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래소 코빗의 백영진 기술연구원이 게임업계 첫 정년퇴직 개발자로서 산업계의 정년 연장이 논의되길 바란다는 생각을 밝혔다. 국내 여러 산업계에서 소프트웨어(SW)·정보기술(IT) 분야 '구인난'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정년에 다가가고 있는 인력들을 계속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 달라는 당부였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백 연구원은 네오플에서 16년 4개월간 서버 개발자로 일하다 2021년 12월 정년퇴직 후 코빗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인물이다. 대다수의 개발자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의 성패에 따라 이직과 전환배치 등 운명이 달라지고 1, 2년 후를 내다보기 어려운 게임 업계에서, 최초의 정년퇴직자가 된 그의 사례가 알려지자 큰 반향이 일었다.
공장 취직으로 사회생활…40대에 업계 진입
백 연구원이 게임 산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은 40대가 된 이후부터다. 그의 전공 분야도 게임과 무관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부터 관련 경력을 준비해야 한다고 인식되는 요즘 기준으로 볼 때 그의 업계 진입 과정은 멀고 험난했다.
그는 학창시절 컴퓨터공학과나 전자공학과로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부족해 농과대학에 입학했고 토목 전공으로 졸업했다. 몸이 약해 병역을 면제받았지만 토목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기업에 취업하지 못해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구로공단의 정밀기계공장에서 일이 고된 2교대 업무 담당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왕 고생할 거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고생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모아 둔 급여를 털어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애플 투(Apple II)를 샀고, 공장 일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이 공부에 재미를 느낀 그는 이후 애플 투 컴퓨터를 구입한 매장의 사장에게 졸라 판매직으로 취직했다. 3년 간 매장에서 다양한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접하면서 컴퓨터 기초 지식을 쌓고, 이후 컴퓨터 학원 강사로 일하거나 의료보험 수가 계산 프로그램을 만들어 서비스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백 연구원은 강사로 일하던 학원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지도교수의 권유로 토목 업종의 회사에 다니게 된다. 이 때 토목 관련 업무를 전산화하는 일을 맡으면서 자신에게 컴퓨터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국내에서 PC용 온라인 게임의 태동기인 1990년 초 이 회사를 나와, 사람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밤에 독서실을 운영하면서 낮에는 부족한 게임 개발 관련 지식을 늘리기 위해 공부하면서 간단한 PC 게임을 습작으로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에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기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백 연구원은 "독서실을 운영하면서 친하게 지내게 된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과를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는지 물어보기도 했는데 대부분 부모님이 시켜서 선택했다고 한다"면서 "학생들뿐 아니라 어른들조차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기보다 한 번 취업해서 사회에 나가보니 공무원이나 의사, 한의사가 되는 것이 제일 안정적이고 좋을 것 같아서 도전한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백 연구원은 "제 나이 마흔에 게임 업계로 진출할 기회가 마침내 찾아왔다"며 "2000년 IT붐인 닷컴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고 당시 IT인력의 부족으로 경력이나 신입이나 프로그래머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취업을 시켜주는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렇게 게임회사에 첫 발을 디뎠는데 초기에 입사한 회사는 게임이 나올만하면 회사가 망하고, 월급도 못 받고 나오거나 어떤 회사에서는 쫓겨나기도 했다"며 "그나마 오래 다닌 편이었던 3년을 다닌 회사도 결국 망했다"고 말했다.
네오플에서의 16년…직장생활의 단맛과 쓴맛
이후 백 연구원은 자신의 업계 스승이자 직장동료인 친구의 추천으로 당시 던파 오픈베타 서비스를 막 시작한 네오플에 이력서를 내고 결국 입사하게 됐다.
백 연구원은 입사 초기에 혼자 개발을 책임졌던 게임 서버를 안정화하고 주 단위 패치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던파(서버)의 동시접속자수가 늘어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던파가 성공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을 때 팀원들이 서로 축하해 주고 서로의 실력을 인정해 줬다"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최고의 실력자였구나 생각되고 우리가 '최고'가 되는 순간을 맛볼 때 행복했고, 그렇게 저는 꿈을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백 연구원은 네오플에 팀원으로 입사해 파트장, 팀장 등 부서장 직책을 맡았고 이후 다시 팀원으로 돌아왔다. 부서장에서 팀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그는 "직책의 변화는 네오플이 급변하는 시기에 (인사조직개편이) 이뤄졌기 때문이지 제가 파트장·팀장 역할을 할 만큼 능력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저보다 뛰어난 분이 나타나면 언제든 물러나야한다고 생각했고 그 때가 와서 팀장자리에서 내려와 팀원이 됐다"고 말했다.
