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그룹이 최근 글로벌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탄소중립 등 기후금융 관련 행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동안 금융회사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다소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것과 달리, 최근 들어서는 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직접 대외행보에 나서며 기후금융 관련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후금융과 관련해 최근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곳은 ‘리딩금융 라이벌’로 불리는 KB금융그룹과 신한금융그룹이다. 특히 양대 금융그룹 수장인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경쟁적으로 주요국 당국자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등 탄소중립과 기후금융에 적극적인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지난 3일 윤종규 회장과 조용병 회장은 게리 그림스톤 영국 국제통상·에너지·산업전략부장관과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를 같은 날에 만나 기후금융에 방점을 둔 ‘지속가능한 투자’에 대한 논의에 나섰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련기술의 발전과 함께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신재생 에너지 관련 양국 간 협력을 예고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역시 "신재생 에너지 등 분야에서 아시아 지역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지난 9일에도 유엔(UN) 기후변화·해양 특사를 역임한 바 있는 토마스 앙커 크리스텐센 덴마크 기후대사와 나란히 만남을 가졌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이 자리에서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덴마크의 에너지인프라 전문 자산운용사 ‘코펜하겐 인프라스트럭쳐 파트너스’의 C테크 관련 펀드에 2500만유로(약 34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윤종규 KB 회장도 청정에너지 사업 등에 대한 금융지원을 약속했다.
두 수장의 기후금융 관련 행보는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UN과 영국정부로부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의장단 리더십 단체인 'COP26 비즈니스 리더스 그룹' 회원으로 초청받아 참석하는가 하면 탄소중립을 위한 글래스고 금융연합 아태지역 자문위원으로도 선임됐다.
우리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 또한 중장기 ESG 전략을 앞세워 '탄소중립' 행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그룹 차원의 ESG 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선포한 바 있는 우리금융은 지난달 전세계 기업 최초로 지속가능한 산림 보호 및 토지 황폐화 개선을 위한 B4L 이니셔티브(Business for Land 이니셔티브’) 출범 관련 공식 지지를 선언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최근 최병안 산림청장과 만나 탄소중립과 ESG경영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손태승 회장은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는 환경파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어 자연회복을 위한 국제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면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자연기반 해법으로 주목받는 레드플러스(REDD+) 참여하고 전세계 학생에게 기후위기 대응과 산림교육 등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올해 초 취임한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역시 탄소중립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하나금융은 '함께 성장하며 행복을 나누는 금융'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ESG 관련 중장기 추진 목표 '2030 & 60'과 'ZERO & ZERO'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 세부 내용을 보면 보면 환경(Environmental)과 관련해 △탈석탄 선언에 따른 석탄PF 제한 △ESG 채권 발행 확대 △녹색 금융 및 ESG 테마금융 확대 등이 설정됐다.
하나금융은 지난달 UN 산하 글로벌 금융사들의 탄소중립 추진 연합체인 넷제로은행연합(NZBA)에 가입했다. 타 금융그룹 대비 가입시기가 다소 늦긴 했으나 하나금융은 올해부터 사업장별 탄소배출량 목표를 SBTi 기준으로 재조정, 자산 포트폴리오 탄소 배출량 목표도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금융그룹들이 이처럼 기후금융에 관심을 쏟는 것은 급변하는 기후 상황에 따른 전방위적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구 온난화를 극복하기 위해 탄소중립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생산과 산업, 건물, 교통, 농업, 재활용까지 다방면에서 혁신을 요구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상품에 '탄소국경세'를 매기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관련 손실이 증가할 경우 금융시장에 미치게 될 영향은 적지 않다. 일례로 보험업권의 경우 자연재해 손해에 따른 보험금 증가 뿐 아니라 보험료 인상 등의 영향을 받고 있고 은행권 역시 자연재해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과 수입감소 등이 차주들의 부채상환 능력을 악화시켜 금융기관들의 건전성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또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위해 국제사회가 탄소세 부과 방침 등을 천명하면서 급작스런 전환에 따른 소모비용 또한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이른바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 연관산업 등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기존 자산의 사용의 사용을 중지해야 하는 만큼 자산의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해당 산업에 여신을 제공한 금융기관의 악영향도 우려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기후기술을 의미하는 'C-테크(Climate, Clean, Carbon Technology)'가 급부상하는 것도 금융그룹들이 기후금융에 관심을 쏟는 주된 이유로 꼽힌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탄소중립을 가속화할 C-테크는 금융시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산업이며 이를 지원하기 위한 녹색금융 역량이 곧 금융회사의 미래 경쟁력이 될 것”이라면서 “녹색금융을 통해 국가와 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신한금융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