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는 분업과 협력으로 비용을 줄이며 성장해 왔다. 그러한 세계화가 지금 역회전하면서 블록화라는 반동(反動)이 고개를 든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재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거대한 글로벌 리스크로 사회·경제 전 분야에서 코스트 증가를 겪게 된다.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생활비 상승이 계속되면 사회적 불만은 커진다. 자국 우선의 수출 제한 같은 움직임이 확산되면 분절이 심화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역사적인 고물가에 세계의 결속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지난 16일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발표됐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할 경제정책, 즉 ’Y노믹스‘ 전체 모습이 밝혀진 것이다. 이전에 내놓은 새 정부 국정 목표와 20대 약속, 110대 국정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책이다.
판교는 윤 대통령이 추진할 경제정책(Y노믹스)을 처음으로 국민 앞에 설명하는 자리가 되며 다시 희망을 쏘아 올렸다. 발표 내용은 윤 정부가 향후 5년간 어떻게 나라 경제를 이끌 것인지를 가늠케 하는 키워드들을 집약했다. 국민들이 52쪽 분량의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보고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언론들은 비슷비슷한 제목들을 뽑았다. '윤 대통령, 경제관료들에 경제위기 대응 위해 강한 투지로 임해 달라고 주문' 'Y노믹스는 민간 주도의 혁신성장' '스태그플레이션···복합위기에 경제·시장 흔들' '규제 철폐 올인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돌파'···.
언론들은 이와 함께 Y노믹스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표방하며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를 기조로 삼고 있다는 점, 그 기조 아래에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각종 규제 철폐에 올인해 성장의 바퀴를 돌게 함으로써 3高(고물가·고금리·고환율) 복합 위기를 돌파한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는 점을 소개했다.
언론들의 이러한 설명과 분석에도 불구하고 ‘Y노믹스’ 정체가 무엇이냐며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그 궁금증을 풀어줄 단서가 윤 대통령이 경제정책 방향 발표에 이어 기업인들과 진행한 비공개 토론에서 행한 발언에 있다.
“미국 항공모함은 미국 국방부 재산이지만 태평양 바다로 갈 땐 수천, 수만 개 기업이 같이 지나가는 것입니다”라는 대통령 발언 내용이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항공모함을 예로 들어 정부와 기업 간 관계를 설명했다. 세계 1위 미국 국방력을 상징하는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위해선 수많은 미국 기업의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은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행사에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경제단체장과 이채린 클라썸 대표, 김지원 레드윗 대표 등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경제계는 이에 앞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주축이 되어 지난 5월 24일 '신(新) 기업가 정신'을 선포했다. 선포식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손경식 경총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등 국내 재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경제단체와 국내 대표 기업 등 76곳이 동참했다. 나라가 어려울 때 투자와 고용을 일으키는 데 경제계가 앞장서겠다는 일종의 결의문이다.
윤 대통령의 ‘항공모함’은 ‘헵타포드(heptapod)의 언어’로 해석된다. 다리 7개를 가진 문어 비슷한 외계 생명체(헵타포드)가 지구에 와서 소통을 시도한다는 내용의 미국 SF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를 떠올려 봤다. 2016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가 선언된 그해 11월에 개봉된 영화다.
헵타포드의 언어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비선형적인 언어다. 어느 한 시점, 어느 한 사안에 매몰되지 않고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시도가 배어 있다. 영화에서는 그 언어를 물리학자와 언어학자가 풀어 나간다.
윤 대통령이 예를 든 항공모함은 기술패권 경쟁과 경제안보 시대의 최대 상징이다. 그래서 항공모함론은 과거의 성장 체험과 현재의 성숙 단계를 넘어 미래의 재도약을 그리는 ‘한국 경제 재흥(再興) 전략’을 암시한다.
이를 실행에 옮길 윤 정부의 경제 운영 시스템은 기획재정부 출신들이 중핵을 이룬다. 예컨대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수석,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기재부 출신들을 소위 스와트(SWOT·강점, 약점, 기회, 위협요인) 분석을 하면 국정 관리의 노련함과 책임감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반대로 엄격한 관료주의와 선도력 미흡은 약점 요소다. 요즘 같은 VUCA(Volatility·변동성, Uncertainty·불확실성, Complexity·복잡성, Ambiguity·애매성) 시대에 안정 위주의 후발적 자세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기업이다, 정부와 기업은 하나다‘라고 윤 대통령이 강조한 것도 글로벌 위협 요인을 기회로 바꾸는 도전적·혁신적 자세를 주문하는 것으로 보인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하는 정부‘를 염두에 둔 지적으로도 해석된다.
경제 장관들은 바로 ‘간각하(看脚下)’로 응답해야 할 때다. 아무리 미래 비전이 화려하고 정책과 전략이 뛰어나다 해도 지금 발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부터 정치는 한발 앞이 암흑이라고 했다. 지금은 경제도 똑같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고 위험하다. 세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우선 파악해야 한다.
현장 교수, 현장 관료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왜 주유소에서 휘발유(ℓ당 2079원, 사당동)와 경유(ℓ당 2089원) 가격이 역전되었는지, 곧 ℓ당 2100원을 넘는다며 미리 탱크를 가득 채우려고 줄을 선 사람들의 심리 등을 파악해야 한다. 지하철 환승역이 요즘 왜 붐비는지, 아파트 동네 쓰레기량이 왜 슬슬 줄고 있는지, 한여름으로 가는데 가정의 전기 사용량은 어떻게 변하는지, 치킨집 튀김용 기름값과 치킨 배달료는 어떤지 등은 민심을 축적하는 ’길거리 경제학‘의 주요 변수들이다.
경제관료들이 현장력을 갖고 제대로 처방전을 내어야 대통령의 언어에 힘이 생기고 미래 비전이 또렷해진다. 윤 정부의 경제 5년을 지탱해 주는 기초체력도 여기에서 생긴다. 경제 전문가들은 윤 정부의 경제 로드맵을 상정한다. 우선 정부 출범 100일과 8월 15일 광복절이 다가온다. 2023년은 윤 정부가 첫 편성한 예산으로 나라를 운영한다. 내년 1년은 한국 경제의 흥망을 결정짓고, 2024년 4월 총선의 성패를 가늠하는 엄중한 한 해가 된다.
국가 과학기술정보정책을 책임지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최근 대통령 취임사와 국정과제 및 주요 각료들 취임사를 ’워즈 클라우드‘로 분석했다. 김재수 KISTI 원장은 취임사 내용이 상당 부분 공유되고 있어 정부 내 정책 소통에 강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취임사에서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선언한 것과 궤를 같이하며 ‘디지털’ ‘혁신’ 등이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음도 파악됐다.
최희석 KISTI 정책부장은 “디지털 중심 국가로서 전체적으로 규제와 제도를 개선해 기업과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기술 혁신을 통해 균형 있는 지역 발전과 경쟁력 확보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새 정부의 정책사상(콘셉트)을 풀이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Y노믹스’ 가 이제 본격적으로 실행에 들어간다. 윤 대통령 말을 원용하면 한국형 항공모함이 출범했다. 큰 배에 무엇을 담고, 어디를 향하는지에 대해 전 국민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의 ‘항공모함’이 순항하기를 기원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