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최신형 정치부장, 정리=박경은·전환욱 기자] '대통령학 대가'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를 성공적으로 꾸린 비결에 대해 "인수위를 간소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DJ가 매일같이 말한 게 '우리는 준비팀이지 점령군이 아니다'였다"면서 "그런데 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꼭 점령군처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함 원장은 거듭 "새 정부 인수위는 점령군이 아니다. 단순히 인수팀"이라며 "목표부터 낮게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5월이면 국회 원내대표단이 만들어지고 새 국회의장단이 들어선다. 국무총리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며, 총리가 통과되지 않으면 장관 임명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도 내각을 완성하는 데 170일 이상 걸리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야당과 협치해야 할 필요성을 피력한 셈이다.
◆"인수위 할 일 최소화해야···비선 안 돼"
-인수위 안정성을 높일 방안이 궁금하다.
"인수위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소화해야 하며, '플러스 알파(+α)'로 비선실세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핵심 관계자가) 공식 조직 내부로 들어와야 한다. 비선이 있으면 야당이 가만히 있겠나. 비선은 절대로 단 한 명도 없어야 한다. 공식 조직이 통치 조직이어야 한다. 선거 캠페인 중에는 비선이 있을 수 있지만 통치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당선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당선인이 당선 직후 이른 시일 내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직 대통령을 만나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첫 만남이 아주 중요하다. 당선인은 현직 대통령 의견을 잘 들어줘야 한다. 이를 통해 양측이 최소한의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인수위에서 겸손하게 하면 현 정부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특히 당선인은 문호를 개방해 언론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인수 기간 중 일하는 과정을 언론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현 정부가 문서를 파기하거나 새 정부 인수위에 전달하지 않을 때 언론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당선인은 겸손히 움직이면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
-정부 조직 개편도 중요하지 않나.
"인수위 기간에 정부 조직 개편을 할 수는 없다. 인수위에서 청와대 조직 개편은 하지만 정부 조직 개편은 5월에 국회 의장단과 여야 원내대표단이 다 바뀐 이후 양당 관계자가 모두 모여서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란만 생기고 국회를 통과할 수 없다. 인수위 기간 60일 이내에 정부 조직 개편을 시도하는 것은 자책골인 셈이다. 적폐 청산, 코로나19 위기 극복 등 급한 과제가 많은데 정부 조직 개편으로 또 다른 갈등을 만든다? 그건 바보짓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부른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국내 정치학자들이 착각하는 점이 하나 있는데, 한국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다. 한국 대통령제는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강력한 대통령제가 아니라 약한 대통령제다. 한국 국회는 엄격한 삼권분립 정신에 어긋난다고 할 정도로 법상 대통령과 행정부를 강하게 견제할 수 있다. 다만 운영상 제왕적 대통령이 존재했다. 문 대통령도 이후 체계적으로 평가해봐야겠지만 확실한 것은 민주화 이후 가장 업적이 없는 대통령이고 국민을 가장분열시킨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새 정부, 文처럼 국민 분열시키면 안 돼"
-그럼에도 문 대통령 지지율이 여전히 높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문파'라는 독특한 팬덤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국가가 코로나19 재난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전쟁 또는 위기 중에는 국기를 중심으로 뭉치는 효과가 있다. 문 대통령이 그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이다. 다른 나라 지도부도 인기가 다 괜찮다."
-새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보며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국민을 분열시키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코드, 낙하산, 내로남불 인사가 문제 아니었나. 새 정부 들어서도 임기가 남은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있어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선거를 1년도 남기지 않고 임명한 인사들은 모두 인수위에 사표를 제출하는 게 맞는다. 그래야 새 정부와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싸우지 않는다. 또 새 정부가 '5년짜리 60개월 임기'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
-예비 야당과 관계가 악화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 파국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인수위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고, 국정 비전을 명확히 하고, 조직을 만드는 작업을 빨리 하면 된다. 잘하면 국민적 인기가 높아질 것이다. 그럼 야당이 다수당이라고 해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결국 제도의 잘못이 아니라 대통령 리더십에 따라 달라진다.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정부도 '임기를 1년 남기고 어느 자리도 임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새 정부 성공을 위해서는 협치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맞는다. 그리고 협치의 기본은 인사다. 통합형 인사를 하면 된다. 정권에 대한 충성심도 중요하지만 전문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래서 새 정부는 국회의원 출신 장관을 임명해야 하지만 초선 의원은 쓰지 말아야 한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적어도 6년 이상은 일해본, 3선 이상 전문성 있는 인사를 앉혀야 한다. 그래야 관료를 통제할 수 있고 대통령의 어젠다(의제)를 가져온다. 그럼 대통령이 부처 인사에도 관여하지 않게 된다. 책임 장관이니 알아서 하라고 하면 된다. 청와대는 당과 각 부처에 어젠다를 알려주고 조정만 하면 된다."
◆"인사가 만사···'퇴로 없는' 현역 정치인 써야"
-새 정부가 현역 정치인을 많이 입각시켜야 하나.
"그렇다. 선출직 국회의원이 현직을 버리고 내각에 들어오는 것은 사실 대단한 희생이다. 그들 스스로 정치적 꿈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4~5선 출신 의원이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됐다고 생각해 보라. 이후 당 대표, 국회의장이 되겠다는 꿈은 다 버리고, 새 정부와 운명공동체 관계로 가는 것이다. 교수 출신 관료들과는 달리 퇴로가 없다. 새 대통령과 함께 끝날 각오로 국정에 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새 정부 성공을 위해서는 공직에 아무나 들어와서는 안 된다."
-결국 인사가 만사인가.
"그렇다. 인사가 만사다. 이명박 전 대통령(MB) 임기 초반 촛불시위가 시작된 이유가 광우병 사태인 줄 아는데 인수위 인사가 첫 번째 문제였다. 청와대 인사도 문제가 많았다. 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인사였다. 당선인도 국민이 뽑아줬지만 대통령이 되는 순간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될 것이다. 국민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새 정부와 국회의 관계는 어때야 하나.
"새 정부가 국회를 하늘같이 떠받들어야 한다. 특히 여당은 170석가량인데 파가 나뉘지 않겠나. 다 쪼개지게 돼 있다. 대통령 당선인은 무조건 겸손해야 하고 인수위는 점령군이 돼서는 안 된다. 안정적으로 인수해야 한다."
-새 정부의 중요 과제는 무엇인가.
"적폐 청산을 넘어서는 중요한 과제는 한국 사회의 세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다. 고령화·저출산과 정부의 디지털화, 불평등 해소 등이다. 고령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청년기본소득'이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 방법은 청년기본소득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