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전쟁·공급망 혼란 등 악재 패키지…'로드맵'이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가중되며, 각국 중앙은행이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맞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높은 경제성장률을 택할 것인지를 두고 갈림길에 서 있다고 21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골머리를 앓던 와중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악재에 경제 회복과 함께 물가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이날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물가 상승 압력을 “매우 과소평가했다”며 0.5%p(포인트)에 달하는 빅스텝 인상을 시사하고 나서자, 각 중앙은행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큰 폭으로 금리를 올렸다가는 경제를 불황으로 몰고 갈 수 있고, 뜀박질하는 인플레이션을 냅뒀다가는 물가 폭등에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어서다.
WSJ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불확실성이 가중되며 중앙은행들이 따를 명확한 로드맵마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클라스 크노트 네덜란드 중앙은행(DNB) 총재 겸 ECB(유럽중앙은행) 집행이사는 "우리는 매우 복잡하고 불확실한 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매파 기조 선회 움직임…긴축발작 재현 우려도
특히 유럽은 우크라이나와의 지리적 접근성,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인해 보다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매파 기조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ECB는 최근 기존 자산매입프로그램을 통한 채권매입의 종료 시기를 3분기로 앞당기기로 했다. ‘점진적 긴축’을 강조하긴 했으나, 시장은 공격적인 금리인상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2월 유로존 인플레이션은 5.9%로 ECB 목표치인 2%의 거의 3배에 달하기 때문이다.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역시 인플레이션이 연말까지 8%를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에 작년 12월과 올해 2월에 이어 3월 17일까지 3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려, 코로나 발생 직전인 2020년 3월 수준(0.75%)으로 돌아갔다.
야니스 스투나라스 그리스 중앙은행 총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도 감소시켜 중기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다수 국가는 지난 2013년 연준의 긴축기조 전환으로 글로벌 자금이 대거 유출됐던 ‘긴축발작’ 재현을 우려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선진국으로의 머니무브(자금이동)를 막기 위해서라도 부랴부랴 금리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호주 중앙은행은 올해 세 차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중앙은행 격인 금융관리국(HKMA)은 최근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에 발맞춰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인상했다. 대만 중앙은행도 최근 기준금리를 1.375%로 0.25%포인트 올리며, 2011년 7월 이래 약 11년만에 금리인상을 했다.
필리핀, 인도, 태국 등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인도는 인플레이션이 두 달 연속 중앙은행의 목표 범위치인 6%를 넘어섰고 성장률도 둔화됐다. 다만, 아시아 양대 경제 대국인 중국과 일본은 경기 안정화 의지를 강조하며 긴축 정책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일 것으로 WSJ는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