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안 내도 할 말 없다" 판사의 토로...법조계, 디스커버리 도입 '속도'

2022-02-2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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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협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 방향' 토론회 개최

대법원 디스커버리 연구반, 10월 중 연구 결론 낼 전망

[사진=게티이미지뱅크]

"SK의 증거인멸, 증거개시 과정에서 늑장 대응 등은 이 사건을 신속히 끝내야 하는 국제무역위원회의 법적 의무와 절차적 일정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SK와 LG 간 배터리 전쟁에서 미국 국제무역위가 LG 측 손을 들어준 데는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제도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미국 특유의 소송 절차로, 재판 전 소송 당사자들이 사건과 관련된 증거자료들을 상호 전부 공개하는 것이다.

대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 등 법조계는 올해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위해 적극적인 연구에 나서고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면 신속한 실체적 진실 규명이 가능해지지만 대대적인 법·제도 변경이 필요하다.
 
"진실은 원고에게, 증거는 피고에게"
"진실은 원고에게 있지만 증거는 피고에게 있다." 변협이 22일 개최한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 방향'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법제도 안에서는 핵심 증거가 피고 측에 편재돼 있을 때가 많다는 뜻이다.

최호진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현실적으로 재판부가 증거 제출을 권유해도 피고 측에서 이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제출되더라도 소송이 상당히 지연된 이후나 항소심에서 제출되는 경우도 많아 그 신빙성에 다툼이 발생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미국에서는 소송 당사자들은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유지해야 할 '증거보존' 의무가 있다. 만약 이를 어기면 법원의 엄격한 제재를 받는다.

김원근 미국 변호사는 "미국 판사에게는 우리나라 재판제도에서 볼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이 있는데, 변호사와 검사는 재판 과정에서 판사의 '직원 신분'이 된다"며 "이들은 증거조사 과정에서 성실하게 임해야 하고 불필요하게 재판을 지연하면 판사는 변호사와 검사를 징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사자가 허위 주장의 법률 문서를 제출하거나 증거를 일부러 숨겼을 때 판사는 징계 권한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법조계는 국내에도 미국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재판 전 핵심 증거를 공유하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종엽 변협회장은 "우리 법체계와 법률문화에 적합한 증거개시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양측에 균등한 정보 수집 기회를 제공해 공평한 소송절차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 소송에서 증거개시는 소송절차 중 가장 시간과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점 △사생활이 침해되고 영업상 기밀에 준하는 사실들이 공개되는 점 △증거개시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는 부담이 있다는 점 등은 제도 도입 시 유의점으로 제시됐다.

김용상 외국법 자문사(법무법인 율촌)는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장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생활이 침해되고 영업 기밀에 준하는 사실들이 공개되는 단점과 비용 부담 때문에 특히 피고가 합의로 소송을 마무리하는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완근 한국사내변호사회 ESG위원장은 디스커버리 도입 시 '변호사 비밀유지권' 강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미국에서는 변호사 비밀유지권이 디스커버리 제도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운영되고 있다"고 조언했다.
 
대법원, 10월 중 디스커버리 연구 마무리
한편 본지가 확보한 '대법원 디스커버리 연구반' 일정에 따르면 연구반은 올해 10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초안을 마련해 법원 행정처 처장에게 넘길 방침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디스커버리 제도는 민사소송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어서 연구 범위가 상당히 넓다"며 "연구반에서 결론을 내면 정식 결정은 대법원에서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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