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밴드 ‘비틀스’의 명곡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아래)을 들어보시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같은 이름의 소설을 읽으면서 무한반복 청취도 권한다.
이 곡은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번갈아 연주하는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하는데, 스테레오 음질로 들으면 먼저 오른쪽 스피커(헤드폰 혹은 이어폰)에서 나오고 7초 이후 왼쪽에서도 울린다. 위대한 뮤지션, 두 사람의 목소리와 기타 두 대의 향연이 펼쳐진다.
인간이 가진 오감(五感)중 청각은 사람의 행복을 크게 좌우한다.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도 듣고, ‘식물인간’이 되어도, 심지어 죽어서도 귀는 작동한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많은 요양병원을 가면 병상에 누워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는 분들이 많다.
인간의 행복, 삶의 질에 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의 청각을 연구하는 오디올로지(audiology), 청각학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단순히 보청기 만들어 파는 업종이라고 오해받는다.
국내 최고의 청각학자인 이정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총장과 함께 청각과 관련한 AT(오디오 테크놀로지-Audio Technology)를 개척하고 있는 ㈜파인이노베이션 김동욱 대표를 만났다.
최근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한 인터뷰에서 김 대표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얘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건희 회장 때문에 AT업종에 뛰어들었다?
“내가 삼성전자에 92년도에 입사했는데 통신용 반도체칩 설계를 맡았다. 당시 삼성에서 바이오-헬스 업종을 신사업으로 시작했다. 전자칩과 바이오-헬스를 연결하는 전초기지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뒀다. 팀원이 7명이었는데, 처음에 뭘 해야 할지 몰랐다. X-레이를 할지, MRI(자기공명영상장치)를 개발할지…그 와중에 이건희 회장이 우리 팀에 한 가지 화두를 던졌다. ‘단위 무게 당 가장 비싼 전자제품이 뭔지 아느냐’면서. 다들 어리둥절해 있는데 ‘보청기’라고 이 회장이 말하더라.”
-그때부터 보청기를 삼성에서 개발했나?
“보청기가 3.2g이다. 현재 가격이 200만원대에서 비싼 건 700만원까지 한다. 이 회장이 선견지명이 있었다. 보청기 기술 개발이 휴대전화, 웨어러블 기기로 이어졌다. 알다시피 삼성은 보청기를 직접 개발하거나 생산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게 우리나라 AT 산업에 일종의 출발점이 됐다.”
-현재 우리나라 난청환자 현황은?
“난청 환자 수는 2011년 33만5000여 명에서 2020년 54만2000여 명으로 증가했다. 연평균 5.6% 증가할 정도로 심각하다. 그런데도 보청기 지급률, 즉 전체 장애 보조기기 지급률 중 청각장애 보청기 지급률은 60%에 불과하다. 청력, 보청기에 대해 일반인들은 잘 공감하기 힘들지만 70대 이상 노인층의 삶에 가장 직접적이고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젊은 청각장애인에게 불공정한 측면도 있다. 0~19세 청각장애인은 양쪽 보청기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AT업종, 귀가 중요한 걸 어떻게 깨달았나?
“소리는 그 다음의 이미지, 환상을 만든다. 제가 뭔가 먼저 하면 그 다음을 해달라. ‘대~한민국!’ 이어 (박수 소리) ‘짝짝짝~짝짝‘. 소리는 다음을 유추한다. 또 스마트폰으로 하는 전화 통화는 하루에 실제 1시간 미만이다. 그런데 귀가 불편해 보청기를 사용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최소 하루 10시간 연속으로 동작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비바람이 불어도 사용해야 한다. 착용하고 세수를 하는 등 하루 10시간 이상 계속 작동하는 전자제품이자 의료기기다.”
-보청기가 왜 중요한가?
“안경을 한번 맞추면 아마 몇 년 동안은 바꿀 염려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소리를 듣는 능력(청력), 소리는 계속 바뀐다. 최신 보청기에는 반도체칩과 마이크, 스피커가 들어있다. 그런데 보청기는 개인용 의료기다. 사람마다 귀가 두 개니까 두 개씩 보청기를 갖고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5년마다 스마트폰 가는 것처럼 새 걸로 바꿔야 한다. 이를 확장하면 스마트워치 등과 연계하는 모바일 헬스케어, 스마트 병원과 연결되는 미래가 눈앞에 있다.”
-산업재해와 청각장애도 중요한 이슈가 될 듯하다.
“미국 GE에서 근무할 때 발전기 만드는 공장을 갔는데 굉장히 시끄러웠다. 그런데 그 공장에 오디올로지스트(청각 전문가)가 의무적으로 배치돼 있다. 노동자들에게 청각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로감독하는 일을 한다. 한국은 어떤가. 공장 등 각종 업무 현장에 청각 전문가는 없다. 청력은 한번 망가지면 평생 간다. 산업재해인데 이를 회사에서 잘못해 노동자가 피해를 입으면 그때 보상해야 되는 금액이 굉장히 크다. 청각 전문가를 제도화하고 청각 산업재해 기준을 마련하는 등 하루빨리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파인이노베이션의 청각 관련 기술과 서비스는 무엇인가.
“우리나라가 청각 장애 관련 표준을 선도하고 있다. 국제표준(ISO 21388)으로 채택된 청각 서비스의 전 프로세스와 조건을 만족하는 직영센터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림대국제대학원대학교에 열었다. 단순히 보청기를 파는 곳이 아니라 청각을 위한 종합서비스를 제공한다. 청각기기 관리, 청능 재활 등 모든 분야에 대한 플랫폼 기반의 전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난청 예방부터 재활까지 청각에 대한 전 과정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미래의 보청기는 어떨까?
“AT는 난청을 해결하는, 나한테 맞게 소리를 바꿔주는 기술이다. 이게 귀에 들어가면 보청기가 된다. 이 기술을 TV에 집어넣을 수 있고, 스마트폰에, 자동차에, 오디오 기기에 넣을 수도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AT비즈니스는 공학도, 청각전문가, 언어치료사 등이 협업해야 성공하는 거대 시장이다. 보청기 시장이 아니라 청각서비스 시장을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제도를 만드는 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 미국은 청각전문가 자격증도 있고, 대학과 병원, 산업현장에 수요가 적지 않다. 제도적인 기본 틀을 마련해야 하는데, 각 부처별로 종합적으로 정책을 조율하는 거부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먼저 청각 관련한 비즈니스를 무자격자, 보청기 판매업자들에게 맡기는 걸 시급히 바꿔야 한다. 국민 건강, 행복을 위해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