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수위 2금융권→1금융권 대출이전 추진에 은행 신용위험↑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인수위가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의 제2금융권 대출을 제1금융권으로 이전하는 내용을 포함한 ‘긴급금융구조안’을 검토하자, 은행이 저신용자 대출의 신용 위험을 떠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1금융권의 저리 대출로 갈아탈 경우, 대출금리 격차에 따른 비용은 정부가 보전한다지만, 부실에 대한 책임은 모두 은행이 짊어질 가능성이 크다.
2금융권에서 대출받은 이들은 1금융권 차주 대비 신용도가 낮다. 은행 입장에선 2금융권에서 넘어오는 여신만큼 ‘크레딧 코스트(대출잔액 중 대손충당금을 쌓는 비율)’를 높여야 한다. 대손충당금이 늘어날수록 은행의 순이익과 배당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수위 긴급금융구조안 최종안에 원금 일부 탕감, 이자 면제 등의 세부안까지 포함되면 은행의 비용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긴급금융구조안의 세부안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 논란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청년희망적금,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 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도 정부와 정치권이 금융권을 흔드는 사례다. 청년희망적금은 매월 50만원 한도로 납입할 수 있는 만기 2년 상품으로, 정부가 최대 36만원의 저축장려금을 제공한다. 은행은 5~6%대의 고금리 혜택을 준다. 은행권의 2년 만기 정기적금 대비 금리가 2~3%포인트나 높다. 은행은 이 상품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지만, 정부가 신청자 수에 제한을 두지 말라고 못을 박아 당초 계획보다 8배나 많은 가입자를 받아야만 했다.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 또한 지난 3월 말에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대통령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치러야 하는 정치권의 압박으로 6개월 추가 연장됐다. 이는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 압박으로 이어졌다.
인수위와 정치권이 추진하는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도 국내 금융산업 발전보다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 표심 얻기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는 서울시와 부산시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 탕감·퍼주기·낙하산에 속수무책... 전문가 "금융업 발전 청사진도 함께 그려야"
“일반적으로 은행은 ‘공공기관’이며 은행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고, 금융산업은 다른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존재한다.”
은행연합회가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 제출하려고 만든 정책제안서 초안에 담긴 내용이다. 이는 정부와 정치권이 금융권에 과도하게 개입해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합회는 “은행이 제공하는 각종 금융 서비스 수수료를 원가에 근거해 현실화하기 어려우며, 정부 재정을 통해 지원해야 하는 영역까지 은행의 금융지원을 요청하는 관행도 존재한다”고 꼬집었다.
구체적인 예로 배당정책, 점포 전략에 대한 개입이 존재한다. 금융당국은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와 은행의 배당을 순이익의 20% 이내에서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금융권에선 민간기업인 금융지주와 은행이 자율적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왔다. 은행이 점포를 폐쇄할 때도 금융당국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이 작용하기도 해, 효율적인 점포 운영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회는 "금융산업이 실물경제와 함께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윈-윈'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은행 산업을 독자적 서비스 산업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금융위원회가 산업은행 측에 유관기관에 대한 임기 말 인사를 중단하라는 지침을 두 차례나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반대로 기업은행은 임기가 만료된 사외이사와 IBK캐피탈, IBK투자증권, IBK신용정보, IBK연금보험 등 주요 계열사의 차기 대표를 선임하지 못했다. 금융위 지침으로 인한 경영진 인사 선임 중단으로 리더십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권은 과거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방만한 경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 통폐합을 겪었는데 이로 인해 지금까지 금융당국과 정치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로 고착화됐다”며 “현재의 관치금융은 개입과 간섭의 빌미를 제공한 은행들의 업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 같은 위기 상황에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이나 정치권의 개입이 불가피하지만, 금융업의 발전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융지주사와 시중은행은 빅테크 기업들의 금융산업 진출, 암호화폐 등 디지털자산 시장의 부상으로 디지털금융이라는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문종진 연세대 교수는 "금융시장은 완전한 시장이 아니고, 그냥 놔두면 급격한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개입은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다만 금융산업 발전에 대한 (새 정부의) 청사진이 그려져 있지 않아 그런 부분은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