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 칼럼]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 트로이 목마를 조심해라

2022-06-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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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소장]

고대 희랍과 트로이아 사이에 있었던 트로이 전쟁은 흥미롭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따르면 여신들의 미모 경쟁 트로피인 황금사과 다툼이 희랍 왕가 유부녀인 헬레나의 납치극을 초래했고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졌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수많은 신과 영웅의 이야기가 등장하며 이 전쟁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쟁의 동기에 비해 트로이 제국은 너무 큰 대가를 치르며 참혹한 최후를 맞았는데, 트로이 전쟁을 마무리한 것은 바로 트로이 목마라는 사기, 술수로 알려져 있다. 사실 트로이 목마는 희랍 오디세우스 장군의 황당한 지략이었으나 성공 원인은 오히려 패자인 트로이아에 있다. 트로이군은 내부 경계 목소리도 무시하고 승리에 취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遇)를 범했다. 그들이 경고 목소리를 잠시만 확인하려고 노력했어도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한편 물리적·경제적 전쟁이 난무하는 2022년 세계에 트로이 목마를 위험의 새로운 형태로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치열한 전쟁 상황에서 거대하고 낯선 모습으로 출현한 목마를 당연하게 경계해야 하지만 무사안일한 태도로 멸망을 가져온 트로이 목마가 상징하는 위험을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 치명적 피해를 초래한다는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과는 성격이 다른 만성 위험이다.

 

한편 2022년도 절반이 지난 시점인데 국내외 정치, 경제적 사건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무슨 일인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2020년 3월 이후 줄 곳 상승세였던 주식시장은 2022년 들어 내림세(bear market)로 접어들었다. 지난 주말까지 연초 이후 MSCI 세계지수는 –22.4%, S&P500 –22.9%, 코스피 - 18%를 기록했다. 특히 뉴욕증시의 3개월 만기 옵션에 반영한 변동성을 나타내는 공포지수(VIX)는 지난해 말부터 81%나 상승했다. 또한 CNN의 공포﹡탐욕 지수(Fear&Greed Index)는 2021년 12월 말 탐욕(Greed)을 나타냈으나, 지난 주말에는 극단적 공포(Extreme Fear) 상태를 나타냈다. 이렇게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는 금융소비자에게 트로이 목마가 배달될 확률이 높다.

한국 금융시장을 뒤흔든 1997년 - 국내 금융기관이 바보임을 입증한 - 태국 바트화 사태, 2007년 중소기업을 울린 키코(KIKO) 사태, 2019년 금융회사 탐욕을 보여준 해외 금리 DLF를 비롯한 사모펀드 사태 등에는 공통 패턴이 있다. 세계적인 변동성 폭증 시기에는 글로벌 금융회사가 고수익을 미끼로 복잡한 금융상품을 들고 나타난다. 국내 금융회사는 높은 수수료에 현혹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내 금융소비자에게 불공정 판매를 한다. 국내 금융감독과 사법 체계는 불공정 판매로 인한 금융소비자 피해 따위로 금융회사를 문 닫게 하지 않는 것이 오랫동안 누적한 경험치다. 또한 라임, 옵티머스, 이탈리아 헬스케어, 젠투 등 수많은 사모펀드 부실 사태는 국내 금융회사가 직접 작업하려다 변동성을 감당하지 못해 실패하거나, 금융회사 측 세뇌로 해외투자 맹신에 빠진 일부 금융소비자에게 작정하고 사기를 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트로이 목마는 오래전부터 금융시장에서 목격되어왔다. 그러나 대부분 목격과 동시에 금융당국, 금융회사, 금융소비자 모두 무시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즉 모두 이들 금융 사건에 어떻게 생긴 트로이 목마가 감춰져 있는지 외면한다. 거대한 목마를 타고 온 금융 사건을 단지 단순한 사고로 애써 축소하고 묵인하는 과정으로 목마는 성안으로 들어간다. 결국 트로이 전쟁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참혹한 죽임을 당하는 쪽은 성안의 백성이다. 바로 금융소비자다.

2019년부터 물의를 일으킨 후 아직도 이어지는 해외 금리 DLF 등 사모펀드 불공정 판매 사태를 금융소비자 관점에서 분석해보면 두 개의 트로이 목마가 드러난다. 첫 번째 목마는 금융상품의 가치평가 조건과 이를 결정하는 경제 상황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이해 부족이고, 두 번째는 이를 판매한 금융회사의 신뢰성에 대한 정보 부족이라는 목마다. 과거 행정 편의 때문에 금융당국은 목마를 식별할 금융교육을 하지 않거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금융교육이 이슈화하자 대부분 금융회사에 의존했다. 왜곡된 금융교육 시스템에서 금융소비자는 구조적으로 자기 위험을 알 수 없었다. 해외 금리 DLF 판매가 한창일 때 세계 금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뉴스를 조금만 신경 써서 살펴보면 알 수 있었다. 금융소비자가 이름도 생소한 금융상품에 가입하기 전에 금융시장 상황을 아예 점검하지 않으면서 이미 드러나 있던 거대한 목마는 금융소비자와 면담할 기회가 없었다.

첫 번째 목마를 금융소비자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두 번째 트로이 목마는 더 기승을 부릴 확률이 높다. 이 목마는 금융 거래에서 발생하는 금융회사의 위험으로 금융 계약의 거래 상대방 위험(counterpart risk)이다. 이 위험은 특히 금융상품 가입과 이후 관리에 금융 상담직원 의존도가 높은 금융소비자에게 더 해롭다.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은 금융기술자에게는 기대 수익 높은 상품을 제조할 기회이며, 높은 판매 수수료를 약속하므로 금융회사에는 경영이익을 키울 기회다. 금융 세계화 시대에 금융회사의 주요 주주이며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선진국 기관투자가(펀드)는 경영진의 주주 이익 우선 경영을 압박한다. 금융회사의 독려, 인사 평가와 인센티브 제공에 상담직원은 고위험 상품을 우선 판매할 수밖에 없다. 목마를 제거하지 않는 한 사회적 문제 발생 시 잠시 자제했다가 망각 기간 경과 후 재발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여전히 금융소비자가 트로이 목마를 식별할 시스템이 미비한 상태다. 첫 번째 목마는 금융소비자 스스로 노력으로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금융소비자보호법으로 마련할 금융교육 시스템에도 기대를 걸어본다. 부디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에게 필요한 금융교육을 진지하게 연구하길 바란다. 그러나 두 번째 목마의 식별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금융회사 정보는 거의 불모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금융회사가 정직할 거라는 편견을 금융소비자와 사회는 깨야 한다. 최근 이어지는 횡령 사고는 금융회사의 가치관이 무너진 신호일 수 있다. 거대한 트로이 목마는 오래전 한국 금융시장에 들어와 있다.


조수연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 석사 ▷하나금융투자 상무 ▷금융투자분석사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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