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퇴직자 A씨가 국내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유지했다.
이 사건 연구원은 노조와 합의를 거쳐 2009년 1월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1991년에 입사한 A씨는 2011년부터 적용 대상이 됐다. A씨는 임금피크제로 인해 직급이 2단계, 역량 등급이 49단계 강등된 수준의 기본급을 지급받게 됐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하지 못하게 한 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퇴직 때까지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2심은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 반해 무효로 판단하고 A씨 손을 들어줬다. 하급심 재판부는 "연구원 직무 성격에 비춰 특정 연령 기준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거나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근속 기간 차이를 고려한 것이라는 사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구원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당시 노조 측 동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취업규칙 내용 자체가 현행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 규칙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날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와 노동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단에 따라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은 제도를 없애거나 변경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손익찬 노동법 전문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임금피크제는 정년 유지형이 있고 정년 연장형이 있다"며 "정년 유지 조건에서 임금피크제를 명분으로 고령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능력과 퍼포먼스 상관 없이 연봉 수준을 대폭 깎는 건 차별이라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당시 적극적으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를 추진했는데 정년이 유지되는 사업장들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 들어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도입된 임금피크제는 고령화 심화나 박근혜 정부의 장려 등과 맞물려 2016~2017년 빠르게 확산했다. 2019년 기준 상용 노동자가 1인 이상이면서 정년제를 실시하는 사업체 21.7%가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