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분식회계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외부감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의 부당한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했다. 국회의 개정안 심의 과정은 아마추어 정치인들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개정안 내용은 분식회계와 외부감사인의 부실감사로 인해 손해를 본 피해자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경우 법원은 증권선물위원회에 해당 분식회계 조사기록 송부를 요구할 수 있고, 증권선물위원회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송부하도록 한 것이다.
결국 분식회계·부실감사가 명확하고 그것이 진실임에도 손해배상소송에서는 그것이 부정돼 외부감사인 등이 손해배상책임을 면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 민사적 부정의(不正義) 상황은 증권선물위원회가 감리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를 민사법원에 제출함으로써 손쉽게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금융감독원이나 증권선물위원회는 감리자료를 법원에 제출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제출 근거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번 외부감사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이 있으므로 이번 개정안에 대해 대법원은 외부감사인 등의 손해배상의무 성립 여부 등을 법원이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므로 외부감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동의 의견을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증권선물위원회와 감리집행기관(금융감독원, 한국공인회계사회)의 송부 대상 자료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적극적인 수정 의견까지 제시하며 동의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관련 국가기관들은 모두 적극적인 동의 의견을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개정안에 반대한 일부 국회의원들이 든 근거는 민사소송절차에 관한 규정을 외부감사법에 규정한다는 것과 '증권선물위원회가 법원의 자료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부분이 선례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개정안으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될 회계사 업계가 제시한 반대 논리였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은 공정거래위원회로 하여금 손해배상청구의 소가 제기된 법원에 관련 기록을 송부하도록 규정하고, 부정경쟁방지법 역시 같은 취지로 규정해 민사소송에서 증거 수집에 관한 규정을 위 법률들에 두고 있다. 금융실명법, 식품위생법 등 여러 법률은 관계 행정기관으로 하여금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규정들을 두고 있다. 소관 부처를 대표해 회의에 참석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위와 같은 사정과 투자자 보호 등 개정안의 필요성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일부 국회의원은 이를 막무가내로 막아서며 개정안에 반대하였다. 결국 개정안은 속칭 '법안의 무덤'이라 불리는 제2소위로 넘겨짐으로써 사실상 통과가 어렵게 됐다.
회계사 업계의 반대 논리가 부당하다는 것은 다른 법률들을 조금만 찾아보거나 소관 부처의 설명을 통해서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개정안의 취지와 배경에 관해서는 제대로 살피지도 않은 채 소관 부처의 설명까지 굳이 막아서며, 이미 여러 법률들에 선례가 있는데도 없다며 개정안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결국 이번 개정안이 이렇게 무력화됨에 따라 앞으로도 분식회계·부실감사로 피해를 초래한 회사와 외부감사인들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억울한 피해자들이 구제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 헌법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대의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모아서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는 정치인이 해당 사안의 원인과 영향, 해법에 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해당 전문가가 아니라면 국민을 대표해 어떤 정치적 의사 결정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의미가 뭔지는 알아야 하고, 최소한 알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의사 결정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고통은 결국 우리 국민들이 계속 짊어져야 한다. 이번 외부감사법 개정안 심의 과정이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 미래를 좌우할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후보자가 아마추어라면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하는 후보인지 그렇지 않은 후보인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 그것이 아마추어 정치인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장래 우리가 겪어야 할 고통을 줄이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