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따르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중대재해법에 대해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윤 당선인 산업재해 감소 공약에도 하청업체의 안전 수준 의식을 높이는 등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영국 '기업살인법' 효과 미미..."경각심 고취"
영국은 늘어나는 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07년 '기업과실치사법 및 기업살인법'(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기업살인법은 산업현장에서 심각한 관리상 실책이나 부주의 등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업이나 정부 기관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한 것이다.김영덕 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살인법으로 건설 현장 등에 전반적인 안전 관리 체계에 관한 경각심이 생겼다"면서도 "처벌을 강화하면 안전이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일방적이다"라고 말했다.
英 '산재 예방 선진국' 된 계기는
2016년 영국이 산재 사망률 노동자 10만명당 0.53명을 기록할 때 한국은 그보다 18배가량인 9.6명(통계청 기준)을 기록했다. 영국이 산재 예방 선진국이 된 결정적 계기는 1972년 발표된 '로벤스 보고서'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보고서는 명령이나 통제로는 산재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사업장 자율안전관리 방식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보고서 결과를 반영한 것이 영국의 '보건안전법'이고, 이 법의 시행으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사업장 안전보건체계를 확립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석·박사급 연구원 200여 명이 매일같이 산재 예방책을 모색하는 이른바 '산재 컨트롤타워' 영국 보건안전청(HSE)의 설립이다. HSE 안전감독관은 기업이 직접 안전지침을 만들게 해 자율성을 주는 한편, 문제가 생기면 수억원대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하게 처벌한다. 처벌보단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중대재해법 현실화하라"
중대재해의 책임을 직접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묻고, 징역형의 하한까지 설정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안전관리에 힘쓴 기업인마저 잠재적 범죄자라는 신분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김상민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이례적인 입법례는 맞다"며 "대한민국은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으로도 처벌할 수 있는 영역을 '처벌이 안 된다'고 보고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중대재해법을 현실화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산재 예방 선진국보다 과도하게 형사처벌하는 규정은 완화하는 한편,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둔 법률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표적으로 기업의 자율안전관리를 인증하는 제도를 마련하거나 처벌을 면해주는 규정 신설 등이 있다.
송인택 중대재해처벌법 실무연구회장(전 울산지검장)은 "과실범의 성격이 짙은데도 법정형을 징역 45년까지 규정한 것은 과잉 입법"이라며 "법인 사업주가 부담하지 않는 의무를 경영책임자에게 부과해놓고 경영책임자의 잘못을 이유로 법인 사업주까지 벌금형으로 양벌하게 한 것도 헌법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