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전환은 디지털 전환과 더불어 글로벌 사회가 맞닥뜨린 도전과제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디지털 전환과 달리 처음에는 호기 있게 출발했던 그린 전환의 앞날은 최근 점차 그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나섰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주요 선진국의 정치적 기반과 강력한 정책 의지, 그리고 국제적 공조 기반은 여전히 취약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나타난 지정학적 위기로 인하여 그린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협력의 분위기는 더욱 약화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처럼 리더 국가들의 정치적 및 정책적 기반의 약화, 국제사회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국제공조체제의 약화, 불확실한 기술적 기반 등 여러 가지 도전과제들이 그린 전환을 더디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이에 대가로서 러시아는 서방세계의 혹독한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서방세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에너지 가격의 급등이 바로 그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럽은 러시아의 석유, 석탄,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에너지 공급구조를 형성해 왔다. 러시아에 의한 에너지 공급은 유럽의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였다.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를 러시아가 공급해 준 결과로서 유럽의 풍요가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를 둘러싼 유럽의 안보 지형이 변화되면서 유럽은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동안 원자력 발전을 폐기하고 재생에너지 보급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오던 독일조차도 기존의 에너지 정책으로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폐기하려던 석탄발전소도 다시 돌려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 중동, 호주 등 다른 지역의 에너지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되었다. 갑자기 화석연료에 대한 개발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상황변화는 환경과 사회에 대한 배려, 그리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지향하는 투자행태 즉 ESG투자에도 변화를 촉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SG 투자는 화석연료를 개발하는 기업이나 사업에는 투자를 꺼리는 것이 원칙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등 그린 전환을 촉진하는 기업이나 사업에 투자를 확대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시장의 자금흐름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의 공급이 급해졌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되던 화석연료 관련 자본설비(이른바 좌초자산)들이 갑자기 수익을 내는 자본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슬그머니 자금이 다시 이들 자산으로 흘러가기 시작하고 있다. 역시 자본은 이익을 따라 흐른다. 그동안의 ESG 투자는 고상한 이념을 좇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돈이 되는 방향으로 돈이 흘러간 것일 뿐이다. 이제 다시 옛적 사업의 수익성이 좋아질 것 같으니 슬그머니 그쪽으로 돈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향이 얼마나 강하게 나타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경제안보와 공급망 안정성 확보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에너지 정책은 필연적으로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이와 더불어 에너지, 자원, 그리고 식량은 이제 ‘경제적 재화’의 성격과 더불어 ‘안보적 물자’의 성격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세계화 시대에 전개해 왔던 기존의 전략과 정책의 수정을 예고하는 것이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조달선 다변화와 비축이 이루어질 것이고 원자력의 사용은 다시 확대될 수 있다. 화석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정책은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플레이션의 확대는 재생에너지 보급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린 전환을 저해하는 도전과제가 여기저기에서 크게 늘고 있다. 해는 지고 있는데 갈 길은 아직 멀고 넘어야 할 산들은 더 많아졌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