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체면을 구겼다. 해운사 운임 담합을 처음으로 처벌한 사건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처분 수위가 대폭 꺾이며 자랑이 무색해졌다. 부처 간 갈등도 여전하다. 합법적 담합을 위법으로 둔갑시켜 무리하게 처벌했다는 이유에서다.
조 위원장은 18일 국내외 23개 선사의 동남아시아 항로 해상운임 담합 혐의와 관련한 제재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이번 사건이 공정위에 얼마큼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해운법 제29조를 보면 해운사는 운임·선박 배치나 화물 적재, 이외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과 관련한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 다만 공동행위를 하려면 절차상 화주 단체와 미리 협의하고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에 신고해야 한다. 내용상 조건도 있다. 자유로운 공동행위 입·탈퇴가 가능하고, 부당한 운임 인상에 따른 경쟁 제한 금지가 없어야 한다.
공정위는 해운사들이 운임 짬짜미를 하면서 절차상 요건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시정명령과 962억원 상당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담합 인정과 과징금 부과라는 최종 결론을 내놓았지만 비판은 여전하다. 지난해 각 기업에 발송한 심사보고서에 8000억원 상당 과징금 부과 의견이 담겼지만 실제론 8분의 1 수준으로 깎였다. 일부 기업을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계획도 사라졌다. 조 위원장은 "해운업 특성을 반영한 결과"라고만 밝히며 구체적인 근거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박희정 법무법인 로고스 입법자문 수석전문위원은 이를 두고 "공정위가 국민이 기대하는 공정과 정의라는 기본을 못 지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분 근거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것은 의구심만 키울 뿐"이라고 꼬집었다.
공정위와 해양수산부 간 반목도 여전하다. 조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해운산업 주무부처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고 설명했지만 해수부는 제재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해수부 고위 관계자는 "선사들 공동행위가 해운법 범위에서 한 것이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과징금 부과 처분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금액이 줄긴 했지만 과징금 부과라는 게 일단은 법을 위반했다고 해석한 게 아니냐"며 공정위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