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해 일시적으로 증가했던 연간 모금액(회비모금액+기부금품액)은 올해 다시 감소해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지난 2019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지난 11월 30일 기준 올해 모금액은 1123억1112만원으로, 지난 2019년 1010억8231만원보다 소폭 증가한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2269억3530만원에 비하면 거의 반 토막이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그간 추이를 볼 때 올해 12월 모금액을 최종 집계하더라도 2019년 수준을 벗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재난 상황에서는 모금액이 증가한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건과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감염 확산 사태 당시에도 모금액은 예년과 비교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지난해에만 바짝 기부금이 많이 모였다가 올해부터 쪼그라드는 양상이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경기 불황이 지속하고, 이에 따라 시민들의 기부 여력이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기업과 기관 등 ‘큰손’의 기부액이 크게 줄었다는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한적십자사의 모금액은 △일반회비 △후원회비 △기부금품액 등으로 구분된다. 일반회비는 일반적으로 ‘지로용지’ 모금을 뜻한다. 매년 말 전국 각 가구에 발송되는 대한적십자사의 기부 독려 우편물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모바일이나, ARS를 통해서도 모금이 가능하다.
후원회비는 후원자가 대한적십자사 측과 한 달 등 정기적인 기간을 약정해놓고 후원하는 형태를 이른다. 주로 소상공인·자영업자 명의로 기부가 이뤄지며, 기부액은 후원자의 의사에 따라 정할 수 있다.
기부금품액은 기업과 기관 측의 후원에 해당한다. 기업과 기관 측이 일시적으로 제공하는 기부금과 물품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기부금품액은 지난해 1517억1749만원으로, 전체 기부액의 약 66.8%를 점유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올해 기부금품액은 지난해의 24% 수준인 361억5772만원으로 대폭 쪼그라들었다. 기업과 기관의 기부액 감소는 경기 불황에 따른 전체 기부액 감소의 ‘신호탄’과도 같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코로나가 시작된 지난해에는 기업이나 기관의 기부 손길이 많았다”면서 “기업들도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모금에 소극적으로 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끝날 기미를 좀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일반 시민이나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기부는 더욱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불황 장기화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가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로 이어져 전년과 비교해 모금 활동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일반회비를 내거나 정기후원을 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나 시민들도 경제적 상황이 계속 어려워지면 회비를 납부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며 “기업 기부금부터 시작해서 내후년에도 코로나가 장기화하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코로나로 인한 빈곤층 증가에다 기부단체의 모금액까지 감소하면서 사회적 약자가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 데이터 분기별 자료(비농림어가, 1인 이상 가구)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이후 고소득층과 중산층 비중은 각각 1.3%P, 1.2%P 감소했지만 저소득층 비중은 2.5%P 증가했다. 가구 수 기준으로는 고소득층과 중산층이 각각 4만7588가구, 7만4091가구 줄었고 저소득층은 6만4577가구가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대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모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 이전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이 과거처럼 공감하고 도와주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약자에 대해 사회적으로 낙인 찍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기에 더해 코로나19가 덮치면서 경제적 충격이 가해졌다”며 “재난 상황이긴 하지만, 코로나로 시민들이 경제적 타격을 받은 만큼 지갑을 열어 기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