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통상업무가 외교부로 이관되면 안되는 이유 다섯가지

2022-03-2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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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통상 업무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외교부로 이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결론적으로 통상 업무를 외교부로 이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산업통상자원부에 존치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복잡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와 경제안보를 위해서 외교부 이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외교부로 통상이 이관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외교부는 정치 중심의 외교가 본업이기 때문에 외교부가 통상 업무를 겸하게 되면 정치적 고려를 우선하게 되어 통상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적 고려 때문에 중요한 통상정책이 실기했다고 비판받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신청의 지연은 사실 통상교섭본부가 외교부에 있었던 외교통상부 시절 경제적 실리가 정무적 판단에 밀려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정치외교를 하는 외교부가 통상업무를 겸하게 되면 장관 주재 회의에서 늘 통상문제는 정치적 고려에 묻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는 외교부가 아니더라도 청와대 등 정치적 고려를 하는 힘센 곳이 많다. 외교부에 통상업무까지 추가한다면 정치적 논의에 통상은 파묻힐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압박할 때도 정치와 통상이 같은 부처에 있으면 한 바구니에 담긴 두 개의 달걀처럼 고스란히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

정치가 통상을 압도하는 것은 세계 보편의 사례이다. 세계 200개가 넘는 국가들 중에 통상업무를 하는 외교부는 10개도 되지 않는다. 외교부의 본업은 정치외교이기 때문이다. 내가 2015년 바르셀로나 통상법 연수 중에 만난 하버드 대학의 크레이그 반 그래스텍 교수는 외교 조직에서 정치외교는 통상외교보다 항상 중요시되기 때문에 통상업무를 겸하는 각국의 외교부 조직에는 기껏해야 통상 담당 차관급 정도 밖에 두지 않으며 외교부의 장관자리는 늘 정치외교를 하는 사람이 임명된다고 하였다. 그는 또 수강하던 유럽과 남미 변호사들에게 미국 상원의원의 중요 어젠다를 홈페이지에서 조사, 발표토록 하였는데 결과는 정치인들인 미국 상원의원들의 홈페이지에는 거의 예외 없이 통상이 빠져있거나 맨 아래 끄트머리에 겨우 있는 정도라는 것이었다. 드물게 통상이 언급되는 경우는 중국문제, 일자리 등 다른 정치적 문제와 연관될 때뿐이라는 관찰이었다. 정치외교 주무 부처에서는 통상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마련이다.
 
둘째, 모든 정부 조직은 정책결정의 효율성이 생명이다. 한글로 쓰면 '통상'이고 '무역'으로 다르지만 영어로 쓰면 똑같은 trade이다. 무역정책과 통상정책을 분리해서 국내 무역진흥책은 무역정책 담당 부처가 하고 국외 무역진흥책인 통상업무는 다른 부처가 한다는 것은 조직 운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전혀 설득력이 없다. 폴 크루그먼  등 유명한 국제경제학자들이 쓴 통상정책론의 주요 챕터에는 예외 없이 전략적 산업정책(strategic industrial policy)이 들어 있고 유치산업보호 이론이 들어가 있다. 이론적으로도 산업과 무역, 그리고 통상을 하나로 본다는 반증이다. 1960년대 이후 30년간 상공부는 산업과 무역/통상 진흥을 위해 전력을 다했고 그 결과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름이 바뀌었지만 산업통상자원부의 소명은 바뀌지 않았다.
 
셋째, 우리나라 GDP의 60% 이상을 무역이 차지하고 있고 우리 수출의 85%는 제조업이다. 나머지는 서비스업 등이니 제조업이 우리 무역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산업부가 소관 분야인 제조업을 위해서 농산물 등을 희생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을 담당한 이후 제조업을 위해서 농업이나 다른 부문을 희생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 다른 분야를 고려하려고 더 애를 썼다는 평가이다.
 
넷째, 국제화가 덜 되었던 예전에는 외교부의 통상 업무 분담이 일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영어구사 능력이 우수했고 국제적 감각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해외 유학이 많아지고 국제화가 진행되어 산업통상자원부나 다른 부처의 직원들도 언어와 국제적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제 통상교섭이 담당 공무원들의 언어나 국제화 수준 때문에 문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해외 대사관에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파견 나간 상무관들이 불철주야 산업협력과 무역/통상진흥을 위해서 발벗고 뛰고 있다. 공관을 관장하는 외교부에서는 각국 주재 대사들로 하여금 상무관들을 지원하고 각국 정부 고위층과의 접촉을 강화하여 통상역량을 강화하고 기여할 수 있다.
 
다섯째, 외교라는 한 분야의 전문성보다 오히려 산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전체적인 차원에서 제대로 된 통상교섭을 할 수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산업의 공급망 문제가 첨예화된 상황에서 산업 전체를 외교부가 이관해서 담당한다면 모를까 제대로 공급망 문제를 처리하기 어렵다. 갑작스럽게 터진 요소수 문제나 러시아 문제를 가지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이는 당초 외교부의 재외공관 경제조직이 제대로 기능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외교적 참사로 보는 것이 맞다.
 
김대중 정부 들어 정치적인 이유로 통상 업무가 외교부로 이관된 이후 10년 만에 제자리를 찾아 9년이 흐른 통상업무. 그동안 뿔뿔이 흩어진 통상전문가 풀이 이제 겨우 제자리를 찾은 상황인데 이 통상 업무를 또다시 산업에서 떼어 외교부에 붙이려는 시도는 어떤 합리성에 근거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수선한 상황이고 우리나라는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데이터 협정 추진 등 산적한 현안에 숨 고를 시간도 없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중에 “강을 건너는 도중에 말을 바꾸지 말라”고 하였다. 지금은 말을 바꿀 때가 아니다. 그리고 통상 부서의 엘레지(슬픔을 노래한 가곡)를 다시 들을 때도 아니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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