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교환 수단으로 주목받아 한때 ‘디지털 금(金)’으로 칭송받던 비트코인이 체면을 구겼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주요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자, 위험자산인 가상화폐에서 자금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신뢰할 수 있는 투자처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비트코인은 4000만원을 처음 돌파한 2021년 초 이후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3일 오후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38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12일 4000만원선이 깨진 이후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4000만원 이하로 떨어진 건 작년 7월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지난해 11월 8일 8140만원으로 치솟았던 점을 고려하면 절반 이상 줄어든 수준이다.
가상화폐는 미국의 긴축 통화정책,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장기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대도시 봉쇄 등으로 경기 침체가 우려되자, 주식과 함께 직격탄을 맞았다. 금융시장 내 불안정한 요인들이 난립하자, 위험자산으로 인식되는 주식과 가상화폐에서 자금이 대규모로 유출된 탓이다.
가상화폐는 주식 시장보다 더 크게 폭락했다. 미국 주요 주가지수인 S&P 500은 올해 초부터 현재(5월 초 기준)까지 18% 하락한 반면, 비트코인은 같은 기간 40% 떨어졌다.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5일간만 보더라도 S&P 500은 5% 떨어졌으나, 비트코인 가격은 20%나 하락했다.
여기에 한국산 가상화폐 테라USD(UST)와 루나가 폭락하는 사태까지 겹치면서 가상화폐 투자 심리는 더 위축됐다. 테라USD와 루나는 서로의 유동성, 차익거래로 가치가 유지되는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다. 다른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같은 실물자산을 담보로 잡는 것과 차이가 있다.
주요국이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면서 가상화폐 시장의 붕괴가 얼마나 더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가상화폐가 가격을 회복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 불분명하다”고 보도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외부 충격에 출렁이자 ‘디지털 금’이 되기엔 아직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식보다 가격 변동성이 크고, 전쟁과 도시 봉쇄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제대로 된 투자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문종진 연세대 교수는 "가상화폐 가격은 기관투자자들이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금융시장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금리인상 시기에 투자 포트폴리오 중 가장 먼저 처분해야 할 자산이 되면서 급락하기 시작했다"며 "내재가치가 없어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도 안전한 투자 자산이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