백 연구원은 "오랫동안 팀장을 하다가 팀원이 되니 (동료들과) 한동안 서로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며 "저에 대한 오해가 쌓이기 시작하고 다른 팀에서도 간접적으로 저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전달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긴 시간 저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회사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게임 개발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며 "팀을 옮겨 모든 분들이 가까이서 제 모습을 보게 하고 저도 그분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오해를 풀어나갔다"고 설명했다.
팀원들과의 오해를 풀기 위해 백 연구원은 자신의 단점을 인지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는 기획자, DB개발자(DBA), 클라이언트 개발자, 품질관리(QA)담당자 등과 협업할 때 그들의 업무에서 기인하는 요구사항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태도가 자신에게 필요했다고 봤다. 그는 "저의 문제는 서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나 부하를 이유로 (요청사항을)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해 온 것"이라면서 "조금은 제가 권위적이었고 서비스정신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백 연구원은 상대적으로 젊은 동료들과 일할 수 있어 자신이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봤다. 그는 "10년, 20년씩 나이 차이가 나는 팀원들과 같이 일하다 보니 새로운 트렌드 지식도 많이 얻고 동호회 활동, 취미 생활을 함께 하며 제가 오히려 젊어지는 기분이었다"며 "네오플에 입사한 시점의 저와 현재의 저를 비교해 보면 기술적인 부분, 인격적인 성장 수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통찰력 같은 것이 스스로 많이 발전했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게임 회사 업무환경과 조직문화의 과거·현재·미래
PC게임과 콘솔게임, 온라인 게임에서 모바일 게임을 거쳐 가상현실·융합현실 등 기술을 이용하는 메타버스 세계로 업계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기존 게임에 블록체인 기술이 접목된 '플레이 투 언(P2E)'이라는 새 물결도 일고 있다. 게임 개발 영역에서 C와 C++이 주류 언어라는 것도 과거 얘기고, 이제 파이썬(Python), 코틀린(Kotlin), 러스트(Rust), 고(Go) 등의 언어를 이용하는 개발도 가능해졌다.
백 연구원은 이처럼 기술 기반과 플랫폼 트렌드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업계에서 개발자들에게 "빠르게 변하는 게임 플랫폼과 언어를 모두 다 익힐 수는 없다"면서 "관심이 가는 트렌드에 대해 습작을 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을 충실히 익히고 통달하면 변화하는 트렌드에 적응하기 쉬워지고 그렇지 않으면 트렌드에 적용할 때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된다"고 조언했다.
게임 회사에서 오래도록 정년을 맞이하고 싶은 개발자를 위한 조언과 업계 전반을 향한 당부가 이어졌다.
백 연구원은 "이제 게임 업계에도 과거와 달리 팀 내 평균 나이가 점점 올라 40세, 50세 되시는 개발자분들을 흔히 만나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처럼 정년퇴직(할) 때까지 근무할 수 있는 개발자는 어찌 보면 행복하다"며 "대부분의 개발자는 정년퇴직이 아니라 40세, 50세가 되기 전에 게임 업계를 떠나는 분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따라 구조조정이나 인력 재배치가 많은 업계 특성 때문에 1, 2년 뒤를 내다보기 어렵고 자신의 정년퇴직을 꿈꾸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백 연구원은 "개인적인 바람으로 (개발자들이) 건강이 허락하고 개발 능력만 있다면 정년을 넘어 계속 회사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게임 회사에서 정년 연장까지 고민해 주셨으면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노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고 개발 인력은 점점 더 부족한 것이 현실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어 "개발자들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최근 생겨난 노조를 통해 이런 문제를 고민해 보셨으면 한다"면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들이 컴퓨터 앞에서 개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정년퇴직 후 코빗에서 맡은 역할의 포부도 내비쳤다. 그는 "제2의 인생 마라톤을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빗에서 시작할 수 있었기에 저는 참 늘그막에 복 받은 사람"이라면서 "같은 업계에서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건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게임업계에서 배운 서버 지식을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빗의 서버에 적용 가능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조급한 마음을 갖기보다 자신처럼 꿈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개발자 경력관리의 비결로 제시됐다.
백 연구원은 "게임 업계의 미래는 더 불확실해져서 어떻게 경력관리를 해야 할지 고민하실 것"이라며 "핵심은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다 보면 도가 트이고, 그 일에 관련된 다른 일도 연관 지어 쉽게 접근이 가능해지고, 롱런해서 결국 꿈을 이루게 된다"며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은 충분하기에 너무 힘들 때는 쉬어 가도 되고 조급하게 가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빠삐용'이 자신의 인생 영화라고 소개하고 "꿈은 용기 있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며 "여러분들의 건투를 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