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원자재 가격 인상과 최근 엔화 약세가 겹치면서 기업물가는 급등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디플레이션 환경 속에서 소비자물가는 좀처럼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에 엔화까지 약세로 돌아서 상황은 악화했다.
일본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3월 기업물가 지수(CGPI)는 112.0(2015년 평균=100)으로 전년 동월 대비 9.5% 올랐다. 이는 제2차 오일 쇼크 영향을 받은 1980년 12월(10.4% 상승) 이후 지난해 2월 9.7%에 이어 높은 증가 폭을 기록한 것이다. 또한 중간시장전망치인 9.3%를 웃돈 것이기도 하다. 기업물가 상승률은 이미 10개월 연속 5%를 넘었다. 2021년 기업물가 지수도 지난해 대비 7.3% 올라 1980년 이래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수입 비중이 높은 원자재 품목 가격 상승이 기업물가 상승의 주원인이 됐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원유룰 비롯해 목재·목제품, 석유·석탄제품, 철강 등도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8.9%, 27.5%, 27.9% 상승했다.
골드만삭스는 유가 상승과 달러당 125엔 수준에서 환율이 지속되면 교역조건 악화로 제조업에서 최대 14조1000엔 이익이 줄어들면서 1975년 이래 최악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미 인플레이션 압박을 이기지 못한 기업들은 속속 가격을 올리고 있다. JFE스틸은 4월부터 강재 전 품종 가격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또 현재와 같은 가격 인상이 계속되면 올해 상반기 중 한 차례 더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니혼제철은 빌딩 기둥 등에 사용하는 H형강의 일반 유통용 가격을 3월 계약분부터 t당 7000엔 올렸다. 2개월 연속 올린 것이다.
발전용 연료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도매전력시장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배가량 올랐다. 조달 가격이 판매 가격을 웃돌기까지 하면서 도쿄전력홀딩스는 계약을 한 대기업들에 가격 인상을 요청하고 있으며, 이에 응해 주지 않을 때에는 계약 해지를 타진하고 있다.
물론 원재료 가격 상승이나 엔저가 이어지면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미나미 다케시 노린추킨리서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원자재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회사들은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게 됐다"면서 "할인 전쟁 시대는 끝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핵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말 2.5% 안팎으로 가속화하고 당초 예상보다 더 오래 2%대를 웃돌며 소비와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포장자재와 물류비용 상승으로 인해 소비자물가도 상승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공표한 기업 물가 744개 품목 가운데 가격이 오른 것은 526개로 전체 중 70%를 차지했다.
일본 식품업체 큐피는 3월 출하분부터 마요네즈 가격을 인상했다. 판매가 줄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일본 과자업체 가루비는 6월부터 새우깡 같은 일부 상품에 대해 가격을 동결하고 내용량을 줄이는 실질적 가격 인상에 나선다.
기업이 판매 가격 인상을 꺼리면 수익이 크게 줄어들고, 결국 고용과 임금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닛케이는 "고용과 임금의 악화가 개인소비를 억제하면 디플레이션 경향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 "일본 경제가 지금까지 빠져나오지 못했던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