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의 인플레이션 전쟁에서 집값이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빠른 속도로 오르는 데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전면에 나설 때마다 주택 시장이 큰 역할을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미국의 뜨거운 주택 시장이 연준을 궁지로 몰고 있다고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과거에는 이 정도 수준의 모기지 금리 급등은 주택 수요를 급격하게 위축시켰다”며 “그러나 지금은 판매가 둔화되더라도 주택 가격이 최고치를 경신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S&P 다우존스인디시즈와 코어로직에 따르면 미국 주택 가격은 지난해에만 18.8% 급등했다.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은 주택 가격이 올해 10%, 뱅크오브아메리카 이코노미스트들은 15%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연준은 경기침체를 야기하지 않으면서 주택시장을 냉각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그리고 얼마만큼 빨리 금리를 올려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주택시장은 금리 인상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싸울 때마다 가장 중요한 전쟁터였다.
다만, 미국 신규 주택 판매가 4개월 연속 감소하는 등 주택 시장이 냉각되는 초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4월 기준으로 신규 단독 주택 판매량은 59만1000건(계절 조정)으로, 전달 대비 16.6%, 전년 동월 대비 26.9% 감소했다. 미국 상무부는 이는 대유행으로 경제 활동이 멈췄던 2020년 4월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평했다.
판매 둔화는 집값이 너무 오른 데다가 대출 상환 부담까지 커진 영향이다. 신규 주택의 중간값은 45만600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0% 넘게 올랐다. 질로우 그룹에 따르면 3월 일반 주택의 30년 고정 모기지 월 상환액은 1475달러로, 지난해 4월 대비 53% 치솟았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주택 수요자 다수가 높은 이자율을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택 건설업체 회사인 테일러 모리슨이 올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500명의 잠재 구매자 가운데 오직 10% 미만만이 모기지 금리가 상승할 경우 주택 구매 노력을 중단하겠다고 답했다.
공급 부족도 문제다. 존 번즈 부동산 컨설팅은 인구 증가와 가구 구성을 감안할 때 약 170만 가구가 부족하다고 추산했다.
연준 관리들 역시 주택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싸움이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지난 4월 “주택 시장에서 퍼펙트 스톰이 몰아치면서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최근 워싱턴으로 이사하면서 미친 집값을 몸소 느꼈다. 그는 지난달 청중에게 “어제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내 집을 현금 구매자에게 팔았다"며 “나는 DC에 집을 사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정말 (집값이) 미쳤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인들이 경험하는 인플레이션에서 주택 비용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통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택 시장을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강조했다.
월러 이사에 따르면 미국 주택 비용은 1970년대 초 가계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24%에서 1980년대 후반 27%, 2019년 35%로 급증했다.
시장은 연준의 인플레이션 전쟁이 주택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주목한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에는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경기침체가 발생했으나, 주택가격(명목)은 하락하지 않았다. 반면, 2004년과 2006년에는 연준의 금리 인상이 주택 가격을 둔화하는 데 거의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2007년에 주택 거품이 순식간에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