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금샘의 물은 땅에서 솟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니

2022-01-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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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 스님 <출처: media Buddha.net>]

부산 금정산 미륵암 뒷산으로 올라가 신년 해맞이 기도에 참여한 후 서울 종로에서 함께 간 J와 L을 포함한 일행 3명과 따로 고당봉(801m) 방향으로 갔다. 새해를 맞이하여 암자를 찾은 참배객과 산을 찾은 일출 순례객에게 두어번 ‘금샘’ 가는 길을 물었다. 초행길인지라 행여나 옆길로 샐까봐 조심조심 살피면서 안내판을 따라 좁은 오솔길을 걸었다. 얼마 후 몇 개의 바위 덩어리가 나타나면서 우리들이 가는 앞길을 가로 막는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내판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고나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바위 위로 드리워진 밧줄이 보인다. 중간중간 매듭으로 묶어져 있어 별다른 노력을 더하지 않고도 수월하게 잡고서 올라갈 수 있었다. 두 번의 줄타기를 마치고 나니 몇 사람 정도 서있을 수 있는 평평한 공간이 나타났다. 아랫방향으로 금정산 평원을 배경으로 예사롭지 않는 기운을 머금고 있는 금샘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을 감싸듯 나지막한 너래반석 몇 개로 둘러 쌓인 채 홀로 우뚝 솟은 화강암 바위 기둥 끝은 평평했다. 가운데가 수반처럼 파였고 그 안에 고인 금물은 겨울인지라 그대로 하얀 얼음으로 바뀐 채 백금빛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바위 위에 샘물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경외감을 준다. 그래서 수식어를 더해 ‘암상금정(巖上金井 바위 위의 금샘)’이라고 불렀다. 여느 샘처럼 물이 땅 밑으로 흐르다가 바위 틈새을 뚫고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물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랍다. 이 때문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영감은 또 다른 많은 이야기를 품었다. 비가 내리면 물이 고였고, 눈이 내리면 그 위에서 녹았으며, 또 매일 낙동강에서 올라 온 안개가 찬 바위에 닿으면서 이슬방울로 바뀌어 날마다 샘을 가득 채웠다. 그리하여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감로수가 된 것이다. 가뭄이 닥치면 혹여 금샘이 말랐는지 먼저 살핀 후 샘물 아래에서 기우제를 지낼 정도로 신성시 했다.

 

[부산 금정산 금샘]


오래 전에 충북 보은 속리산 꼭대기 천왕봉의 삼파수(三派水)를 찾았다. 샘인줄 알았더니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는 산등성이였다. 함께 간 이가 ‘땅에서 솟아오르는 샘이 아니라 하늘에서 물이 내려오는 샘’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겨울에 쌓였던 눈이 봄에 녹으면서 각기 찾아가는 골짜기에 따라 한강 금강 낙동강 물의 시원이 된다는 곳이다. 물론 비가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빗방울이 어디로 튀느냐에 따라 물의 갈길이 달라지면서 서울권 충청권 영남권 물로 운명이 바뀐다는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백두산 천지의 물도 어디로 흐르느냐에 따라 평안도의 압록강, 함경도의 두만강, 그리고 만주벌판의 송화강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고 보니 사람팔자도 알 수 없지만 물팔자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 가야할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금샘은 「삼국유사」「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남아있는 유서깊은 샘이다.
높이 9m 세로 1.5m 가로 1.3m 둘레 약 3m 되는 돌기둥 위에 깊이 20cm 황금빛 샘(金井)이 있는데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梵天 하늘)에서 온 물고기(梵魚)가 헤엄을 치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금정산과 범어사(梵魚寺)라는 명산과 유명사찰의 작명 근거가 되는 실재하는 역사적인 성소라 하겠다.

「삼국유사」 에는 의상대사가 문무왕과 함께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금샘 아래에서 일주일 밤낮을 일심으로 독경하니 호법신장(護法神將 진리를 수호하는 장군신)이 현신하여 동해로 나아가 왜적을 격파했다고 한다. 이후 호국사찰 범어사를 창건했다. 호국산성인 금정산성 길이는 17km로 국내산성 중 가장 길다. 북한산성의 두배다. 성내가 250만평이라고 하니 유사시 인근주민 모두가 피난할 수 있는 산성마을인 것이다. 역사를 자랑하는 막걸리와 파전은 지금도 지역 등산객들이 즐겨찾는 소울푸드다.
 
금샘은 2009년 무렵 부산 금정구 향토문화재 1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2013년 부산기념물 제62호 승격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91년 이후라고 한다. 2011년 일부 뜻있는 이에 의해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있었다. 현재 금정산을 국립공원으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는지 ‘결사반대’라는 붉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SNS에는 가끔 금샘 안으로 들어가서 찍은 사진도 자랑삼아 더러 올라온다. 어쨋거나 성지는 가꾸는 사람들의 몫이다. 가까이서 금샘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니 기둥바위 위로 올라가거나 또는 금샘 안까지 맨발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또다른 안내문과 최소한의 추가시설을 하는 것이 신성한 문화재를 오래 보존하는 방법이 될 터이다.
 
‘양산군 명승고적 산천시’에는 ‘금정산’이란 칠언율시가 전해온다. 지은이도 알 수 없으며 출전도 불분명하지만 금정산을 잘 아는 지역인물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금샘’부분만 따로 추려 4행으로 재구성 해보았다.
 
중개일정용황금(中開一井湧黃金)산중턱 한 샘물에서 황금물 솟구치고
함축연운상착수(含蓄煙雲相錯繡)안개구름 머금으니 수놓은 비단처럼 보이네.
문도사천능익수(聞道斯泉能益壽)듣자하니 이 샘물은 수명을 늘인다고 하니
수장감흠아회음(誰將甘欽我懷音) 누가 감로수를 떠와서 내 뜻을 흡족케 하리오.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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