 교란될 경우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급망의 다변화와 과도한 특정 국가 의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어려운 선택에서 우리나라는 과연 어떠한 원칙과 기준에 의거하여 선택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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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IPEF를 활용하여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새로운 경제질서를 형성해야 한다. 핵심품목에서 한국의 공급망은 상당히 취약하다. 디지털전환과 그린전환으로 반도체, 배터리, 수소에너지 등 핵심품목의 공급망 안정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핵심품목의 생산에 필요한 핵심광물 등 부품, 소재, 장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공급망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에서도 4대 소재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희토류 또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압도적이다. 우리 기업들은 이러한 상황을 매우 우려한다. 다만 우리나라가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이외의 국가/지역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중국을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다만 다변화를 통한 안정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한·중 간 경제관계의 규모와 정도를 볼 때 중국이 우리에게 제재를 재개할 가능성 또한 높지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 한·중경제관계는 상호의존관계이기 때문이다.
국가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만 가는 요즘, 우크라이나와 같은 상황이 동아시아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럴 때 현재의 공급망 구조로는 한국의 경제안보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 현재의 상태를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경제의 아킬레스 건이 될 수 있는 중요품목에 대한 공급망의 점검이 필요한 이유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럽국가들도 인도태평양국가들과의 파트너협력에 관심을 표명하였다. 유럽이 IPEF를 넘어서 유럽-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를 새롭게 짜자고 요구할 수도 있다. 외교, 안보, 경제가 하나로 통합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