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부터 '금융허브' 만들겠다더니…아직도 '규제일변도' 제자리걸음

2021-12-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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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가 밀집된 아시아 금융허브 홍콩.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내놓은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전략은 사실상 실패다. '2007년까지 세계 50대 자산운용사 주요 거점 유치, 2012년까지 특화 금융허브 완성, 2020년까지 대형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지역본부 유치하겠다'는 전략을 내놓았지만, 지난 20년간 50대 자산운용사 지역본부 유치, 대형 상업·투자은행 지역본부 유치 등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최종 목표인 2012년까지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영국 컨설팅그룹 지옌(Z/Yen)의 지난 9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 따르면 서울은 세계 126개 도시 중 13위에 그쳤다. 2015년 6위까지 올랐던 경쟁력은 오히려 계속 떨어지고 있다. 부산은 33위에 이름을 올렸다. 추격 상대인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등에 한참 못 미친다. 금융위원회마저 2009년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서울·부산에 대해 "서울과 부산의 금융인프라는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나 GFCI에서는 여전히 다소 미진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금융권에선 우리나라가 금융허브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관치금융과 규제를 꼽는다. 세계 금융허브를 보면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대부분 '네거티브 규제'가 적용되는 반면 한국은 허용된 것 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금융당국 허가 절차가 워낙 까다로운 데다가 진행 과정 중 갑자기 안 되는 경우도 존재해 리스크가 너무 크다"면서 "가뜩이나 저금리 시대와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로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고 있는데 현재로선 수익을 창출할 신사업을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6%로 맞추기 위해 금융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배당 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에 대한 간섭도 높아졌다. 한국씨티은행의 배당 성향은 40%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금융당국 권고치인 20%까지 떨어졌다.

금융규제와 조세제도, 경직된 노동시장 등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신규 사업 추진을 어렵게 만드는 규제장벽보다 지원책으로 금융사 유치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두바이는 국제금융센터(DIFC)를 설립하고 DIFC 내 기업에는 외국인이 100% 지분을 소유하고 소득세와 법인세를 0%로 하는 등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또 상업적인 분쟁 시 두바이법 대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DIFC 내 자체 법원을 설립했다.

흩어져 있는 금융 인프라 일원화도 추진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우리나라는 금융 인프라가 서울·세종·부산·전주에 분산돼 있다. 금융회사는 모두 서울에 몰려 있지만, 경제사령탑은 세종시에 있고 금융위원회는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 금융감독원은 여의도에 들어섰다. 국민연금공단은 전주로 본사를 옮겼다. 세계 4대 금융허브의 
경우 금융사가 한 빌딩에서 층을 바꿔가며 IR(투자설명회)을 할 수 있을 만큼 금융인프라가 한곳에 집중적으로 갖춰져 있다. 

금융당국도 문제를 인식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7월 은성수 당시 금융위원장은 43차 금융중심지 추진위원회에서 국내 금융중심지 추진전략을 발표하며 "지난 20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는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면서 "외국계 금융회사와 전문가들은 높은 법인세 및 소득세, 경직적 노동시장, 불투명한 금융규제 등이 여전히 걸림돌임을 지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단 금융위는 금융중심지 정책을 '핀테크 혁신, 자산운용시장 활성화'에 방점을 둘 계획이다. 경쟁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비교우위 산업을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취지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시책과 동향' 보고서에서 "금융 인프라 국제화를 위해 빅데이터 등 금융 분야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는 법‧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고 핀테크 등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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